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터는 영화의 얼굴이다. 영화의 특징을 적절하게 표현해 사람들이 흥미를 느끼게 만든다. 과거 담벼락이나 가게 유리창에 붙었던 포스터들이 요즘은 썸네일이라는 작은 그림으로 바뀌어 TV 화면과 인터넷으로 이동했다. 인터넷영상서비스(OTT)의 확산 때문이다.
하지만 OTT에서도 크기만 달라졌을 뿐 포스터의 역할은 변함이 없다. 오히려 비중이 더 커졌다. 수 많은 영상들 가운데 눈에 띄려면 포스터에서 승부가 갈리기 때문이다. 직원 3명의 단출한 신생기업(스타트업) 프로파간다가 주목을 받는 이유다.
이 곳은 영화를 비롯해 여러 OTT에 소개되는 각종 영상물 포스터 등을 만드는 그래픽 디자인 전문업체로 유명하다. 이들이 만든 영화 포스터는 독특하고 감각적이어서 사람들 사이에 ‘작품 사진처럼 소장하고 싶은 포스터’로 꼽힌다. 그만큼 관련 디자인을 배우는 학생들 사이에서는 선망의 대상이다. 서울 압구정로에 위치한 프로파간다 사무실에서 대표를 맡고 있는 최지웅(45) 실장과 박동우(42) 실장, 이동형(36) 팀장을 만났다.
-프로파간다는 어떤 회사인가.
최지웅: “극장과 OTT용 각종 영화 포스터를 만드는 디자인 스튜디오예요. 원래 영화 포스터를 주로 만들었는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 영화는 줄고 OTT 일이 늘었어요. 코로나19가 퍼진 지난해 봄부터 가을까지 개봉한 영화가 거의 없어요. 원래 매달 4,5편의 영화 포스터를 작업했는데 지난해 상반기에는 영화 포스터 작업이 한 건도 없었어요.”
박동우: “예전에는 영화와 OTT 작업 비중이 8 대 2였는데 요즘은 4 대 6으로 넷플릭스 등 OTT 작업이 더 많아요.
-어떤 작품들을 했나.
최: “연상호 감독의 ‘부산행’, 박훈정 감독의 ‘신세계’, 이석훈 감독의 ‘해적’,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 정지우 감독의 ‘은교’ 등 수 많은 작품들을 했어요.”
이동형: “OTT에서는 ‘무브 투 헤븐’, ‘범인은 바로 너’, ‘백스피릿’ 등 약 100여편의 넷플릭스 작품을 담당했어요.”
-그 중에 애착이 가는 작품은.
박: ‘무브 투 헤븐’이죠. 우리가 작업한 넷플릭스의 첫 번째 제작물이었요. 아이디어가 잘 떠오르지 않아 힘들었고, 포스터에 넣을 예쁜 골목 사진을 촬영하려고 여기저기 찾아 다니느라 고생했어요.”
최: “작고한 김기덕 감독의 ‘비몽’이 기억에 남아요. 창업 후 처음 맡은 작품인데, 당시 영화잡지 ‘필름 2.0’에서 올해의 포스터 다섯 편 중 하나로 선정해 회사를 널리 알릴 수 있었죠.”
-영상물 포스터 외에 다른 분야도 하나.
이: “뮤지컬 ‘비틀쥬스’ ‘프랑켄슈타인’ 등의 포스터와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 영화음악을 담은 오리지널 사운드트랙(OST) 음반(LP) 디자인도 했죠. 김기영 감독의 ‘하녀’,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 배창호 감독의 ‘고래사냥’, 정지영 감독의 ‘하얀 전쟁’ 블루레이 타이틀 디자인도 했어요.”
-요즘 작업 중인 작품은.
