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판이 또다시 진흙탕 싸움으로 기울고 있다. 국민의힘 유력 대선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겨냥한 ‘고발 사주’ 의혹에 이어, 이번엔 수천 억 원대 토건비리 사건인 성남 대장동 개발 의혹이 불거지며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연루 여부를 두고 여야 간 극한 공방이 전개되는 양상이다.
국가 지도자가 되겠다는 인물의 치명적 비리와 거짓은 결코 묵과할 수 없는 결격사유다. 따라서 진흙탕 싸움이라도 피해 갈 수는 없다. 하지만 대선 캠페인이 온통 대선주자들 간 서로 흠결을 물고 뜯는 편싸움에 매몰되는 건 매우 위험하다.
실용적 경세가로서 제3지대 독자출마를 선언한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는 대선판의 진흙탕 싸움 전락을 막기 위해서라도 각 대선주자들이 시대정신 구현을 위한 ‘공통공약’ 추진에 나서 국가운영 비전과 정책 경쟁을 벌여보자고 제안한다. 대선주자로서는 사상 처음으로 진영 간 공통공약 추진을 제안한 배경과 취지, 계획 등을 김 전 부총리로부터 들어본다.
-대선주자로는 처음으로 경쟁 주자들 간 ‘공통공약’을 추진하자는 제안을 냈다. 무슨 얘긴가.
“어떤 후보든 대선공약은 결국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마땅한 전략적 비전과 방향에 근거해 만들어진다. 그렇다 보니, 지금까지 대선에서 공약, 특히 가장 중요하고 민생에 미치는 영향이 큰 경제부문에 있어서 각 대선주자들의 공약은 70~80%가 동일한 취지와 목적을 가진 유사한 것들이었다. 따라서 이번엔, 물론 각 캠프 대표도 참여하겠지만, 중립적인 시민조직이 나서 1단계로 각 캠프 공약 중 공통공약을 추려내고 어느 정도까지 이행할지 목표를 설정한 다음, 2단계로 선거과정에서 협약에 참여한 후보들이 국민 앞에서 누가 당선되든 공통공약 이행을 약속하자는 것이다.”
-공통공약을 추진하면 공약의 차별성을 부각하는 정책경쟁이 가능하겠는가. 또 어떤 대선주자든 공약 이행에 대한 의지는 당연할 텐데, 굳이 선거과정에서 공통공약을 추려 이행 협약을 해야 할 이유가 있나.
“공통공약 이외의 부문에서도 차별적 정책경쟁은 충분히 가능하다. 아울러 공통공약을 추진하는 또 다른 중요한 이유가 있다. 물론 대선주자들의 공약 이행 의지 자체를 부인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일단 당선이 되면 정략적 이유 등으로 중요한 공약들이 후순위로 밀려 공약(空約)으로 전락한다. 문재인 정부에서 연금개혁 공약이 그랬다. 반면 당선 못한 후보 진영에선 애초에 당선자 측과 비슷한 공약을 냈음에도 불구하고 정략적으로 당선자 측의 공약 이행에 발목을 잡고 반대함으로써 중대한 공약 이행이 무산되는 사례가 허다하다. 따라서 공통공약 협약은 나중에 당선자 진영이든 경쟁 진영이든 주요 공약 이행을 견인하는 실질적 동력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나라와 국민을 위한 방안이 될 것이다.”
-이재명ㆍ윤석열 등 각 대선주자들이 완전무장한 창기병처럼 전선을 누비고 있는데, 본인은 경쟁보다는 공통공약 제안 등 대선판을 조율하는 오케스트라 지휘자처럼 움직이는 듯한 인상이다. 그렇다 보니 과연 대선을 독자적으로 완주할 건지에 대한 의구심도 적지 않다. 대선 출마 선언에 맞춰 펴낸 저서 ‘대한민국 금기 깨기’(쌤앤파커스 발행)에서 협치와 연정을 언급한 바도 있어서 연정을 전제로 주요 대선주자와 러닝메이트 같은 대등한 방식으로 힘을 합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적지 않다.
