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 받은 실증 경제학, '중도좌파' 정책의 이론적 밑바탕 되는 까닭은

입력
2021.10.17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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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이 일자리 안 줄여" "이민자 임금저하 없어"
실제 세계 사례 연구 결과, '교과서적 이론'과 달라
크루그먼 "경험적 연구, 정부 개입 긍정하게 돼"


2021년 노벨 경제학상은 '경험 연구' 혹은 '실증 연구'로 불리는 연구 방법론에 돌아갔다. 공동수상자 데이비드 카드, 조시 앵그리스트, 휘도 임번스는 모두 경제학에서 현실의 데이터를 파악하고 이를 통해 사실상의 '자연실험'을 전개하는 방식을 크게 확대한 공헌으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다. 사고실험과 이론에 머물렀던 원론 수준에서 벗어나 세상을 이해하는 학문으로서 경제학의 깊이를 더 깊게 한 것으로 평가받았다.

게다가 이들 연구의 의의는 방법론의 전환에서 그치지 않는다. 실제로 나온 결론도 교과서적 이론이 예상한 결말과 판이한 경우가 많았다. 때때로 이들은 경제학의 핵심 가정을 부정하기까지 했기 때문에 늘 격론에 휩싸였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혁명적'이었다. 현실을 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고, 정부의 개입을 긍정하는 '중도 좌파' 성향의 정책에도 학술적 근거를 제공하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 → 일자리 감소 아니다" 연구, 노동경제학에선 '상식'



데이비드 카드는 앨런 크루거와 함께 1994년 진행한, '최저임금의 인상은 일자리를 줄이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린 연구로 유명하다. 1995년 내놓은 '신화와 측정'이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들은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을 줄인다는 기존의 상식을 '신화'로 규정했다. 이들의 최초 연구는 최저임금을 올린 뉴저지주와 올리지 않은 펜실베이니아주의 패스트푸드 산업을 비교한 결과, 최저임금을 올리더라도 고용량이 감소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당연히 당대 경제학자들은 반발했다. 1994년 연구가 '일시적'인 것이며 입증되지 않았다는 증거를 찾기 위해 노력했고 통계 수집이 잘못됐다고 공박했다. 하지만 카드와 크루거 본인들뿐 아니라, 그들의 기법을 이어받은 수많은 연구자들이 최저임금에 관한 데이터 연구를 축적했다. 그 결과, 현재 미국의 노동경제학자들은 최저임금의 인상이 고용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을 통설로 삼고 있다.

게다가 이런 '경험적 연구'의 결과는 경제학 이론으로도 충분히 설명이 가능하다. 카드를 비롯한 경제학자들은 미국의 저임금 노동시장이 '수요자 독점(monopsony) 노동시장'이라는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이 이론에 따르면, 현실적으로 노동자가 새 일자리를 탐색하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에 가능하면 현재의 일자리를 지키려 하고, 고용자는 이를 이용해 실제 가치보다 낮은 임금 수준을 강제할 수 있게 된다. 이 이론이 맞다면 정부가 개입해 최저임금 수준을 설정하는 것은 오히려 왜곡된 임금 수준을 균형으로 되돌리는 효과를 낳을 수 있다.

서울대 경제학부의 이준구 교수는 12일 카드의 노벨상 수상 소식을 전하면서 "아직까지 카드 교수와 크루거 교수의 연구 결과가 잘못된 것이었다는 결정적인 증거는 제시되지 못한 상황"이라며 "오히려 그들의 연구가 경제학계에 신선한 충격을 가져왔다는 긍정적 평가가 더 많다"고 전했다.



