“소득주도, 재정주도 성장에서 시장주도 성장으로 무게·중심이 옮겨가야 한다" "대통령이 기업현장의 목소리를 경청해야 한다"
한국일보가 내년 대선을 앞두고 우리나라의 분야별 핵심 과제의 해법을 모색하기 위해 기획한 '대한민국 지속가능 솔루션' 프로젝트 경제분과 첫 회의에서 전문가들은 우리나라가 처한 현 경제 상황에 대해 강한 우려를 표시했다. 참석자들은 △실제 효과는 1원에 불과한데도 정치적 고려 때문에 100원의 정책비용도 감수하는 과잉 규제 △시장 기능을 훼손시키는 지나친 재정의존형 성장 △제조업 기반 흔드는 급발진식 탄소중립ㆍ탈원전 정책 등 현 정부의 경제정책 상당수가 기대효과보다 부작용이 컸음을 지적했다.
이들은 차기정부 경제정책의 최우선기조로 시장의 복원을 꼽았다. 코로나19 국면에서 어쩔수 없이 재정에 의존했지만, 향후 성장과 고용의 중심추는 민간과 시장으로 이동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를 위해 과잉규제의 네거티브(금지대상열거) 전환 결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탄소중립이 피할 수 없는 과제인 것은 맞지만, 제조업 경쟁력이 핵심기반인 우리나라로선 탈원전ㆍ탄소중립 정책에 속도조절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개진됐다. 경제분과위원장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현실에 맞는 조화와 속도조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시장주도가 시장일변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궁극적으론 △시장과 큰 정부의 조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공정경쟁 △노동의 유연성과 안정성의 조화 △적극적 불평등해소 등 보다 포괄적 정책모색이 필요하다는 데도 의견이 모아졌다.
이날 회의에서는 성태윤 교수 외에 김동헌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 김진영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민세진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 박철성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 등이 참석했다.
김상봉 교수=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이 2.4%(한국은행 추정치)에 불과하다. 현 정부 성장정책은 재정으로 부양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성장률을 끌어올리려면 산업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데 현 정부에서는 없었다. 산업지원과 규제완화 등을 통해 성장률을 올려야 한다. 부동산 문제는 단기 공급 늘리는 건 당연하고 양도소득세ㆍ상속세 등 거래세를 낮추거나 일정하게 하는 게 중요하다. 중기 관점에서는 노동시장의 최저임금 문제가 관건이고, MZ세대를 위한 노동 유연화도 필요하다. 재정 투입으로 일자리를 유지하고 있지만, 양질의 일자리로 전환하도록 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노동시장과 고용은 라이프스타일과 연결되므로 저출산ㆍ고령화와도 직결된다. 특히 중요한 것은 집인 것 같다. 집도 없는데 애를 어떻게 낳겠나.
민세진 교수= 지금 스태그플레이션 우려도 나오는데, 탄소중립과 연결하면 중장기적 현상이 될 수 있다. 국내적으로 보면 안정적 에너지원 확보가 경제정책의 근간인데 이 부분이 미흡하다. 안타까운 것은 탄소중립 문제가 정치화된 점이다. 경제적 합리성, 과학적 정합성을 고려하지 않고 정치이슈화됐다. 탄소 배출 이슈가 국민 경제에 주는 부정적 충격을 어떻게 최소화할 것인가에 대한 명확한 장기 플랜이 차기 대통령의 중요한 과제다.
규제 시스템은 징벌적으로만 접근할 게 아니라 성숙한 시각으로 봐야 한다. 한쪽에서는 노동하기 어렵고, 한쪽에서는 기업하기 어렵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양쪽(노동자와 사용자)을 절충할 수 있는 방안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노동개혁이 노동시장 유연성을 제고하는 방향만이 아니라 포괄적 방향으로 진행돼야 한다. 한국 경제는 상당히 성장을 했고 성장한 경제에 어울리는 성숙한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급성장을 하다 보니 정책이나 규제도 ‘오버슈팅’(과잉 규제)된 부분이 있다. 견실한 성장 동력을 위해서는 규제시스템 점검이 필요하다.
