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역학, 이해하지 말고 감동하라!

입력
2021.10.21 16:00
15면
물리학자 박권 신간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편집자주

어렵고 낯선 과학책을 수다 떨 듯 쉽고 재미있게 풀어냅니다. ‘읽어본다, SF’를 썼던 지식큐레이터(YG와 JYP의 책걸상 팟캐스트 진행자) 강양구씨가 <한국일보>에 4주마다 금요일에 글을 씁니다.


"양자역학을 이해하는 사람은, 나를 포함해서, 아무도 없다." 20세기의 천재 과학자로 꼽히는 리처드 파인먼이 양자역학을 강의하면서 했던 얘기다.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말고 그냥 "받아들이는 게 좋겠다"고 덧붙이는 대목을 접하고 나면 헛웃음이 나오기까지 한다.

사실 파인먼이 이렇게 말했던 데에는 이유가 있다. 양자역학은 물질을 구성하는 미시 세계 원자의 움직임을 규정하는 원리다. 20세기 초에 보어, 하이젠베르크, 슈뢰딩거 같은 과학자들이 이 원리를 방정식과 같은 수학의 언어로 규명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방정식으로는 완벽하게 기술되는 이 원리를 우리, 즉 인간의 직관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국내외에서 양자역학을 쉽게(?) 설명해 보겠다고 수많은 책이 나왔지만, 변죽만 울리다 끝나는 일이 대다수인 것도 이런 사정 탓이다. 양자역학은 애초 우리의 사고방식으로는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지식이다. 그러다 보니, 일부 지식인이나 심지어 종교인이 양자역학의 키워드나 이미지만 빌려와서 아전인수로 해석하는 일도 많았다.

이론 물리학자 박권이 쓴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동아시아 발행)가 돋보이는 이유다. 저자는 "믿기 힘들 정도로 이상하지만" "놀랍도록 아름다운" 양자역학의 핵심을 전하고자 이 책을 썼다. '파동' '원자' '빛' '힘' '물질' '시간' '존재'로 이어지는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이 세상이 어떻게 존재하는지 추적한다. 그 과정에서 양자역학의 실체가 차근차근 모습을 드러낸다.

이 대목에서 저자의 시각을 엿보는 일도 흥미롭다. 저자는 어떤 물리학자처럼 세상의 구성 요소를 계속해서 쪼개서(분자, 원자, 원자핵, 쿼크 등) 전체를 파악하려는 시도와는 선을 긋는다. 대신, 미시 세계에서 수많은 원자가 상호 작용한 결과로 우리가 사는 세상이 빚어진 놀라운 일에 관심을 둔다. 책의 부제에 나온 표현을 빌리자면 "창발하는" 세상!

양자역학을 다룬 책이라고 겁부터 낼 것도 없다. "어렸을 때 우리 집은 가난했다. 언제부터였는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내 기억으로 우리 집은 항상 가난했다." 잔뜩 긴장하고 책을 펼친 나는 이 첫 두 문장을 읽고서 무장해제당했다. 이렇게 인상적으로 시작하는 과학책이 있었던가?

실제로 저자는 자신의 경험과 영화나 소설의 인상적인 장면을 씨줄 삼고, 자신이 씹어서 소화한 과학 이론을 날줄 삼아서 한 편의 다큐멘터리 같은 작품을 써냈다. 어떤 곳은 한 편의 자서전 같아서 읽는 내내 마음이 울렸고, (평가할 자격은 없지만) 물리학을 비롯한 과학 이론 전반에 대한 저자의 깊은 이해를 접할 때는 탄복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곳곳에 등장하는 수식은 책과 친해지는 데에 커다란 장애물이다. 하지만, 찬찬히 따져 보면, 중학교나 고등학교 때 배운 수학 교양으로 더듬더듬 흐름을 따라갈 정도는 된다. '수포자(수학 포기자)'라고 지레 포기하지도 말라. 수식의 정확한 의미를 몰라도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의 핵심을 파악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감동에는 문제가 없다.

사실, 저자와는 4년 전 여름에 아주 긴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양자역학부터 시작해서 자신의 연구 주제까지 한 편의 '시 같은' 강의를 들려주면서, 마지막에 그가 이렇게 말했다. "양자역학으로 대중에게 감동을 주는 책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드물어요." 결국, 그가 이렇게 "양자역학으로 감동을 주는 책"을 직접 썼다.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덧붙이면, 물리학자 김상욱, 천문학자 이명현 등과 함께 저자와 나눴던 당시의 대화는 '과학 수다 4: 과학, 누구냐 넌'(사이언스북스 발행)에 66쪽 분량으로 실려 있다.

과학책 초심자 권유 지수: ★★★ (별 다섯 개 만점)

강양구 지식큐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