'이론파'의 반론에 맞서 담금질 된 연구



이준구 교수가 밝혔듯, 모든 경제학자가 카드의 연구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모든 상황에서 항상 이런 연구 결과가 통하는 것도 아니다. 미국기업연구소(AEI) 같은 보수 싱크탱크나 더 극단적인 '미제스학파' 등 자유지상주의 성향 경제학자들은 이런 연구를 반박하기 위해 '경험적 방법론'이 이론만큼 분명한 결론을 내려주는 것은 아니라는 주장을 폈다. 근거가 되는 데이터 또한 순수하지 않을 수 있으며 편향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다른 통계자료를 수집해 카드와 크루거의 연구를 반박하려 시도한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경험적 방법론을 채택한 연구자들은 논쟁에 맞서며 변수를 통제하고 데이터를 선정해 '자연실험'의 신뢰성을 꾸준히 강화해 왔다. 이들의 뒤를 이어 최저임금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접경지역 연구'라는 방법을 채택했는데, 이는 주 경계선에서 같은 경제권역으로 묶이지만 다른 제도의 적용을 받는 사례를 비교하는 방법이다. 결론은 카드의 연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카드는 노동시장 연구 외에도 다양한 분야에 '경험적 방법론'을 적용했는데, 최저임금 연구만큼 격론을 불렀던 연구가 '이민자 유입이 노동시장에 끼치는 영향' 연구다. 카드는 1980년 쿠바에서 마이애미로 쿠바인 12만5,000여 명이 한꺼번에 밀려들어왔을 때 기존 거주자들의 임금이 어떻게 됐는지 파악하는 연구를 했다. 결론은 단기적으로나 장기적으로나 기존 거주자들의 임금 수준은 이민자 유입 전후에 큰 차이가 없었다는 것이었다.

이 연구도 저숙련 노동자 유입에 반대하는 경제학자들의 반발을 불렀지만, 많은 후속 연구가 이어지며 카드의 주장을 뒷받침했다. 2017년 미국과학아카데미는 "여러 학자들의 누적된 실증 연구 결과를 종합한 결과 이민자 유입이 노동자 임금 수준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작다"는 결론을 내렸다.



크루그먼 "실험경제학은 '중도 좌파' 정책의 논거가 된다"



경제학계에서는 '경험적 방법론'의 노벨상 수상을 크게 환영하면서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경제학상이 발표될 때마다 있는 일이지만, 올해는 특히 다양한 분야에서 경제정책에 미치는 함의가 크기 때문에 더욱 관심을 끌고 있다.

2008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는 11일 트위터에 "이 상은 경제학에 '신뢰성 혁명(credibility revolution)'을 주도한 이들을 위한, 결론보다는 방법론에 관한 상이다"라면서도 "현재 정책 관련 논쟁에 미치는 함의가 매우 크다"고 강조했다.

그에 따르면 경험적 방법론을 도입한 연구는, 전부는 아니지만 대체로 기존의 경제학 이론과 다르게 정부 개입의 효과를 긍정하는 쪽으로 결론이 난다. 이유는 간단하다. 현실은 이론이 아니기 때문이다. 현실에는 이론의 세계에서 존재하지 않는 '마찰'들이 있기 때문에 결코 완전 경쟁 시장이 아니고, 이 때문에 이를 기준으로 만들어진 정책은 외려 불평등을 심화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크루그먼은 "현실 정치가 경제학 교과서 초반에 배우는 '개론'에 매몰돼 유인(인센티브) 효과와 시장 경쟁을 지나치게 강조해 왔는데, 현대의 경험적 연구 결과가 그런 자유시장 근본주의를 매우 자주 무너트린다"면서 "새로운 방법론을 동원한 연구 결과가 모두는 아니지만 대부분 정부의 개입을 긍정하고, '중도 좌파' 정책을 지지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이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특히 미국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 정책으로 정부가 실업급여를 대폭 확대한 것도 경험적 연구가 뒷받침됐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코로나19 확산 충격에 대응하기 위해 각국 정부는 대대적 부양책을 썼으며, '더 낫게 재건하자(Build Back Better)'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구호도 시장에서 정부가 충분히 적극적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새로운 경제학의 가정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인현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