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에 발매된 블리자드의 액션 롤플레잉 게임 '디아블로 2'가 9월 '레저렉션(부활)'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부활한 지 3주가 지나도록 서버 안정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20년 전 게임을 즐기던 '그 시절'을 추억하는 게이머들이 대거 몰리면서 접속 불가 상황이 빈발한 것이다.
게이머들은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올리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불만을 드러내면서도 결국 온라인 서버가 열릴 때만 두 손 모아 기다리고 있다고 호소한다. 특히 나이가 많은 '옛 게이머'들을 다시 컴퓨터 앞에 불러 앉혔다는 면에서 '디아블로 2'만의 독특함이 드러난다.
'디아블로 2'는 2000년(오리지널)과 2001년(확장팩)에 걸쳐 발매된, 지금으로서는 고전의 반열에 드는 중세 판타지 배경 게임이다. 내용 구조는 단순하다. 게이머가 영웅 역할을 맡아 악마를 사냥하고 지옥으로 들어가 '대악마'로 불리는 디아블로와 그 형제들을 쓰러트린다. 발매 1년만에 전 세계적으로 400만 장 이상이 팔려 게임 제작사로서 블리자드의 명성을 끌어올렸고, 한국에서도 당시 빠르게 늘어나던 PC방의 대표 게임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
이번에 발매된 '레저렉션'은 이 때의 경험을 거의 그대로 되살리면서 그래픽만 현대 수준에 걸맞게 고쳤다. 이러다 보니 당시의 게임을 경험하겠다는 '옛 게이머'들과 고전을 새로 체험해보겠다는 '새 게이머'들이 너나없이 악마 사냥에 나서기 시작했다.
인기가 커지면서 게이머들이 몰려들자, 디아블로2 게임에 접속은 번번이 실패했다. 오늘날 대부분의 게임이 그렇듯 이 게임도 온라인에서 개인의 플레이 상황을 업데이트하면서 진행되는데, 이 정보 처리 용량이 게임 서버가 수용할 수 있는 용량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문제는 특히 발매 3주가 지난 9일~15일 극심했다. 멀쩡하게 진행되던 게임이 갑자기 꺼지기도 했고, 애써 키운 영웅 캐릭터의 능력치나 얻은 귀한 아이템이 서버에 저장되지 않는 '롤백' 현상도 종종 일어났다.
이에 게이머들은 공식 홈페이지의 토론장과 곳곳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분노를 표출했다. "4만 8,000원이나 주고 샀는데, 게임을 할 수가 없으니 그냥 환불해 달라" "소비자 보호원에 고발하겠다" 등의 주장이 쏟아졌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조차 "모 회사의 만행을 고발한다"는 국민청원이 올라왔다. 이 청원인은 "매일매일 서버가 마비되어 이용할 수 없는 경우가 다반사"라며 "정확하고 공식적인 입장 전달이 게임을 결제한 이용자들에게 전혀 없다"고 주장했다.
이는 한국만 그런 것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모든 서버가 비슷한 곤란을 겪었다. 영어권 최대 커뮤니티 '레딧'에 게임의 영문판 부제인 '부활된(Resurrected)'을 '연결 끊김(Disconnected)'으로 바꿔야 한다는 패러디 게시글이 올라올 정도다.
블리자드는 고객지원 트위터를 통해 '서버 복구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와 '서버가 복구됐다'는 알림을 계속 이어 왔으나 성난 '민심'을 가라앉히기엔 역부족이었다.
결국 블리자드 측은 15일 공지를 통해 "중요한 진행 상황이나 귀중한 아이템을 잃어버리신 플레이어 여러분께 진심으로 죄송하다"라며 "고통을 깊이 공감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오늘날 게이머들의 플레이를 과거의 코드가 따라가지 못했다"는 것을 문제의 원인으로 적시했다.
블리자드에 따르면, 현재 다수 게이머들이 게임 내 귀한 아이템을 획득하는 가장 효율적인 비법을 활용하기 위해 게임의 '방(인스턴스)'을 생성하고 삭제하는 작업을 빠른 시간 내에 반복하고 있다. 게임이 처음 나왔던 20년 전이나, 베타테스트 기간에는 발생하지 않았던 일이다. 이 때문에 전 세계 접속 서버와 데이터베이스가 과부하에 걸렸다는 설명이다.
블리자드는 임시 해결책으로 ①게임 방의 생성 속도를 제한하고 ②접속 대기열을 만들어 이용자가 일정 시간 서버 밖에서 대기하도록 제한하는 방안을 도입했다. 동시에 "이는 궁극적인 해결책이 아니라는 점을 알고 있다"면서 게임을 빠르게 생성해도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장기적으로 게임을 업데이트할 것이라고 밝혔다.
게임 속 지옥을 여행하려다 "지옥 같은" 서버를 체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게이머들 중 일부는 '디아블로 2'를 당장 포기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이용자들은 서버 운영이 문제일 뿐, 예전의 체험을 그래픽 수정만으로 되살렸다는 점 때문에 게임 자체는 높은 점수를 주고 있다.
실제로 이번 '접속 대란'을 겪고 있는 게이머 다수는 최근 게임에 접속한 적이 없는 '올드 게이머'들이라, '20년 전'의 추억을 체험하고 싶다는 의지가 강하다. 한 국내 이용자는 "서버가 아무리 터져도, 이 게임은 나에게 선물이다"라며 자신이 20년 전 처음 게임을 접한 추억을 떠올렸다.
추억을 되살렸다는 사연은 해외에서도 볼 수 있다. 레딧의 디아블로 주제 서브레딧(게시판)을 이용하는 한 이용자는 "디아블로 2 레저렉션으로 인해 15년 만에 형과 함께 게임을 했다"고 밝혔다.
그에 따르면, 자신의 형은 20대 초반에 결혼하고 직장을 얻으면서 게임을 완전히 끊었지만, 동생인 글쓴이가 어렸을 적 플레이한 디아블로 2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자 "사라져 버린 불꽃을 다시 태우는 것처럼" 자신을 쫓아내고 게임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글쓴이는 "서른 살 먹어서 형한테 컴퓨터 게임을 빼앗겼지만, 기분이 좋았다"며 "그동안 업무나 자녀, 정치 등의 주제로만 이야기했던 형과 15년 만에 다시 게임을 할 수 있게 된 것이 기쁘고, 내일이 정말 기대된다"고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