박: “류승완 감독의 신작 영화 ‘밀수’와 조은지 감독의 ‘장르만 로맨스’ ‘소울메이트’ ‘마녀2’ 등을 작업하고 있어요. 전도연이 출연한 ‘인간실격’과 고현정 주연의 ‘너를 닮은 사람’, 김고은 주연의 ‘유미의 세포들’ 등 드라마 포스터도 최근에 끝냈어요. 박찬욱 감독의 ‘리틀 드러머 걸’ 블루레이 타이틀 디자인도 마무리 중입니다.”
최: “OTT 중에서는 넷플릭스의 신작 ‘지옥’, 쿠팡 플레이에서 방영 예정인 드라마 ’어느날’, 11월에 시작하는 디즈니플러스용 드라마로 언론에 보도된 ‘너와 나의 경찰수업’도 맡았어요. 11월부터 시작하는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은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시사회를 가졌는데 ‘오징어게임’ 이후 가장 화제가 될 만한 작품으로 꼽혔어요.”
-포스터 디자인은 어떤 과정을 거치나.
이: “제작사에서 보내준 대본을 보고 아이디어를 짜죠. 배우가 어떤 옷을 입고 어떤 공간에서 어떤 동작을 취한 채 사진을 찍을지 모두 계획을 세웁니다. 개봉 3개월 전에 포스터 작업이 완료돼야 합니다.”
박: “영화마다 다른데 배우들이 감정에서 빠져 나오기 전에 포스터 촬영을 하기도 하고 제작 일정이 바쁘면 촬영 종료 후 따로 찍기도 해요. 2000년대 중반까지 영화 촬영 종료 후 포스터를 따로 찍는 것이 유행이었는데 요즘은 촬영 현장에서 자연스럽게 포스터용 사진들을 찍어요.”
-그러면 포스터 작업을 하며 배우들과 이야기를 많이 하겠다.
최: “과거에는 배우들이 극장 간판을 그리는 사람들을 찾아갔다는데, 요즘은 컴퓨터로 사진 보정을 주문해요. 얼굴 크기를 다른 배우와 똑같게 해달라는 요구부터 어느 배우보다 이름이 앞에 나오게 해달라는 등 다양한 요구들이 들어오죠.”
박: “감독들이 챙기는 경우도 있어요. 박찬욱 감독은 특히 포스터에 신경을 많이 써요. 포스터는 영화의 첫인상이에요. 관객들이 영화를 처음 만날 때 접하는 얼굴이면서 마지막까지 평생 남는 이미지이니 신경 쓸 수밖에 없죠.”
-프로파간다 포스터의 특징은 무엇인가.
최: “주로 인물을 작게 쓰고 여백을 많이 살려서 분위기를 내는 것을 좋아해요. 독특한 글자체를 사용하고 레이아웃도 작품 사진처럼 만들려고 하죠. 그래서 사람들이 먼저 알아봐요. 집에 작품처럼 걸고 싶고, 훔치고 싶은 포스터라는 얘기들을 많이 해요.”
이: “그래서 영화 마케팅팀과 많이 싸워요. 배우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불평하죠.”
-작업하면서 힘든 점이 있다면.
박: “디자인 재료가 없는 포스터는 아주 힘들어요. 독립영화는 예산이 없어서 촬영장에서 현장 사진(스틸)을 따로 찍지 않아요. 그러면 나중에 편집 영상을 순간포착(캡처)하거나 소재 사진을 따로 찍는 등 재료까지 만들어야 해요. 일본 영화 ‘앙’은 재료가 없어서 할 수 없이 빵 사진을 따로 찍어 포스터를 만들었어요.”
최: “요즘은 작품 하나당 메인 포스터, 예고용 포스터, 각 등장인물별 포스터 등 최소 4,5종의 포스터를 만들어요. ‘어벤져스’처럼 등장인물이 많으면 그만큼 일이 늘어나죠. SM엔터테인먼트의 아이돌을 다룬 다큐멘터리 ‘아이 엠’은 출연진 30명의 아이돌마다 포스터를 각각 따로 만들었어요.”
-넷플릭스와 일하는 것은 어떤가.