“창기병과 지휘자를 말씀하니, 유능제강(柔能制剛)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고등학교 때 유도를 했는데, 유도의 기본정신 가운데 하나다. 부드러움이 능히 강함을 이긴다는 듯이다. 분명히 말씀 드린다. 기존 정치권에 숟가락 얹지 않고, 독자적으로 끝까지 뚜벅뚜벅 대선 완주한다. 새로운 정치 해보겠다는 의지가 없었다면 그동안 여야 양당에서 총선, 서울시장 보궐선거, 대선 레이스 참여 요청 온 것들을 거절하지 못했을 거다. 협치나 연정을 언급한 건 5년 단임의 제왕적 대통령제의 승자독식구조가 계속되는 건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에 분권형 대통령제로 가자는 뜻에서 얘기한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공통공약에 함께하는 정당에 각료자원을 주는 식의 협치는 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연정을 전제로 선거에서 힘을 합치지는 않을 것이다.”
-양당은 대선에서 승리하지 못해도 야당으로서 유효한 정치력을 여전히 유지한다. 하지만 김동연에게 결집된 지지자들의 정치적 의지와 열망은 선거에 완주했다가 당선되지 못하면 아무런 보람도 없이 소멸될 수도 있다. 그 리스크를 어떻게 감당할 건가.
“이번에 대통령 출마를 하고 새로운 정치를 시도하는 건 누군가는 해야 할,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정치가 한편으론 승자독식의 강고한 양당 구조하에서 진영논리와 편싸움을 벌이면서, 다른 한편으론 대장동 개발 비위에 드러난 것처럼 힘 있는 자들이 너나없이 공생적 협력관계를 유지하는 기득권 카르텔로 작동하면 대한민국의 장래가 없다. 그래서 정치권의 승자독식 구조를 깨고, 정치판과 정치세력을 교체하기 위해 나선 거다. 변혁을 위해 이번 대선에 최선을 다하겠지만, 그 과정에서 정치판과 세력을 바꿔보겠다는 국민의 열망과 에너지를 결집해 대선 이후에도 나아갈 각오와 계획이 있다. 단기적으로 이번 대선만 보고 시작한 게 아니다.”
-공통공약 추진은 어떤 정당의 누가 다음 정부를 이끌더라도 우리 사회가 반드시 지향해야 할 시대정신과 정책 근간이 존재한다는 생각을 기반으로 할 것이다. 본인은 그게 무엇이라고 보는가.
“공정과 정의가 거론되고, 부의 양극화나 부동산 문제 해결책이 제시되고 있다. 모두 우리 앞에 던져진 시대정신을 의식한 정책 어젠다들이다. 그런데 저는 이 모든 어젠다들이 결국 ‘기회의 문제’로 수렴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번 대선의 시대정신을 표현할 단어 역시 ‘기회’라고 본다. 지금 대한민국의 모든 문제는 기회와 연결된다. 우선 기회가 부족하다. 일할 기회, 사업할 기회, 공부할 기회, 연애할 기회, 결혼해 자녀를 낳고 키울 기회가 부족하다. 저성장인 데다 혁신이 부족하다 보니 경제의 역동성이 떨어진 탓이다. 따라서 차기 정부는 즉각 혁신을 통해 우리 경제의 역동성을 불러일으켜 더 많은 기회가 만들어지도록 하는 게 시급하다. 둘째는 기회의 불공정 문제다. 어떤 청년들은 아빠찬스, 엄마찬스로 넘치는 기회를 누리는데, 다른 청년들에겐 작은 기회조차 제대로 주어지지 않는다. 기회의 사재기 현상까지 나타난다. 그래서 가급적 고른 기회가 주어지도록 하는 나라는 만드는 게 절실하다. 앞서 말한 게 혁신과 역동성을 살려 더 많은 기회를 만드는 얘기라면, 뒤의 얘기는 포용과 상생이다. 또 아무리 노력해도 기회에 아예 접근하기 어려운 계층이 있다. 이런 분들에겐 기회복지안전망을 통해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자면 기회라는 엄청난 분량의 물을 제 저수지에 가두어 놓고 독차지하고 있는 기득권의 둑을 무너뜨려 기회가 강물처럼 흐르는 기회공화국을 만들어야 한다.”
