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판 ‘드루킹’ 사건? 트위터 여론조작 의혹 외면하는 자민당?[특파원24시]

입력
2021.10.24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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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위 사실 게시, 왜곡 편집하며 야당 의원 공격
명예훼손 소송 재판 과정서 계정 정체 드러나
자민당 거래 기업이 운영... 자민당은 '모르쇠'

‘Dappi(@dappi2019)’는 16만 명의 팔로어를 거느린 일본의 익명 트위터 계정이다. 주로 DHC가 운영하는 우익 성향 방송 영상이나 국회 영상을 짧게 편집해 올리면서 자민당은 칭찬하고 야당을 비난한다. 허위 사실을 게재하거나 영상을 왜곡 편집해 올리는 일도 있다.

그동안 우파 성향 일반인처럼 활동해 왔던 ‘Dappi’가 사실은 자민당과 거래하는 인터넷 업체가 운영하는 계정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에 자민당이 민간 기업에 의뢰해 개인 계정처럼 위장한 트위터 계정으로 여론 조작을 해온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지만, 자민당은 언급 자체를 꺼리며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이 계정의 정체는 제1야당 입헌민주당의 고니시 히로유키 참의원 의원의 소송 과정에서 밝혀졌다. 고니시 의원 등은 허위 사실까지 게재한 Dappi의 일방적 공격에 시달리다 명예훼손으로 고발하기로 했다. 익명 계정이라 먼저 소유자를 특정해야 고발할 수 있으므로 재판을 통해 소유자를 알아낸 결과, ‘완즈 퀘스트’란 이름의 법인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직원 15명, 지난해 매출은 2억1,000만 엔의 작은 기업으로, 주로 웹사이트 기획 제작 등을 의뢰받아 하는 업체다.

이 기업 거래처 명단에 자민당이 있다는 게 밝혀지자, 자민당 의뢰로 기업이 트위터 여론 조작을 해온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하지만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13일 참의원 본회의에서 Dappi 의혹에 대한 질의가 나오자 “우리 의원뿐 아니라 각 의원과 후보자가 공직선거법 규정에 따라 발신하고 선거 운동을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일반론만 펴고 아무런 설명을 하지 않았다.

총선을 앞둔 민감한 시기에 불거진 여론 조작 의혹은 큰 쟁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주요 일간지가 그다지 보도하지 않는 가운데 인터넷 매체와 지방신문, 주간지 등이 취재에 나섰다. 도쿄신문은 자민당 도쿄도연맹이 서버 비용 등 수십만 엔을 이 업체에 지출한 사실을 알아냈고, 슈칸분슌(週刊文春) 최신호는 “자민당이 2014~2019년 웹사이트 제작비 등 총 565만 엔(약 5,800만 원), 오부치 유코 자민당 조직운동본부장의 자금관리단체인 미래산업연구회가 총 194만 엔(약 2,000만 원)가량을 이 회사에 지출했다”고 보도했다. 금액이 크지는 않지만 상당히 오랜 기간 자민당이 이 회사에 다수 사업을 발주하며 관계를 맺어 온 셈이다.

일본공산당이 발행하는 신문 ‘아카하타(赤旗)’도 24일 자 최신호에서 이 회사 사장이 모토주쿠 히노시(76) 자민당 사무총장의 친척이라고 밝힌 적 있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2000년 이후 계속 자민당 사무총장을 맡아 온 모토주쿠는 당내 자금 흐름을 속속들이 알고 있어 ‘자민당의 금고지기’ 또는 ‘어둠의 간사장’으로도 불린다.

문제의 계정 운영이 자민당 지시에 의한 것이었는지, 기업이 자체 판단으로 한 것인지, 아니면 해당 기업 직원이 개인적으로 한 것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자민당이 Dappi 의혹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고 있어, 사건의 진상은 추후 명예훼손 소송이 진행돼야 점차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도쿄= 최진주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