박: “넷플릭스 일을 처음 맡을 때 시험을 봤어요. 미국 본사에서 찾아와 아이템을 주고 외국 드라마와 애니메이션 등 여러 편의 포스터 디자인을 만들어보라고 시켰죠. 이를 통과해 넷플릭스의 공식 한국 포스터 담당업체가 됐어요. 재미있었어요.”
최: “넷플릭스는 요구사항이 깔끔해요. 담당 프로듀서 한 명하고만 소통하면 돼서 작업이 수월하죠. 한마디로 사공이 많지 않아요. 더러 사공이 많은 곳에서는 사람마다 의견이 달라서 완성된 포스터를 처음부터 다시 만들기도 해요. 아예 처음부터 여러 가지 안을 달라는 곳도 있어요.”
-기억에 남는 특이한 작업이 있나.
박: “모든 영상물에 ‘15세이상 관람가’ ‘18세이상 관람가’ 등 등급이 붙는데 올해 새로 바뀐 등급표시 아이콘을 영상물등급위원회 의뢰를 받아 만들었어요. 넷플릭스에서 영화를 볼 때 처음 나오는 등급화면과 블루레이 표지에 표시되는 아이콘 등을 단순하고 깔끔하게 바꿨어요.”
-작업의 원칙이 있나.
박: “지나치게 일 욕심을 부리지 않고 부족하지 않을 만큼만 주문을 받아요.”
-그럼 충분히 돈을 벌 수 있나.
최: “OTT의 등장으로 엔터테인먼트 분야는 불경기가 없어서 적자인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사무실이 특이하다. 작업 공간과 별도로 카페 같은 곳이 있고 여기에 수 많은 영화 포스터와 LP, 블루레이, 심지어 비디오테이프 등이 가득하다. 마치 상점 같다.
최: “일부러 포스터 상점을 만들었어요. 해외에 가보면 영화 포스터를 파는 상점들이 있는데 국내에는 없어요. 그래서 ‘왕가위 특집’ ‘타란티노 특집’ ‘박찬욱 특집’처럼 매달 주제를 정해서 영화 포스터, 관련 서적과 블루레이, 음반 등을 판매하죠.”
박: “요즘은 복고 바람이 불어서 LP와 카세트테이프가 잘 팔려요. 심지어 비디오테이프를 구하러 오는 사람들도 있어요. 고화질의 4K 블루레이 시대인데도 옛 것을 일부러 찾아 다니며 즐기는 사람들이죠.”
-포스터 디자인은 어떻게 하게 됐나.
최: “어려서부터 영화 포스터를 좋아했어요. 마음에 드는 포스터가 있어서 알아보면 꽃피는 봄이오면이라는 회사 작품이더군요. 그래서 강원대 산업디자인학과를 졸업하고 2003년 그 회사에 그래픽 디자이너로 들어갔죠.”
박: “계원조형예술대 커뮤니케이션학과에서 디자인을 전공하고 첫 인연을 맺은 회사가 꽃피는 봄이오면이었어요.”
이: “원래 영화를 좋아했어요. 영남대 시각디자인학과 시절 프로파간다에서 만든 영화 포스터를 너무 좋아했어요. 저 뿐만 아니라 디자인 전공자들 사이에 프로파간다는 아주 유명했어요.”
-창업 계기는.
최: “박 실장과 꽃피는 봄이오면에서 영화 포스터 디자인을 하다가 2008년에 함께 창업했어요. 디자이너라면 누구나 독립 회사를 갖고 싶어하죠."
이: “저는 2014년에 합류했어요. 원래 책 편집을 하다가 디자인 잡지에 소개된 프로파간다 디자인에 반해서 합류했죠.”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최: “칸영화제 포스터 작업을 하고 싶어요. 또 콜드플레이의 음반 재킷과 세계적 블루레이 타이틀 명문업체인 미국의 크라이테리언의 블루레이 타이틀 표지 디자인도 맡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