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형마트는 물론이고 TV 홈쇼핑, 심지어 미국 아마존에서도 입고 즉시 품절되는 샴푸가 있다. 일부에서는 사재기 소동까지 일었다. 올해 4월 설립된 국내 신생기업(스타트업) 모다모다가 지난 8월 출시한 '모다모다 프로체인지 블랙샴푸'다. 일명 '모다모다 샴푸'로 알려진 이 제품은 머리를 감으면 흰 머리가 검게 변하는 효과 때문에 입소문을 타고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품절 대란을 일으켰다.
이 제품을 개발한 주인공은 이해신(48) 카이스트 화학과 교수다. 모다모다의 기술총괄(CTO) 역할을 하는 그를 만나 신기한 샴푸의 비밀을 알아봤다.
염색약도 아닌 샴푸가 머리를 검게 만드는 비결은 사과의 갈변 원리였다. 깎아놓은 사과나 껍질을 벗긴 바나나가 시간이 지나면 검게 변하는 것이 갈변 현상이다. 이를 이용한 모다모다 샴푸 용액을 손바닥에 짜낸 뒤 10분 정도 기다리면 색깔이 연갈색에서 점차 검은색으로 짙게 변한다. "갈변은 식물에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에요. 식물이 상처를 입으면 폴리페놀 성분이 흘러나오며 산소와 접촉해 색깔이 검게 변해요. 한약재를 끓이면 검게 변하는 것도 마찬가지죠. 와인을 따놓으면 찌꺼기가 가라앉으며 텁텁하게 변하는 것도 폴리페놀 때문입니다. 이를 샴푸에 적용했어요."
모다모다 샴푸는 폴리페놀 성분이 머리카락을 감싸며 산소와 반응해 사과가 갈변하듯 머리카락을 검게 물들인다. 이때 와인처럼 텁텁한 폴리페놀 성분이 머리카락에 남게 돼 푸석하거나 뻣뻣한 느낌이 들 수 있다. "폴리페놀이 도포되면서 머리카락이 검게 변하고 모발이 두터워져 탈모도 줄어들죠. 머리카락이 뻑뻑하고 푸석한 느낌은 폴리페놀 코팅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에요."
이 교수에 따르면 흰 머리카락이 검게 변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통상 4주다. 유튜브나 블로그 등에 올라온 이용자 후기를 보면 사람에 따라 검은 머리카락이 되기까지 3~5주 걸린다. "한 번 검게 변하면 30일 지나도 색이 95% 유지돼요."
특히 여러 문제로 염색약을 사용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모다모다 샴푸는 희소식이다. "피부 자극을 주는 염색약을 사용하면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거나 항암 치료자 또는 기저 질환자, 예민한 피부, 모발 이식한 사람들은 염색약을 사용하지 못해요. 이들에게 반가운 샴푸죠."
이 교수가 밝힌 모다모다 샴푸의 사용 방법은 간단하다. "짧은 머리는 2~3회, 긴 머리는 4~5회 샴프 용액을 짜내서 2,3분 가량 감아요. 염색약처럼 묻힌 채 오래 둔다고 더 검어지지 않으니 일반 샴푸하듯 쓰면 돼요."
중요한 것은 머리를 말리는 방법이다. "머리를 완전히 말리면 안돼요. 적당히 물기를 털어낸 뒤 약간 물기가 촉촉하게 남은 상태로 놔둬야 갈변이 돼요. 깎아놓은 사과의 표면이 마르면 갈변 현상이 중단되는 것과 같은 이치에요. 수분이 사라지면 갈변 현상이 멈추죠."
일반 샴푸와 섞어 쓰는 것은 기간 조정이 필요하다. "4주간 집중적으로 모다모다 샴푸를 사용해 흰 머리가 검게 변하면 그 뒤에 일반 샴푸와 번갈아 섞어 써도 됩니다."
린스를 함께 사용해도 된다. "모다모다 샴푸의 갈변 효과를 일으키는 폴리페놀 성분 때문에 머리카락이 푸석해지는 사람도 있는데 린스를 사용하면 부드러워지죠. 린스가 갈변 효과를 떨어뜨리지 않으니 함께 사용해도 좋아요."
혹시 피부도 검게 물들지 않는지 걱정할 수 있으나 그렇지 않다. "피부에 기름막이 있어서 갈변을 막아줘요. 다만 손톱은 기름막이 없어서 물들 수 있죠. 이를 막으려고 투명한 손톱강화제를 바르고 샴푸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러면 손톱 갈변을 막을 수 있습니다."
이 교수는 폴리페놀 효과를 지닌 샴푸 제조를 위해 특허 물질 ‘블랙 체인지 콤플렉스’를 개발했다. 이 교수가 개발하고 카이스트가 국내외 특허를 갖고 있는 이 물질은 각종 과일과 식물에서 추출한 성분으로 만들었다. "금만큼 비싼 검은 송로버섯(블랙 트러플), 오디, 검은깨 등에서 성분을 추출했어요."
