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략 몇 번 통곡해야 완독 가능한 ‘전태일 평전’에서 유일한 승리의 순간은 평화시장의 노동실태가 ‘경향신문’ 사회면에 보도됐던 날이다. 노동자들이 기뻐 날뛰는 모습은 서글플 정도다.
그러나 그 기사조차 기자가 취재한 게 아니었다. 전태일이 재단사 동료들과 함께 업주들 몰래 조사하고 설문해서 노동청에 진정서를 내고, 기자들을 찾아가 읍소하며 바친 것이었다.
각성제 주사를 맞고 사흘 밤을 새우며 일한 13, 14살 시다 소녀들이 눈만 멀뚱한 채 몸이 마비될 때, 천장까지 약 1.5m인 섬유먼지 가득한 작업장에서 몸 한번 펴지 못한 미싱사가 폐병을 얻어 피를 토할 때, 점심 굶는 시다들에게 차비로 풀빵을 사주고 태일이 새벽까지 걸어 판잣집에 돌아갈 때, 태일이 시다·미싱사들을 구하고자 남성 재단사들을 규합하려다 좌절을 거듭할 때, 그 오랜 기간 기자들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그 일대 노동자가 2만여 명이었는데 말이다.
그 자신 뛰어난 인권운동가였던 저자, 고 조영래 변호사는 “엘리자베스 테일러라는 외국 여자가 몇 번 결혼했는지는 신문에 나기 때문에 사람들이 알지만, 평화시장 13살짜리 여공이 하루 몇 시간을 노동하는가는 모른다. 신문에 안 나기 때문이다”고 썼다.
이제는 다르다고 할 수 있나. 모든 기사에는 기회비용이 있다. ‘오징어 게임’ ‘대장동 비리’ 보도의 홍수가 현장실습에서 잠수작업에 동원됐다가 사망한 고교생 홍정운군에 대한 취재와 보도를 후순위로 밀어버리는 식이다. 언급되어야 할 무수한 고통들을 뒤로하고, 칼럼 발언권은 ‘감수성 과잉이다’ ‘PC함(정치적 올바름)이 지겹다’식의 그 고통들이 남의 일인 권력층, 주로 남성들에게 주어진다. 예전 복지·노동 담당부서에서 ‘빈곤리포트’를 기획해보고 싶다고 했을 땐, 상사가 “부자리포트가 더 잘 읽힐 것”이라고 허락하지 않았다.
‘권력감시’는 언론의 주요 사명이니 권력층 보도의 홍수를 당연하게 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질 낮은 권력층 기사의 범람은 ‘권력감시’가 아니라 ‘권력놀이’이며, 약자 보호가 동반되지 않은 ‘권력감시’의 과잉은 영원한 ‘이너서클 간의 돌림노래’일 뿐이다. 우리 부(어젠다기획부)에서 올해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겪는 ‘중간착취의 지옥도’를 보도한 후 많은 관심을 받았는데, 한편으로 대체 23년 된 이 문제를 그 오랜 기간 언론은 무엇을 하고 있었길래 제대로 조명한 적이 없었나, 새삼 놀라웠다.
수많은 기자들이 정부기관에서 써도 그만, 안 써도 그만인 한두 개 팩트 경쟁을 하고, 시장에서 어묵을 먹는 정치인을 졸졸 따라다니는 동안 취재 영역에서 밀리는 건 사회 하층부의 삶만은 아니다.
몇 년 전, 유관순 열사의 감방 동료였던 심영식 지사의 아들 문수일(83)씨에게서 독립운동가들이 서대문형무소 8호 감방에서 지어 부른 노래 가사를 받아 보도한 적이 있다. 귀한 자료였다. 평생 가사를 보관해온 문씨에게, 난 의아해서 물었다. “기자가 연락한 적이 한 번도 없었나요?” 그는 고개를 저었다. “없었어요.” 3·1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있지 않았다면 나 역시 연락하지 않았을 테고, 내가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도 몰랐을 것이다. 지금도 많은 기자들이 그럴 것이고, 이런 언론의 실패는 사회 전체의 비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