성태윤 교수= 예전에 스웨덴에 갔던 생각이 난다. 현지 노동계 인사에게 "경제가 어려울 때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해서 노동단체는 어떻게 준비하나" 물었더니 “어려울 때 부담을 기업이 안게 하는 걸 원치 않는다. 그러면 기업이 고용을 기피하게 된다”고 말했다. 반면 경영계 인사는 “사회안전망 없이 근로자를 내보내도록 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우리 관점에서 노동계 관계자가 할 말을 경영계가 하고, 보수ㆍ경영계가 할 말을 노동계가 하더라.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박철성 교수= 범위를 좁혀서 노동시장에 대해서만 말해 보겠다. 단기적으로는 코로나19 이후 노동시장 정상화가, 장기적으로는 저출산ㆍ고령화 충격을 어떻게 흡수해낼 것이냐가 중요하다. 코로나19로 장기 휴직자, 폐업 자영업자, 미취업 청년 등의 문제가 심각하다. 원하는 시간보다 적게 일하고 있는 사람도 있다. 코로나19가 끝나면 일부는 회복되겠지만, 돌아갈 일자리가 없는 사람들도 꽤 있을 것이다. 지금은 정부가 재정으로 감당하려 했지만, 코로나19 종식 후에는 적절하지 않다. 민간노동시장이 정부에 의해 ‘크라우딩 아웃’(驅逐ㆍ구축)되는 결과가 있기 때문이다. 고용해법을 민간에서 찾아야 한다. 다만 취업 못 한 청년에 대해서는 국가 차원의 재정 투입이 필요하다. 그러면서도 전체적으로는 국가가 노동시장 개입을 점점 줄이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저출산ㆍ고령화에 대응하려면 세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 국민연금 고갈에 대비해야 한다. 30, 40년 뒤에 고갈된다는 말이 많지만 그보다 빨리 고갈될 수 있다. 사회보험이 신뢰를 잃으면 미리 사회보험료를 내려 하지 않을 것이다. 두 번째는 고령자의 소득 유지 문제다. 우리는 노인빈곤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에서도 높다. 결국 정년 연장 얘기가 나올 것이다. 청년고용과 연계되는 부분이 있지만, 안 할 수 없는 고민이다. 셋째, 저출산 대응은 효과가 큰 분야에 집중하는 쪽으로 정책이 조정돼야 한다.
김동헌 교수= 코로나19로 정부 기능이 커지면서, 시장 기능이 많이 와해됐다. 앞으로도 개인이 컨트롤할 수 없는 일들이 생기면 정부 역할은 커지게 된다. 시장 기능을 유지하면서도 큰 정부와 조화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세 가지 방향을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 단기적으로는 포스트 코로나 연착륙이다. 자영업자가 취업률의 25%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이분들의 연착륙이 중요하다. 둘째, 사회통합이다. 부동산 시장 안정화가 중요하다. 부동산 정책이 부자를 투기하는 사람으로 못 박고, 이들을 겨냥한 징벌적 프레임을 만들어 놓은 측면이 있다. 이런 것들을 걷어내고 중산층이 안정적 주거를 갖고 주거 인프라가 강화돼야 한다. 셋째는 대외적인 것이다. 미중 갈등, 한일 갈등, 2050 탄소중립 등 대외 변수를 어떻게 풀어나갈 것이냐의 문제다. 세 가지 방향의 중심을 잡는 동시에 경제 시스템이 디지털 사회에 안착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미래 세대가 행복한 국가를 만드는 비전이 될 것이다.
김진영 교수= 경제 활력을 찾는 게 중요하다.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성장 동력을 찾아 지원하는 것, 둘째는 시대정신이 된 불평등 해결이다. 성장 동력은 젊은 사람들에게 기대할 수밖에 없는데, 성장 동력을 잃었다는 징후가 도처에 있다. 청년들이 9급 공무원 시험 때문에 휴학하고, 자격증에 매달린다. 학생들이 이러는 건 노동시장, 임금구조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노동시장 문제를 ‘대기업 강성 노조 탓’이라거나, ‘기업 탐욕 때문’이라는 식으로 하나만 집어서 이야기하는데, 더 깊이 생각해야 한다.
공정경쟁 환경이 중요하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공정한 경쟁이 필요하다. (공정의 기준을 정하고 판단하는) 사법부의 전문성과 도덕성도 경제와 얽힌 중요한 문제다. 복지 방향이 기본소득이냐 유연안정성이냐에 대한 논의도 필요한데, 개인적으로는 기본소득은 먼 미래고 유연안정성은 가까운 미래라고 본다. 다만 유연안정성을 논하면서 유연성만 이야기하는 건 상당히 무책임하기 때문에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사회보장이 필요하다.
자영업이 하나의 기간산업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국민의 삶의 질과 직결될 수 있는 중요한 산업이기 때문이다. 자영업을 혁신산업으로 생각하고 접근하는 것은 어떨까. 자영업자나 신용도가 낮은 사람이 접근할 수 있는 중금리시장의 필요성이 있다. 마지막으로는 부동산 문제다. 부동산 문제가 경제뿐 아니라 사회 심리에서도 발목을 잡고 있다. 부동산은 지역 균형, 지역 발전과도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
성태윤 교수= 부동산 문제는 11월 중 열릴 다음 회의에서 집중적으로 다뤄야 할 것 같다. 공정 경쟁과 관련해서 사법부의 전문성과 도덕성이 중요하다고 말씀해주신 것이 중요한 포인트인 듯하다.