그래서 원가가 비싸 판매 가격도 1통당 3만4,000원으로 다른 샴푸보다 비싸다. 모다모다의 마케팅 본부장을 맡고 있는 이미진 이사는 "높은 원가 비중 때문에 다른 샴푸보다 수익이 낮아 TV 광고 등 마케팅을 하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모다모다 샴푸의 두 번째 핵심은 특허가 걸려 있는 용기다. 폴리페놀이 산소와 닿으면 갈변 현상이 일어나기 때문에 사용 전까지 산소를 차단해야 한다. 이를 위해 모다모다는 폴리페놀 추출 과정과 샴푸 용기를 진공 상태로 만들었다. 용액과 용기는 각기 다른 공장에서 만든다. "진공 상태의 고온에서 각종 식물의 폴리페놀 성분을 추출하죠. 이후 진공 용기에 담는 공정도 밀폐 상태에서 진행해요."
샴푸 용기를 뜯어보니 내부에 붙어 있는 진공 알루미늄 팩에 용액이 들어 있다. "샴푸 용기는 진공 알루미늄 팩과 용액을 내뿜는 특수 설계된 분사구 등에서 공기를 차단해요."
이 때문에 초기 제품은 분사구가 뻑뻑해 10회를 눌러도 제대로 용액이 분출되지 않는 문제가 발생했다. "이를 고장으로 알고 분사구를 뜯어서 사용한 사람들이 있는데 그러면 갈변 효과가 사라져요. 그러니 절대 분사구를 뜯으면 안됩니다. 지금은 분사구를 개선해 예전과 달리 5번 정도만 눌러주면 용액이 잘 나와요."
현재 모다모다 샴푸는 현대백화점, 이마트, 올리브영 편의점, 대형약국들과 TV홈쇼핑에서 판매한다. 그런데 물량이 충분하지 않아 이마트에서는 사람들이 줄 서서 대기하고 있다가 문 열자마자 달려가 집어 들어 매진되는 '오픈 런'을 일으켰다. 또 롯데홈쇼핑에서는 방송 4분 만에 모두 팔리는 완판 기록을 세웠다. 그 바람에 대형마트와 TV 홈쇼핑에서는 1인당 3개들이 한 세트만 파는 판매제한까지 걸었다.
심지어 사재기 소동까지 일어났다. "제품을 전세계에게 알리려고 6월 말에 미국 킥스타터에서 크라우드 펀딩을 했어요. 그때 일부 해외 유통상들이 대량 사재기를 했어요. 이를 킥스타터에서 알고 펀딩을 취소시켰죠. 일부 유통상 때문에 선량한 소비자들이 피해를 보면 안되겠다는 생각에 비용을 들여 펀딩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1병씩 무료로 줬어요. 배송비 포함해 1억 원 손해를 봤죠."
국내 판매 때도 마찬가지였다. "판매 첫 날 구매자들이 몰려 홈페이지가 마비됐어요. 한 사람이 80회 구매를 하며 사재기를 한 경우도 있었죠. 사재기 한 사람 중 일부는 중고 앱 등에서 1병당 8만~30만원에 되팔기도 했어요. 안되겠다 싶어서 지나치게 많이 구매한 사람들을 일일이 찾아내 취소시켰어요. 그때 회사가 욕을 엄청 많이 먹었어요."
모다모다는 물량 부족 해소를 위해 생산을 확대한다. 이 이사에 따르면 모다모다의 월 생산량을 현재 100만병에서 다음달부터 200만병으로 늘릴 계획이다.
내년에 핵심 용액 공장도 지을 계획이다. 원가를 낮추기 위해 지금과 다른 방식의 용기도 연구 중이다. "현재 외부 공장에 위탁 생산하는 용액을 직접 만들기 위해 내년에 공장을 지을 예정입니다.”
모다모다 샴푸는 해외에서도 인기를 끌며 미국, 일본, 대만 등에 수출 중이다. "미국 식품의약국(FDA), 일본 정부의 승인을 받고 수출 중이죠. 일본이 제일 까다로운데 일본 판매 승인도 통과했어요. 미국에서는 아마존과 한인 대형마트 H마트를 통해 판매 중인데 아마존의 경우 제품이 입고되는 즉시 바로 품절돼 항상 매진 표시가 떠요."
모다모다는 유럽, 아프리카 등으로 수출국을 더 늘릴 예정이다. 여기 맞춰 미국과 동남아에 공장도 늘릴 방침이다. "내년에 미국과 태국 등에 공장을 짓는 방안을 논의 중이에요. 내년에 1,000억 원 수출을 기대하고 있어요."
