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선택’이라는 말은 중고차나 생명보험 시장 등에서 정보의 비대칭으로 자원의 효율적 배분이 저해되는 현상을 나타내는 경제 용어다. 그런데 2002년 노무현-정몽준 단일화 국면에서부터는 주로 정치 기사에 등장하고 있다.
이회창 후보 지지자들이 두 사람 중 쉬운 사람을 고르기 위해 경선에 개입할 수 있다는 것이 당시 ‘역선택’론의 골자였다. ‘역선택’은 ‘민의의 왜곡’으로 받아들여졌고 이를 배제하기 위한 장치들이 당시에도 논의됐다.
이후 이 단어는 2012년 문재인-안철수 단일화 국면에서 다시 전면에 등장했다가 올해 경선 국면에서 또 생명력을 얻었다. 완전히 예상 밖의 결과가 나온 더불어민주당 ‘3차 선거인단’ 투표, ‘위장 당원’ 논란까지 나온 국민의힘 경선을 통해 논란이 뜨거워지고 있다.
사실 전문가들의 기존 중론은 “머릿속 그림으로는 가능하지만 현실에서는 실재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먼저 특정 정당 대선 후보 선출 결과를 바꿀 수 있을 규모의 상대당 지지자 집단이 조직되어 전략적 역선택을 실천한다는 것은 ‘뇌피셜’에 가깝다는 것이다. 기술적으로 보면 무작위로 선정되는 전국 단위 아웃바운드 여론조사(불특정한 대상을 상대로 주최측이 전화를 걸어 답을 얻는 여론조사) 전화가 마침 나에게 올 것을 대비해 준비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인바운드(사전에 등록된 당원과 선거인단을 대상으로 진행) 경선에 참여하기 위해 지지하지도 않는 정당의 당적을 보유하거나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 선거인단에 등록할 만큼의 개인적 유인이 높을 수도 없다.
하지만 최근 상황을 보면 “역선택은 없다. 혹은 불가능하다”는 기존 논리가 꽤 흔들리는 것 같다. 일단 물리적 장애물이 많이 사라졌다. 여러 정당들이 앞다퉈 입당과 선거인단 가입의 벽을 낮췄다. 디지털 시스템의 발달로 인해 스마트폰을 통한 클릭 몇 번이면 정당의 후보 선출에 참여할 수 있다. 아웃바운드 여론조사를 대비하는 것은 극히 어렵지만 인바운드 경선에 참여하는 것은 의지와 노력으로 가능한데 그 소요량이 확 줄어들었다.
정치적으로 봐도 그렇다. ‘전략적 역선택’ 대신 ‘응징’, ‘심판’의 관점에서 본다면 지지하지 않는 정당의 후보 선출에 개입하는 것은 심리적, 정치적 부담이 덜한 대신 동력은 더 강하다. 경선 참여든 본선거 투표든 유권자들의 모든 행위는 ‘좋아하는 사람의 당선’과 ‘싫어하는 사람의 낙선’이라는 두 가지 목표로 수렴된다. 기존의 역선택 개념이 ‘좋아하는 사람을 당선시키기 위해 경쟁력 있는 상대방을 방해한다’는 것이라면 최근에 나타나는 양태는 ‘싫어하는 사람을 경선에서부터 저지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당내 경선에 참여하는 유권자들의 심리적, 정치적 이유와 별개로 조직화 양상도 급변하고 있다. ‘포럼’ ‘모임’ 등의 이름을 달고 있는 정치적 외곽조직의 결성이나 산악회나 향우회 같은 기존 조직에 대한 작업 혹은 ‘드루킹’ 같은 불법 조직을 통한 개입이 과거의 모습이었다면 이제는 온라인 커뮤니티, 오픈카톡방, 트위터 등이 더 힘있는 무대다. 조직적 지시와 수행도 없고 금전적, 정치적 보상도 없다. 서로 모르는 개인들이 특정 후보를 반대하고 응징하기 위해 뭉친다. 타격을 준 이후엔 또 개인으로 흩어진다.
모든 정치인이 이런 위험에 노출되어 있지만 기본적으로 반대자가 많으면서 지지율도 높은 후보가 그 주요 대상이다. 글로벌 테러의 주된 목표물이 미국인 것과 같은 이치다.
법으로 막을 수도 없고 조직으로 막을 수도 없다. 이 역시 엄연한 민심이다. 그런데 당하는 후보나 소속 정당의 입장에서 보면 곤혹스럽기 짝이 없다. 이 민심에 대한 대응책을 찾는 쪽이 이번 대선에서 이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