민세진 교수= 우리 경제는 제조업을 가지고 갈 수밖에 없다. 국가 경쟁력과 성장 기반은 제조업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제조업 수요가 내수보다 수출에서 크기 때문에 성장률이 유지될 수 있었다. 급속한 성장도 그래서 가능했다. 제조업에 대한 국가적 관심이 계속 있어야 한다. 그래서 탄소중립 부분이 너무 걱정된다. 정부 시나리오대로라면 기간산업들이 버틸 수 있을까. 국내적으로만 보면 엄청난 충격일 것이고 성장에 직접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제조업은 지켜주지 않으면 무너진다. 탄소중립과 맞물려서 큰 그림에서의 잠재성장률 유지ㆍ제고가 어렵게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성태윤 교수= 환경ㆍ사회ㆍ기업 지배구조(ESG) 이슈도 필요하고 중요한 의미가 있다는데 동의하지만 갑자기 급발진할 건 아니다. 경쟁력 있는 우리 산업을 어렵게 만들 수 있는 부분이 있다. 조화를 이루도록 하는 게 산업 정책에서 중요한 과제다. ‘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정책의 속도와 산업 여건도 고려한 비전을 차기 대통령께서 염두에 두셔야 한다.
김동헌 교수= 생산성 향상은 성장을 이끄는 중요 포인트다. 민간 기업 규제를 완화하면서 투자할 수 있게 만드는 게 중요하다. 소득 주도 대신 성장 동력은 기업을 통해 진행되는 시장에서 찾아야 한다. 글로벌 경쟁력을 지닌 우리 기업들에 더 기회를 줘야 한다. 규제가 산업화 시대에 머물러 있다. 산업화 시각으로 디지털 시대를 보고 있다. 탈원전 정책도 ㎾h당 발전원가를 따져보면 원전이 56원이면 석탄은 80원대, LNG는 150원 정도다. 그동안 한국 기업은 저렴한 에너지 비용으로 경쟁력을 유지했는데, 갑작스러운 탈원전과 불안전한 태양광 이런 것이 도입되면서 에너지 공급이 전체적으로 불안정해졌다. 2050 탄소중립 이슈까지 들어오면서 위기가 닥치고 있다. 조금 더 긴 호흡을 가지고 준비해나가야 할 것 같다.
민세진 교수 = 산업화 시대는 계획 경제였다. 국가 주도 경제가 단기간에 성과를 낸 거고, 일일이 정부가 지도했다. 그러나 외환위기로 상황이 바뀌었는데도 소위 ‘발본색원’하는 마인드를 못 버리고 세세하게 규제하고 있다. 열거주의ㆍ포지티브 시스템이 아니라, 최소한 ‘이거는 범죄고, 안 된다’는 기준만 제시하고, 나머지는 열어두는 네거티브 시스템으로의 전환이 디지털 경제의 규제 방향이다.
김진영 교수= 강한 규제의 심각성은 대학을 생각해보면 된다. 대학 규정이 학교를 발전시키는 데 에너지를 쏟기보다는 교육부 감사에 안 걸리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규제가 많아지면 창의적 역량이 발휘되기 어렵다. 결국 기업들의 현장 얘기를 많이 듣는 게 중요하다. 기업 의견을 적극 듣겠다는 정부 자세가 중요할 것 같다. 책상에 앉아서는 모른다. 규제는 책상에서는 쉬운데, 현장에선 어떤 모습으로 발현될지 모른다.
박철성 교수= 노동시장도 비슷하다. 산재 관련 이슈의 경우 취지에는 동감하지만 오버슈팅을 너무 해서 기업들이 힘들다. 예컨대 산재를 줄이려면 상당한 비용이 들어가는데 비용 계산은 않고 무작정 막으려고만 하다 보니 문제가 생긴다. 신문에 비정규직 사망 사건이 크게 보도되면, 당국은 여론을 잠재우려고 기업에 즉각 조치토록 압박하다 보니 (규제가) 과하게 되고 기업이 위축되는 방향으로 가게 된다. 최근 노무사 업계의 주업이 컨설팅이 됐다. 규제가 자꾸 생기니까, 기업들이 법망에서 빠져나가려고 컨설팅을 의뢰하기 때문이다. 결국 기업은 “사람 쓰면 역시 돈이 든다”라는 식의 접근을 하게 된다. 이번 정부는 (규제에 따른) 비용 고민 없이 여론 악화에 급급해 발본색원식 대응이 너무 강한 것 같다.
성태윤 교수= 정책에도 비용이 있다는 것을 짚어주셨다. 비용 대비 효과가 어떻게 되느냐 고려해야 하는데, 강한 규제는 오히려 활력을 떨어뜨리게 될 수 있다는 말씀인 것 같다.
김상봉 교수= 금융시장도 그렇다. 규제가 강하다 보니, 금융회사는 정부의 규제와 감독당국의 가이드만 바라보게 된다. 오죽하면 금융회사 임원들 사이에 “화장실도 물어보고 가야 하나”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경제정책은 이념이나 신념이 아닌, 증거 기반 정책이 돼야 한다. 자료에 기반한 논의가 이뤄져야 경제정책의 부작용이 없게 된다. 정치적 속셈으로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경제정책이 쏟아지는, ‘정치가 경제를 막는’ 현상이 없어야 한다. 이런 유혹에 빠지지 않으려면 국민들도 역량을 쌓아야 한다. 최근 고교 과정에서 경제관련 과목 비중을 줄이기로 한 것은 그런 점에서 매우 우려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