그런데 모다모다 샴푸는 최근 유럽연합(EU) 결정과 관련해 논란이 됐다. EU 소비자안전과학위원회(SCCS)는 9월에 파라페닐렌다이아민(PPD)과 트리하이드록시벤젠(THB)이 함께 들어간 염색약 사용을 금지했다. 염색약 주성분인 PPD와 THB가 결합하는 과정에서 하등 동물인 박테리아에 독성 반응을 일으킬 수 있어 사용을 금지시킨 것이다. “해당 독성 반응은 인체에서 발생한 것은 아니지만 EU가 안전 차원에서 금지시켰죠. EU, 터키 외 미국 일본 우리나라 등 다른 나라에서는 THB를 허용해요."
모다모다 샴푸에도 THB가 들어간다. THB는 모다모다 샴푸의 주성분인 폴리페놀을 결합시켜 색깔이 검게 변하는 효과를 발휘하도록 촉매제 역할을 한다. "모다모다 샴푸는 염색약과 달리 PPD 성분이 아예 없어서 THB가 유해 반응을 일으키지 않아요. 그런데 이런 내용을 모르는 사람들이 THB 성분만 보고 유해 논란을 주장했죠."
원래 이 교수는 카이스트에서 생물학을 전공했다. 이후 미국 노스웨스턴대학에서 생물학 석,박사 과정을 마치고 매사추세츠 공대(MIT)에서 박사 후 연구원(포스닥) 과정을 거쳤다. 이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으로 유명한 모더나의 창업자 중 한 사람인 로버트 랭거 교수 밑에서 의료용 접착제를 연구하다가 카이스트 화학과 교수가 됐다. "의료용 접착제는 아주 중요해요. 수술을 받으면 눈처럼 실로 꿰맬 수 없는 부분이 있어요. 그래서 위나 대장에 암이 발생해 잘라내면 일종의 핀인 의료용 스테이플로 찍죠. 그러면 그 부분이 자체 운동을 하면서 점점 찢어져요. 이럴 때 의료용 접착제가 필요해요."
이 교수는 홍합에서 폴리페놀을 뽑아내 의료용 접착제와 지혈제를 만드는 연구를 9년간 했다. 그가 만든 의료용 접착제 및 지혈제 '이노실'은 임상을 거쳐 사용 승인을 받았다. "동물에도 폴리페놀이 있어요. 이를 이용해 의료용 접착제와 지혈제를 개발했죠. 피에 섞여 있는 혈장 단백질에 폴리페놀이 달라붙어 지혈 효과가 발생하고 생체조직을 연결하는 접착력이 생겨요."
이 교수는 의료용 접착제를 뒤집는 역발상으로 모다모다 샴푸를 개발했다. "의료용 접착제는 산소 차단이 중요해요. 폴리페놀이 산소에 닿아서 검게 변하면 생체 조직끼리 붙는 접착력과 지혈 효과가 떨어져요. 이를 뒤집어 폴리페놀을 활용해 머리카락을 검게 만들자는 아이디어를 떠올렸죠."
이 교수는 약 1년 6개월 연구 끝에 샴푸를 개발했다. 이렇게 개발한 샴푸를 의약품 유통을 하다가 화장품 개발에 뛰어든 BH랩의 배형진 대표에게 소개해 스타트업 설립과 제품화로 이어졌다.
모다모다는 BH랩에서 100% 출자했다. 머리카락(毛)을 풍성하게(多) 해준다는 뜻의 제품명은 양 사 대표를 겸하는 배 대표가 지었다. "배 대표는 2014년에 처음 만났어요. 그가 미백 화장품을 만들고 싶다며 학교로 찾아와 오랫동안 자문을 해줬죠. 그 인연이 모다모다 샴푸로 이어졌죠."
검은색으로 물들이는 샴푸를 개발한 것은 전세계에서 흑발이 가장 많기 때문이다. "전세계 인구의 97%가 흑발, 2%는 완전 금발, 나머지는 갈색, 붉은 머리 등이죠. 그만큼 모다모다 샴푸는 시장이 넓은 제품이에요."
하지만 이 교수는 모다모다 직원이 아니다. 직원처럼 모다모다의 기술 개발만 도울 뿐, 연구하고 강의하는 것이 좋아서 학교를 떠날 생각이 없다. 크게 성공한 샴푸 덕분에 돈을 많이 벌었냐는 질문에 그는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모다모다가 기술 사용료를 카이스트에 주면 학교에서 개발자인 저에게 일부를 나눠줘요. 카이스트에서 연구와 강의를 하면서 제품 개발을 병행해 세계적인 브랜드로 키우고 싶어요."
이 교수는 다른 색깔로 물들이는 샴푸도 개발 중이다. "국방색 등 다양한 색깔로 물들이는 샴푸를 내년 초에 선보일 겁니다. 푸른색, 갈색, 붉은색, 회색 등 사람의 눈동자에 있는 여러 색깔로 물들일 수 있어요. 폴리페놀 원리와 멜라닌 색소 변화 효과를 이용했죠."
린스도 내놓는다. "모다모다 샴푸와 함께 쓰면 머리가 검게 물드는 시간을 4주에서 2,3주로 당겨주는 린스를 올해 안에 출시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