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마시는 시간 초 단위 기록... 원청·용역업체는 중간착취 공범

입력
2021.10.14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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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착취의 지옥도, 그 후]
<16> 중간착취 근절 공동토론회


"민간위탁 업체는 상담사들이 화장실 가는 시간, 물 마시는 시간까지 초 단위로 기록한 뒤 인센티브를 차등 지급해요. 원청과 업체와의 계약서에는 '직접 인건비는 도급 인력(상담사)에게 100% 지급하여야 한다'고 명시돼 있는데도, 직접 인건비 일부를 인센티브로 전용하는 거죠." (이조은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지부 대전지회장)

“서울시가 기획재정부에 보고한 상담사 인건비 예산 자료와 우리가 실제 받는 평균 임금을 비교해보니 일반 상담사는 월 20만원 이상, 중간 관리자는 40,50만원 정도를 예산보다 덜 받았어요.” (최윤희 서비스연맹 SH콜센터지회장)

세후 170만~180만원, 최저임금 언저리만을 받는 노동자에게는 못 받는 돈이 한달 10만원이라도 피와 같다. 그에 대한 울분을 정치권은 과연 제도 개선으로 풀어낼 수 있을까.

13일 서울 국회 본청 220호 영상회의실에서 ‘중간착취 근절을 위한 법제도 방안 공동토론회’가 열렸다. 민주노총, 장혜영 정의당 의원,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가 공동주최한 이 토론회는 한국일보가 올해 초부터 연속 보도하고 있는 ‘중간착취의 지옥도’ 기사를 계기로 마련됐다.

사회를 담당한 장혜영 의원은 "중간착취 근절을 위해서는 공공기관 경영에 대해 관리감독권한을 가진 기획재정부와 고용노동부 및 행정안전부 등 범 부처 차원의 개선 노력이 이어져야 하지만,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박희은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전 산업에 걸쳐 외주화가 진행되었고 25년이 지난 지금도 간접고용 현장은 불법과 편법으로 점철되고 있다"며 "노동자를 중간착취할 수 없게 법, 제도 개선에 힘을 모아주길 당부드린다"고 말했다.

이날 참석한 노동자들은 모두 공공부분에서 일하고 있다. 사기업의 파견·용역업체 소속 노동자들은 노조가 없는 경우가 많아 토론회에서도 그 목소리를 듣기가 어려웠다.

"원청의 묵인 속 월 20만~50만원 떼여"

지난해 한 민간위탁업체는 건보공단과 상담사 1인당 214만원(세전)을 직접 인건비로 지급하기로 콜센터 운영 도급계약을 맺었다. 계약서에도 직접 인건비는 상담사 몫이라고 명시돼 있지만, 상담사의 월급은 인센티브 8만원을 더해도 세후 186만원(세전 201만원)뿐이었다. 업체가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기본급을 정한 후, 남은 인건비는 ‘변동 인센티브’라는 명목으로 상담사마다 차등 지급했기 때문이다. 상담사들을 경쟁시켜 업체 평가를 잘 받기위해 모두에게 균등하게 돌아가야 할 직접 인건비를 인센티브로 전용해 사용한 것이다.

건보공단 콜센터 이조은 지회장은 "업체는 업무 처리 시간 등 근로시간 중 노동자의 행적을 낱낱이 기록하고, 점수화한 뒤 인센티브를 차등 지급한다"며 "최하위는 0원, 최상위 상담사는 그 달에 30만원의 인센티브를 받는 구조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 때문에 직접 노무비를 받지 못하는 상담사들이 속출하고 있다”며 “건보공단이 이를 묵인하는 것은 외주화된 업무에서 극도의 착취를 일삼고자 하는 나쁜 공공기관의 모습”이라고 비판했다.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의 콜센터 위탁업체도 마찬가지다. 최윤희 지회장은 "원청인 SH공사는 서울시 생활임금(2021년 시급 1만702원)으로 상담사 인건비를 책정하지만, 업체는 최저임금(시급 8,720원)으로 기본급을 준다"고 분노했다. 역시 상담사에게 0~20만원으로 인센티브를 차등지급한다. 그런데 인센티브를 포함한 상담사 평균 임금도 SH공사가 업체에 지급한 것보다 월 20만~50만원이 적다.



