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여론조사 결과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와 국민의힘 소속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 대한 20대의 비호감도를 뚜렷하게 보여준다. 8일 한국갤럽 10월 1주차 조사에서 이 후보와 윤 전 총장은 20대에서 각각 16%, 2% 지지를 얻는 데 그쳤다. 전 세대 평균지지율(이재명 25%, 윤석열 20%)에 한참 못 미치는 수치다.
7일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의 전국지표조사(NBS) 결과도 유사했다. 이 후보와 윤 전 총장의 지지율은 20대에서 각각 7%, 5%에 그쳐, 전 세대 평균지지율 26%, 17%와 차이가 컸다. 홍준표 국민의힘 의원이 20대에서 각각 21%, 29% 지지율로 전 세대 평균지지율(갤럽 12%, NBS 15%)을 웃돈 것과 대조적이다.
이를 근거로 20대를 '정치 무관심층'으로 속단할 수만은 없다. 이들은 2016년 촛불혁명을 경험했고 2017년 대선에서도 2012년 대선(68.5%)에 비해 대폭 상승한 투표율(76.1%)을 기록한 세대다. 문재인 정부 들어 연전연승하던 민주당이 4·7 서울·부산시장 재보궐선거에서 참패한 배경에도 이들이 변수로 작용했다. 참여를 통한 대통령 탄핵과 정권 교체라는 '정치 효능감'을 일찌감치 체험한 이들이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무엇이 20대로 하여금 내년 대선후보들에게 등을 돌리게 했을까. 여론조사 수치의 행간을 읽기 위해 한국일보는 13, 14일 직장인, 대학생, 취업준비생 등 20대 26명에게 여야 주요 후보들에 대한 생각을 들어봤다.
본보가 만난 20대의 속내는 "대선이 아니라 '비호감 월드컵' 같다"는 말로 요약된다. 이에 '○○○ 대세론'은 물론 과거에 표를 준 정당에 대한 지지를 계속하겠다는 관성도 찾기 어려웠다. 진영에 따라 일찌감치 지지후보를 정한 4050세대와 60대 이상과는 전혀 다른 양상이다.
26명 중 내년 대선에 투표 의사가 없어나 지지 후보를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는 이들이 17명(65.3%)에 달했다. "투표에 참여하되 기권하겠다"(3명), "투표하지 않겠다"(5명), "뽑을 사람을 정하지 못했다"(9명)는 반응이었다. 지지 후보가 없는 만큼 현재 거론되는 여야 후보들에 대한 평가도 박할 수밖에 없었다.
후보들에 대한 비호감은 지지 정당에 대한 애정도 희석시키는 듯했다. 호남 출신으로서 '느슨한 민주당 지지자'라고 밝힌 취업준비생 김진솔(25)씨는 "이재명·윤석열, 이재명·홍준표 중 한 명을 꼽으라는 것은 비호감 이상형 월드컵 같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에 부정적인 20대 남성 중에는 국민의힘 대선후보들에게도 '공정'이란 잣대를 들이대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국민의힘 지지자'라고 밝힌 대학원생 조현재(25)씨는 '공정'을 기준으로 보수 정당 내에서 지지 후보를 바꿨다. 조씨는 "20대 남성들은 내로남불하지 않는 걸 원한다"며 "윤 전 총장은 진보, 보수 어떤 편에도 서지 않고 공정하게 할 거라 생각했는데 부인과 장모 사건 등이 터지는 걸 봤을 때 '과연 공정할까'라는 의구심이 들었다"고 했다.
20대 여성들은 약자에 대한 배려 없이 '룰'에만 초점을 맞추는 공정 담론을 부정 평가했다.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을 제기하는 국민의힘 대선후보들에게 거리를 느낀다고 했다. 그렇다고 민주당에 대한 실망을 거두지도 않았다. 프리랜서 윤모(26)씨는 "오징어게임처럼 서로 죽여 남은 한 명이 돈을 갖는 게 공정이라고 생각하면서 오히려 모든 사람이 죽지 않고 살아남는 방법을 찾지 않는다"며 "그걸 말하는 후보가 아무도 없는 것 같다"고 했다. 윤씨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는 오세훈이 싫어서 박영선을 뽑았지만, 대선에선 이재명과 윤석열 모두 싫다"고 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접하는 여야 후보들의 언행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많았다. 상대 진영을 향한 비방과 저돌적인 행동에서 시원함을 느끼기보다 '구태 정치'가 연상된다는 반응이 많았다.
직장인 강민현(26)씨는 "막말을 하더라도 선을 넘지 않아야 하는데, 여야 모두 자극적인 말만 하는 것 같다"며 "그런 점에서 이재명이나 윤석열은 본질적으로 비슷하다"고 꼬집었다.
2018년 지방선거에서 이 후보가 경기지사로 당선된 직후 생방송 인터뷰에서 자신에게 불편한 질문을 한다는 이유로 도중에 자리를 뜬 일을 '비호감 언행'으로 언급하는 응답자도 있었다. 윤 전 총장에 대해선 손바닥에 왕(王)자를 적은 채로 TV토론에 등장한 일, 홍 의원에 대해선 2017년 대선에서의 '돼지 발정제' 발언을 거론했다. 지지층 결집을 위해 여야를 불문하고 경쟁후보에 대한 날 선 비판만 앞세우는 여야 후보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은 대목이다.
냉랭한 시선의 배경엔 촛불을 함께 들었던 민주당에 대한 실망, 한번 낙제점을 준 국민의힘에 대한 여전한 의구심이 있다. 여야를 떠나 이를 반전시켜줄 만한 후보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20대 다수는 2017년 19대 대선에선 정권교체에 힘을 실었다. 당시 지상파 방송 3사의 공동 출구조사 결과, 20대(47.6%)는 30대(56.9%)와 40대(52.4%)에 이어 민주당 후보에게 표를 많이 준 세대였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조국 사태'를 거치면서 기대는 실망과 분노로 변했고, 투표 성향의 변화로 이어졌다.
4·7 재보궐선거 당시 지상파 방송 3사 출구조사에서 20대의 55.3%는 국민의힘을 택했다. 70대 이상(74.2%), 60대(69.4%) 다음으로 국민의힘 후보에게 표를 몰아준 세대였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20대는 탄핵을 통해 민주당에 대한 일체감과 호감을 가졌으나 현 정부를 거치는 동안 그중 일부가 반감을 갖게 된 것"이라고 했다.
20대는 최근 최대 부동층으로 주목받고 있다. 14일 NBS 조사에서 이 후보와 윤 전 총장의 가상대결 시 "뽑을 후보가 없다"고 한 응답은 20대에서 38%(이 후보와 홍 의원 대결 시 26%)로 전 세대 중 가장 높았다. 지지 후보를 정한 응답자 가운데 "지지 후보를 바꿀 수 있다"는 응답도 20대에서 69%로 전 세대 평균치(38%)를 크게 웃돌았다.
전문가들은 20대가 대선의 캐스팅 보트를 쥘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한다. 허진재 한국갤럽 이사는 "40대는 여당을 강하게 지지하고, 60대 이상은 보수 야당을 지지하는 흐름이 변화할 여지는 많지 않다"며 "후보를 정하지 않은 20대 표심이 중요해지는 이유"라고 분석했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20대 여성에게선 민주당 지지율이 일부 회복됐지만 이재명 후보로 결집하고 있지 않다"며 "이들의 결집 여부는 대선 결과의 주요 변수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자세한 여론조사 결과는 한국갤럽, NBS나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