-성장과 분배의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해묵은 얘기처럼 들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랫동안 역대 정부가 그런 구호를 내세운 건 결국 그게 경제정책의 정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내용은 과거와 달라져야 한다. 이제 4차 산업혁명의 물결 속에서 우리 경제의 성장은 스타트업 같은 미래형 혁신 비즈니스가 새로운 동력이 되어 견인해야 하고, 분배는 양극화 구조의 개선을 위해 더욱 적극적인 정부의 역할과 시스템 개편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옛날얘기의 반복으로 여겨지지 않으면 좋겠다.”
-‘기회공화국’을 만들기 위한 구체적 정책들도 결국 공통공약으로 추진될 공산이 커 보인다. 공약으로 어떤 정책들을 구상하고 있나.
“명장 축구감독은 4ㆍ3ㆍ3 포메이션을 쓴다고 한다. 기회공화국 실현을 위한 정책 역시 4ㆍ3ㆍ3이라는 숫자로 요약된다. ‘4대 기회 빅딜’ ‘3대 기회 할당’ ‘3대 기회특권 해체’가 그것이다. ‘4대 빅딜’은 더 많은 기회 창출을 위해 일자리, 교육, 부동산, 정부 재정 등에서 대립적 이해당사자들 간 사회적 타협을 정책으로 추진하겠다는 얘기다. 일자리의 경우, 일자리 지원을 위한 보조금 예산을 스타트업 고용지원금으로 돌리는 타협을 예로 들 수 있다. 지금 우리나라 4대 기업의 일자리가 70만 개다. 그런데 3만5,000개 스타트업 기업에서 만들어진 일자리가 72만 개다. 스타트업 일자리 보장제를 통해 10만 개의 스타트업이 생겨난다면 200만 개의 일자리가 창출되는 식이다. 교육과 부동산, 정부 재정 씀씀이에서도 그런 빅딜을 통해 더 많은 기회를 만들어 내겠다.”
-‘3대 할당’과 ‘3대 해체’는 어떤 내용인가.
“’3대 할당’은 일자리, 교육, 부동산에 적용되는 기회할당정책이다. 예를 들면 일자리 할당은, 공무원이나 공공기관의 지역인재 할당제나 고졸인재 할당제, 또는 장애인과 탈북주민 일자리 할당제가 확대돼야 한다는 것이다. 교육 할당 역시 기회 편중을 보정하는 입시 할당제를 얘기하는 것이고, 부동산에서도 30~40대에 대한 청약기회 할당을 늘리겠다는 얘기다. 물론 이런 정책은 역차별 문제가 있지만, 지금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양극화, 교육 격차, 자산 격차와 세습을 통한 기회의 편중을 완화하려면 일정 기간과 수준에서 할당제가 확대돼야 한다는 얘기다. ‘3대 해체’는 승자독식의 기득권과 특권이 기회의 부익부 빈익빈을 낳는 구조이므로 합리적 수준으로 기회특권을 해체하겠다는 것이다. 대통령과 국회의원 등의 정치적 특권, 권력기관 특권, 재벌 특권 등 3대 특권이 해당된다. 대통령은 권력분산이 필요하고, 국회의원은 선수 제한이나 국민소환제가 도입될 필요가 크다. 아울러 검찰 등 권력기관에 대한 합리적 개혁이나 재벌 특권 해소도 더 추진하겠다는 얘기다.”
-기본소득제나 청년지원금, 규제개혁 등 다른 대선주자들이 ‘무엇을 하겠다’는 공약을 내는 데 비해 ‘어떻게 하겠다’는 데 초점을 두는 공약인 것 같다.