시중노임단가 지켜지지 않아

공공기관 자회사도 용역업체와 다르지 않다. 배동산 공공운수노조 공공기관사업팀장은 "공공기관과 자회사는 일종의 '공범'관계로, 함께 노동자 임금을 도둑질하는 이중착취를 벌인다"고 비판했다. 그에 따르면 원청인 공공기관은 '예정가격'과 '낙찰률' 2가지를 이용해 자회사에 주는 인건비를 대폭 낮춘다.


공공기관은 자회사와 용역계약을 맺을 전 법과 지침에 따라 해당 사업에 소요되는 비용인 '예정가격'을 정한다. 이 때 노동자 인건비는 시중노임단가(중소기업중앙회에서 발표하는 일종의 업종 평균임금)를 기준으로 해야한다.

하지만 상당수 공공기관이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하거나, 설계원가보다도 낮게 예정가격을 정한다.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말 자회사를 운영하는 72개 공공기관(모기관)을 점검한 자료를 공공운수노조가 분석한 결과, 법을 위반해 시중노임단가에 미달하게 노무비를 설계한 곳이 절반(35개·48%)에 달했다.

‘낙찰률 꼼수’도 흔하다. 배동산 팀장은 "공공기관은 자회사와 경쟁입찰이 아닌 수의계약으로 계약을 맺는데, 예정가격에 낙찰률까지 곱해 다시 한번 사업비를 깎는다"고 말했다. 낙찰률은 경쟁입찰에서 낙찰된 업체가 제시한 금액으로 정해지는 것으로, 수의계약에서는 낙찰률을 적용할 이유나 법적 근거가 없다. 그럼에도 경쟁입찰을 하던 과거 관행대로 낙찰률을 적용, 원청이 노동자 인건비를 후려치는 것이다.

특히 한국마사회, 한국국제협력단은 낙찰률 적용 시비를 피하기 위해 예정가격을 산정할 때부터 낙찰률을 적용하는 꼼수를 쓰기도 했다. 72개 공공기관 중 시중노임단가를 적용한 뒤, 낙찰률도 없이 인건비를 지급하는 곳은 3개(4%)에 불과했다.

결국 언제나 최저임금 전전

원청에서 이렇게 깎인 인건비는 자회사에서 또 한번 착취 당한다. 배동산 팀장은 “자회사가 원청과 계약한 인원보다 노동자를 적게 뽑거나, 인건비의 일부만 지급하는 방식, 인건비 일부를 떼어 내 노동자를 경쟁시켜 선별 지급하는 방식으로 또 한 번 중간착취한다”고 지적했다.

한국노동연구원이 2019년 조사한 ‘정규직 전환 자회사 운영 실태’에 따르면 자회사 정규직이 된 환경미화, 일반경비, 콜센터 노동자들의 연간 임금은 2,400만~2,800만원으로 모두 최저임금 수준이었다.

배동산 팀장은 “같은 회사가 의도적인 자아분열을 통해 사용자 책임 회피와 하청 노동자 임금 쥐어짜기로 초과 착취를 달성하는 자회사는 ‘인건비 대납용 유령회사’에 가깝다”고 비판했다.

