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일까 … '코로나 시대' 한-베트남 비대면 국제결혼이 던진 난제

입력
2021.10.21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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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변화하는 국제결혼 양상

편집자주

국내 일간지 최초로 2017년 베트남 상주 특파원을 파견한 <한국일보>가 2020년 2월 부임한 2기 특파원을 통해 두 번째 인사(짜오)를 건넵니다. 베트남 사회 전반을 폭넓게 소개한 3년의 성과를 바탕으로 급변하는 베트남의 오늘을 격주 목요일마다 전달합니다.



"(한국의 예비 신랑은) 좋은 사람입니다. 우리, 사랑 맞습니다. (내가) 한국 가면 모두 행복합니다."

각기 다른 네 번의 질문에 모두 같은 대답만 돌아왔다. '한 번 만나보지도 않고 결혼하는 것이 불안하지 않냐'는 진심 어린 우려도, '한국에 도착한 후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다'는 현실적인 조언에도, 앳된 얼굴의 현지 여성 히엔(가명·22)은 묘하게 단호하고 반복적으로 답했다. "지난해 9월 한국 공장에 일한 적 있는 친척의 소개로 알게 된 한국 남성 A(47)씨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매일 대화를 나누다 사랑에 빠졌다"는 이야기도 대화의 맥락과 상관없이 중언부언이었다.

아직 한국말이 서툴러서 그런 것일까. 그렇다고 단정할 수는 없었다. 불편하지 않은 질문에 대한 히엔의 답은 상당히 구체적이고 일목요연했다. 경북 포항 인근에서 인테리어 가게 운영, 신혼여행은 제주도, A씨가 좋아하는 색깔은 파란색, 취미는 자전거 타기. 달달 외운 느낌을 지울 순 없어도, 큰 눈망울로 연신 사랑이라고 강조하는 그의 말을 모조리 부정하기도 어려웠다. "A씨가 결혼에 필요한 종이(행정절차)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나는 (포항의) 호미(곶)도 곧 갑니다." 연애 결혼의 증거가 될, SNS 대화 기록을 끝내 보여주지 않은 히엔은 이 말을 끝으로 인파 속으로 조용히 사라졌다.

코로나로 반 토막 난 한-베트남 ‘매매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창궐한 지 1년 반. '사돈의 나라'로 불리는 베트남과 한국의 국제결혼 양상이 변하고 있다. 강화된 양국 방역정책의 여파로, 형식적이나마 진행되던 베트남 현지 결혼식과 처가 방문 절차도 대부분 중단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대신 그 자리에는 히엔과 같은, SNS를 통한 온라인 비대면 연애 결혼이 새로운 흐름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상업적 매매혼이라고 비판받던 기존의 양국 국제결혼이 급감한 시점은 지난해 11월 전후다. 코로나19 시대 이전, 이미 현지 방문까지 마친 결혼 건의 남은 서류 심사와 베트남 여성의 한국어능력시험(TOPIK·토픽) 통과 등의 절차가 대부분 이 무렵 정리됐다. 통상 양국의 국제결혼은 예비 신랑이 현지를 방문한 뒤 짧으면 6개월, 길게는 1년가량의 추가 시간이 소요된다.

실제로 20일 주베트남 한국 대사관에 따르면, 코로나19 창궐 직전인 지난해 1, 2월 932건에 달하던 베트남의 한국 결혼비자 발급 건수는 같은 해 11월 이후 두 달간 439건으로 절반 이상 감소했다. 지난해 발급된 결혼비자는 3,452건으로, 2016년 이후 매년 5,000~6,000건에 달하던 시절과도 큰 차이를 보였다.

전염병 시대의 장기화가 기정사실로 자리 잡은 올해는 1,000건을 넘기기도 힘들 전망이다. 현지에 코로나19가 재창궐되기 전인 4월까지 총 519건에 불과했던 결혼비자 허가는 5월부터 지난달까지 341건으로 더 줄었다. 심지어 코로나19 사태가 가장 심각했던 올해 8월에는 23건의 결혼비자만 발급됐다.

3년 전까지 국제결혼 중개업체를 운영했던 한 교민은 "결혼이 절실하거나,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소수의 예비 부부들이 까다로운 입·출국 절차를 통과하고 결혼비자 발급 조건을 어렵게 맞추긴 한다"면서도 "중개업자들이 코로나19 사태로 대부분 현지를 떠나고 있어 앞으로는 이마저도 힘들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면 비대면 연애에 기반한 결혼비자 신청은 매매혼이 감소한 빈자리를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대사관 관계자는 "개인정보라 정확한 사례와 수치를 공개하긴 어려우나, 지난해 연말 이후 접수된 결혼비자 신청의 절대 다수가 비대면 연애에 기반하고 있는 건 사실"이라고 밝혔다. 최근에는 답답한 상황을 참다 못한 한국의 예비 신랑들이 들고 일어나기도 했다. “결혼 관련 증빙 서류를 다 제출했는데 왜 비자 발급이 일 년째 지연되냐”는 민원을 넣는 등 결혼을 어떻게든 성사시키려 직접 나선 것이다.

