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한우 사육규모가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소비가 위축될 것이란 전망과 달리 재난지원금 등으로 소비가 늘면서 축산농가들이 입식을 늘린 탓이다. 탄탄한 수요 덕분에 가격은 현재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지만, 축산농가 얼굴엔 수심이 가득하다. 과잉 사육은 '소값 파동' 예고나 다름없다. 암소 도태 장려금 지원 등 축산당국은 사육규모 조절에 팔을 걷어붙였지만, 축산농의 반응은 미적지근하다.
10일 농협 축산정보센터와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축산관측팀 등에 따르면 지난달 말 현재 국내 한우 사육두수는 343만 마리를 돌파했다. 사상 최다치로, 적정 사육 두수(300만 마리)보다 15%가량 많다. 특히 가임 암소(생후 15개월 이상)도 지속적으로 늘어 당분간 사육 두수는 줄지 않을 전망이다.
축산업계는 코로나19로 인한 수요 증가로 가격이 유지되지만, 진정되면 소값 파동이 불가피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농촌경제연구원 축산관측팀에 따르면 지난 6월 21일~7월 18일 가구당 평균 소고기 구매량은 0.68㎏으로 2년 전(0.61㎏)보다 11.5% 늘었다. 반면 수입육은 1.8% 증가에 그쳤다. 해외여행길이 막히고, 잇따른 원격수업에다 재난지원금 등으로 가정에서 한우 소비를 늘렸기 때문으로 풀이됐다.
소값도 고공행진 중이다. 2018년 8월 평균 402만5,000원이던 수송아지(6, 7개월령) 산지가격은 최근 480만 원을 돌파했고, 일부에선 500만 원에 이른다. 수소(600㎏) 평균가도 600만 원을 오르내리는 등 3년 전보다 30% 올랐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축산관측팀 지선우 연구원은 “한우 사육 두수는 올 연말 337만7,100마리로 소폭 줄었다가 내년 343만 마리, 2023년 345만6,000마리로 정점을 찍고 2024년에서야 340만3,000마리로 줄기 시작할 것”으로 전망했다.
6월 기준 전국 334만3,584마리의 사육 한우 중 1위인 경북(73만6,716마리)도 비상이다. 남진희 경북도 축산정책과장은 “보통 300만 마리를 넘게 되면 소값이 불안정해지는데, 현재 사육 규모는 이를 한참 넘었다”며 “소값이 폭락하면 국내 최대 한우사육지인 경북의 피해는 극심할 수밖에 없어 수급조절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광우병사태로 2003년부터 중단된 미국산 소고기 수입이 전면적으로 재개된 2008년에는 젖소 수송아지 1마리 산지 가격이 서울시내 웬만한 고깃집 갈비살 1인분 값도 안 되는 2만~2만5,000원에 거래된 적도 있다. 2011~2013년 소값 파동 때도 600㎏ 수소 산지 평균가격이 생산비도 안 되는 300만원 초반대에 형성되기도 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농협, 한우협회와 한우 수급조절에 팔을 걷어붙였다. 2년 전부터 실시해 온 송아지를 낳지 않은 암소를 살찌워 출하하도록 하는 ‘미경산우 비육지원사업’으로 1마리에 20만원씩 지원한데 이어 이번 달부터 1차로 경산우 2만 마리를 감축키로 하고 1마리에 18만원을 지원키로 했다.
실효를 낼지는 미지수다. 경주 지역에서 한우를 사육하는 양모(60)씨는 “사료값도 오르고, 일손 구하기도 어렵지만 단군이래 최대 호황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인데, 돈을 낳는 암소를 줄이고 송아지를 사들이지 말라는 말이 먹힐 수 없다”고 말했다. 양씨는 또 “머리는 자제하라고 하지만, 가슴은 그렇지 않는 게 농민 대부분의 상황"이라며 소값 폭락 재연을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