이날 토론회 발제를 맡은 권오성 성신여대 법대 교수는 “공기업이라는 하나의 법인격 내에서 처리가 가능한 사무를 굳이 ‘자회사’를 설립해 그 사무를 위탁하는 방식의 주된 목적은 다양한 노동법상 사용자로서의 책임을 회피함에 있다고 생각한다”며 “단체교섭을 피하기 위한 목적, 별도의 임금 체계를 설정함에 따른 ‘차별’ 관련 시비를 피하기 위한 목적 등”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지금의 공공부문 자회사 모델은 그 목적 자체가 법률의 회피인 탈법적인 방식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기 어렵다”며 “적법하게 유지되기 어려운 상황이니 새로운 대안을 조속히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금 할 수 있는 것, 해야 하는 것

고윤덕 민변 노동위원장은 "간접고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존의 입법적 논의는 주로 '원청의 사용자성 인정 문제' '근로자인지 아닌지'의 문제에 가로막혀 공전을 계속해왔다"며 "최소한 '중간착취'의 관점에서 간접고용, 플랫폼노동으로 인한 당면한 폐해를 시정하려는 노력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토론자로 나선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계약의 디지털화, 즉 공공부문 전자계약의 고도화를 통해 전체 계약금에서 인건비 실제 금액을 확인하도록 하고, 일부 사업은 사업비와 인건비 계정을 별도로 분리해 당사자들에게 임금이 직접 지급되는 시스템, 예컨대 ‘서울시 건설 일용직 대금 e바로 시스템’ 등을 참고할 수 있을 것”이라며 “초기에 효과적인 추진을 위해 공공부문 계약 형태와 사무 성격을 구분해 진행하는 방법도 고민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현장 노동자의 제안도 나왔다. 20년 간 하수처리장에서 근무한 김기성 민주일반연맹 충남공공노조 위원장은 “방법은 간단할 수도 있다"며 "공공부문의 도급계약서나 협약서에 ‘용역업체는 노무비를 전용해선 안 되고, (사용하고 남은) 노무비와 4대 보험료는 지자체에 반환한다'는 문구를 넣으면 되는데, 이 문구를 넣는 곳이 별로 없다”고 말했다. 그는 “서산시에 요구해 이 문구를 넣는데 10년이나 걸렸다”며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노동자의 노무비만이라도 못 건드리게 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발제자로 나선 윤애림 민주노총법률원 노동자권리연구소 연구위원은 세 가지 법·제도 개선 과제를 제시했다. 먼저 직업안정법을 강화하는 것이다. 국제 노동기준에 맞게 직업소개소가 노동자에게 수수료를 청구하는 것을 금지하고, 현재 근로계약을 맺은 노동자만 보호하는 이 법이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 등 고용 형식에 상관없이 모든 취업자(구직자)를 보호할 수 있도록 개정하자는 것이다. 두번째로는 현재 정부가 만든 직업안정법 개정안(장철민 의원 대표발의)은 온라인플랫폼의 중간착취를 정당화할 우려가 큰 만큼, 취업에 관여하는 방식에 따라 플랫폼 사업자 유형을 나눈 후 각 유형에 맞게 규제하자는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노조법 상 사용자의 개념을 '노동자의 노동조건에 지배력을 가지는 자'로 확대해 원청도 노동자에 대한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 근본적으로 직접 고용 원칙을 세워야 한다는 점은 모든 토론회 참가자가 강조했다. 권오성 교수는 “최근 멕시코는 연방 노동법을 개정해 일반적인 하도급 계약을 금지하고 기업의 목적이나 주된 경제활동에 속하지 않는 ‘전문 서비스’의 하도급 계약만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취지로 연방 노동법을 개정했다”며 “전문 서비스의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아웃소싱을 허용한 취지는 참고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에는 기획재정부, 고용노동부, 행정안전부 담당자들도 참석했으나 노동자들이 발표한 현장의 위법한 사례에 대해서는 명확한 답변하지 못한 채 "노동자 권익 보호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원론적인 답변만 했다.

장혜영 의원은 "국회가 그동안 간접고용, 중간착취 문제에 대해 진심어린 반성과 개선 노력을 하지 않은 데 대해 반성하고 있다"며 "앞으로 모든 노동자들이 노동권을 향유할 수 있도록 국회에서 관련 법을 만들고 행정부를 독려하겠다"고 말했다.



남보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