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가을과 함께 오는 국회 국정감사 기간이 되면 여야 의원실에서 보내오는 국정감사 보도자료가 기자들 이메일함에 수북이 쌓인다. 제목만 봐도 흥미가 돋는 자료들이 꽤 있다. ‘허가 없이 외부 겸직 수당 챙긴 국방대 교수들, 국회엔 거짓 보고’(조명희 의원), ‘국민연금, 대마초 사태 쇄신 대책에도 직원 비위 계속’(허종식 의원), ‘혁신기업 성장 지원을 위한 크라우드 펀딩 빨간불’(김병욱 의원), ‘부동산 실거래가 신고 위반 매년 급증, 작년 한 해만 1만3,903건’(문진석 의원) 등등. 요 며칠 이메일함에 들어온 자료들의 극히 일부만 무작위로 추려본 것이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면 지나친 트집 잡기나 맹탕인 국정감사 자료들도 없지 않다. 하지만 진지하게 탐구하고 발전시키면 좋은 보도로 이어질 수 있는 원석 같은 자료들도 많다. 국회의원 보좌진들이 추석 연휴를 반납한 채 한 달 가까이 밤낮없이 머리를 싸매고 관계 기관을 탈탈 털어 만들어 낸 성과물이다. 짧은 국정감사 기간에 의원실 수백 곳의 보도자료가 한 번에 몰리다 보니 한 건 한 건 유심히 들여다보지 못하고 넘기는 때가 많아 아쉬울 따름이다.
국정감사는 타성에 젖기 쉬운 행정부와 공공기관을 견제하는 유용한 수단이 될 수 있다. 법으로 일일이 강제하기 어려운 일부 대기업의 부도덕한 행태를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 평가받게 하는 역할도 한다. 올해 국정감사에는 꽃배달과 미용실 같은 골목 상권까지 파고드는 정보통신(IT)·플랫폼 대기업의 문어발식 확장이 도마에 올라 주목을 받았다.
그런데 올해 국정감사는 대선과 맞물려 국회의원들이 스스로 그 권위와 효용을 반감시키고 있다. 첫날인 1일부터 여러 국회 상임위원회에서 국정감사가 파행됐다.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인 이재명 경기지사가 관계된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이 불씨였다. 여야 의원들은 특검 도입을 요구하는 팻말을 국정감사장에 설치하는 문제 등을 두고 팽팽히 맞섰다. 플랫폼 기업 문제를 다룰 예정이던 5일 정무위원회 국정감사는 “이 지사를 증인으로 부르자”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배우자 먼저 부르자”는 여야 공방이 뒤덮었다. 대장동과 무슨 관련인지 모를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조차 대장동 관련 팻말 설치를 둘러싼 소란 끝에 무산됐다.
감사에 쏟을 힘이 분산되는 사이 정부기관 견제가 느슨해지는 건 아닌지 걱정된다. 여야가 다투는 동안 증인석에 멀뚱히 앉아 기다려야 하는 고위 관료나 기업인들은 속으로 안도할지 모른다. “오늘은 쉬어가는구나.”
국회의원들이 국정감사를 열심히 해야 하는 이유는 직업인의 생활윤리에 있다. 음식점 주인들은 더러 생계를 위해 식당을 하며 원가 절감을 꾀하지만 지키는 선은 있다. 먹거리 제공을 생활 수단으로 삼은 이상 메뉴판 그림과 다르지 않고 위생적인 음식을 내놓는 것이다.
정치를 하기 위해 의원직이라는 수단을 이용하는 국회의원들도 마찬가지이다. 이상을 펼치고 선거도 이겨야겠지만 직업으로서 의원직의 기본 의무를 우선 충실히 이행하는 것이 값비싼 세비를 대는 납세자에 대한 도리다. 헌법에 적힌 국정감사가 그런 의무 중 하나일 것이다.
식당에 빗대자면, 맛집까지는 아니어도 음식값에 걸맞은 먹을 만한 요리를 꾸준히 내놓는 국회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