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3월 고교생 정유엽군은 코로나가 의심된다는 이유로 고열과 폐렴 증상에도 자택 대기를 하고 구급차 이용조차 거부당했다가 숨졌다. 감염병 대응 의료체계가 미비해 발생한 ‘의료공백’의 대표적인 사례다.
□ 정군의 사망은 고열환자에 대한 명확한 지침도 없었고 생활치료센터도 없었던 코로나 초기 일반 응급환자에 대한 의료공백이 빚어낸 사태였다. 문제는 공공의료기관을 주로 이용할 수밖에 없는 의료취약계층이 코로나 시기에 겪는 의료공백이다. 지난해 말 인권단체들이 펴낸 ‘코로나19 의료공백 인권실태조사보고서’에는 “위 통증으로 공공병원을 찾았으나 보호자가 없어 입원ㆍ치료를 거부당했다”(동자동 쪽방촌 주민), “엄지손가락 부상으로 봉합수술을 받아야 했으나 코로나와 HIV감염 이유로 병원마다 거부당했다”(HIV감염인) 등 코로나를 핑계로 병원들이 저소득층, 장애인, HIV감염인 등 취약계층의 진료를 거부한 실태가 생생히 담겨 있다.
□ 올해 공공병원들이 코로나 대응 업무를 전담하면서 일반환자, 특히 취약계층의 의료접근성이 크게 하락했다는 구체적인 통계가 국정감사에서 공계됐다(정춘숙ㆍ.허종식 의원). 코로나 이전인 2년 전에 비해 겨우 올해 35% 수준의 입원환자를 받은 공공병원도 있었다. 예상대로 의료급여 환자, 저소득층 환자들이 직격탄을 맞았다. 대표적 코로나 전담 공공병원인 서울의료원과 부산의료원에선 코로나 시기(2020~21년) 의료급여수급자의 진료비 총액이 코로나 이전(2018~2019년)에 비해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일반인(건강보험 가입자)의 진료비 감소폭(서울의료원 -38%, 부산의료원 -17%)보다 훨씬 크다.
□ 정유엽군 사망 이후 공공의료 강화를 촉구하며 청와대까지 도보행진을 했던 정군 유가족은 지난 20일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으로부터 “송구하다”는 말을 들었다. 정군 사망 후 581일 만에 이뤄진 공식 사과다. 정부는 의료공백 사태에 대해 정군의 유가족에겐 사과했지만 내년 공공의료 예산(1조5,872억 원)은 지난해보다 34%나 깎았다. 생색도 나지 않는, 힘없는 사람들을 위한 예산이라 외면했다고 믿고 싶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