"비대면 국제결혼, 방관하면 사회문제 될 것"

전례 없는 상황에 결혼비자 발급 실무를 담당하는 현지 공관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결혼이 사적 영역인 것은 분명하나, 적어도 한국과 베트남의 비대면 국제결혼은 간단히 “잘 사세요” 하면서 도장만 찍어 줄 사안은 아닌 탓이다. 한국 대사관 역시 아직 베트남 여성들이 신청한 비대면 결혼비자를 한 건도 발급해 주지 않은 상태다.

공관이 주저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비대면 연애에 기반한 국제결혼의 경우 진실성에 대한 입증은 어렵고, 사유 조작은 상대적으로 쉽다. 결혼 당사자 양측이 매매혼을 진행하기로 몰래 합의만 한다면, SNS 창에 정기적으로 대화의 증거를 남긴 뒤 "우리는 사랑하는 사이"라고 주장하면 그뿐이다. 2014년 양국의 결혼비자 발급 심사가 강화된 후 자리 잡은 ‘결혼 전 현지 방문’이라는 최소한의 검증 역시 무력화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나는 가고 싶은데…"라는 말과 함께 코로나19 감염 위험성을 언급한다면 현재로선 이를 적극적으로 배척할 방법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불법 결혼중개 업계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북부 하이퐁과 남부 호찌민·껀터에서 활동하던 기존 현지 브로커들이 코로나19 재확산으로 곤욕을 치르는 사이, 최근 한국의 몇몇 행정사무소를 통한 비대면 결혼비자 신청이 증가하고 있다. 이들의 손을 거쳐 신청된 서류들은 일정한 흐름이 있다. 첫만남의 종류가 지인 소개 혹은 한국어 교육 과정 중 우연한 접촉 등으로 한정되고, 접수도 비슷한 시기에 몰린다. 자연발생적인 인간사의 연애 특성을 고려하면 뭔가 의도적인 조율이 존재한다는 의심을 지우기 힘들다는 얘기다.

한국 여성가족부 관계자도 "여러 정황상 현재의 베트남 비대면 국제결혼 시도는 신종 수법으로 수익을 얻으려는 브로커들이 개입된 것으로 보인다"며 "적절한 검증 시스템 없이 이를 방관할 경우, SNS에서 베트남 신부를 온라인 게임 아이템처럼 손쉽게 사고 파는 세상이 올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규제만이 능사? 국제결혼, 철학적 고찰 절실


문제는 국가 권력이 개인 선택의 영역인 결혼 제도에 전면 개입할 수 없고, 해서도 안 된다는 점이다. 지나친 규제가 중첩되면 인간의 보편적 자유권은 당연히 침해된다. 그 과정에 진정한 사랑에 기반한 국제결혼까지 막힐 가능성 또한 높다. 모든 진실을 직접 확인하기 전까지는 그 누구도 히엔의 국제결혼 시도를 100% 거짓이라고 단언할 수 없듯, 사랑의 마음은 언제나 타인이 측정하거나 판단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비대면 국제결혼에 대한 규제 마련에 앞서, 지금부터라도 양국 관계부처와 재외공관이 철학적 고찰부터 시작해야 하는 이유다.

그러나 이 모든 고민을 청취하고 정돈해야 할 한국 법무부는 아직 사안의 중대성을 직시하지 못한 듯하다. 이미 베트남을 포함, 매매혼이 이뤄지고 있는 동남아 내 복수의 재외공관은 비대면 결혼비자 처리 방향을 이민통합과에 문의한 바 있다. 하지만 지난 3월 돌아온 대답은 "현장에서 인류의 보편적인 기준으로 판단하라. 단, 인도주의적 허용이 필요할 경우 재외공관 재량으로 비자 발급은 가능하다"는 모호한 기조뿐이었다. 가장 중요한 보편성의 정의와 인도주의 적용 기준에 대한 구체적 언급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삶은 때론 먼 길을 원한다." 1997년 개봉한 한국 영화 '접속'은 오프닝 장면에 깔리는 이 짧은 내레이션으로 비대면 시대의 사랑을 조심스레 예측했다. 24년이 흐른 지금, 이제 한국과 베트남이 어긋나고 스치던 극중 수현(전도연 분)과 동현(한석규 분)의 입장에 서 있다. 먼 길을 돌아서라도 만나길 소망하는 양국의 정상적 인연들을 이어가며 부작용은 최소화하는 것.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가 던진 난제를 받아 든 양국에는 시간이 그리 넉넉하지 않다.

하노이= 정재호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