“지난 20년간 우리 사회의 문제 해결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한 모범답안은 거의 나왔고 다들 알고 있다. 그런데 왜 여전히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고 있나. 첫째, 모범답안을 알아도 기득권 카르텔이 실현을 막는다. 대장동 사건을 보면서 전부 개혁 대상들이 개혁한다고 나서고 있는 것 아닌가. 둘째, 정치권이 진영논리로 분열돼 평행선만 달리고 있다. 셋째, 모범답안들이라도 여기저기서 단편적으로 내놓는 것들은 결코 구조적 해법이 되지 못한다. 따라서 이제는 뭘 할 거냐 보다 어떻게 할 거냐가 중요하다고 본다. 구조적 해법 없이 전 국민에게 돈 나눠주고, 주택 100만 호 짓겠다고 한다고 양극화나 부동산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지 않나.”
-부동산 문제야말로 이번 대선에서 여야 간 가장 뜨거운 정책 승부처가 될 것 같다. 특히 부동산 양극화를 완화할 근본적 해법의 하나로 여당 대선주자들은 국토보유세 등 토지세 신설 쪽으로 공약을 모아 가는 것 같다. 어떤 입장인가.
“부동산 문제엔 주거안정과 자산 양극화 완화라는 이중적 과제가 존재한다. 우선 주거안정을 위해선 가격안정이 절실하고, 가격안정을 위해선 신뢰할 만한 공급책으로 시장심리를 안정시키는 게 긴요하다. 단편적으로 100만 호니, 200만 호니 공급책을 내는 건 임기 내에 실현이 어려운 거짓에 가깝다. 물량 목표보다는 아까 부동산 빅딜을 말했지만, 재건축ㆍ재개발을 민간에게 허용하는 동시에 민간은 분양가상한제나 후분양제, 또는 분양원가 공개 등에서 양보를 하도록 하는 것, 공공부지나 보존가치가 떨어지는 그린벨트를 공급에 활용하되 싼값 아파트를 공급하는 식으로 빅딜을 해서 특별법을 통해 조기공급 청사진을 내는 게 중요하다. 다음으로 부동산 양극화 완화를 위해선 무엇보다 ‘1가구 1주택’ 원칙에 따라 주택 보유수에 따라 대출과 세제 등에서 확실한 차별성을 둬야 한다. 1주택 구입을 위한 정부 지원도 확대해야 한다. 대신 다주택자에겐 강력한 규제책을 통해 매물이 출회되도록 유도할 것이다. 누진성을 강화한 토지보유세 신설은 부동산 가격안정, 양극화 완화를 위해 진지하게 추진을 검토할 만한 얘기라고 본다. 취지에 동의한다. 다만 세목 신설은 일방적으로 강행할 일이 아니다. 국민과 소통하며 설득하고 이해를 구하며 진행해야 한다. 해당 세수를 기본소득 재원으로 쓰자는 얘기도 있는데 무리한 얘기다. 설사 기본소득제가 도입돼도 재원은 4차 산업 관련 부문 조세로 하는 게 맞다고 본다.”
-공통공약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는 다른 정책의제들이 더 있나.
“‘정부 과잉’을 해소할 공공부문 조직 및 정책 구조조정, 연금개혁 등은 반드시 추진할 필요가 크다. 나는 문재인 정부의 어떤 정책은 이어갈 가치가 있다고 보지만, 공공 비대화나 연금개혁 공약을 외면한 건 무책임하다고 본다. 다음 정부가 해결해야 할 일들이다.”
-현 정부 초대 경제부총리로서 ‘경제 패러다임 전환’의 임무를 맡았다. 하지만 만족할 만한 성과에 이르지 못한 채 정부를 떠났다. 대통령이 되면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근거는 뭔가.
“우리 경제를 개혁하려는 시도는 국장시절인 2005년 저성장, 양극화, 저출산ㆍ고령화 등 미래 도전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2030년을 목표로 했던 국가전략 ‘비전 2030’ 보고서를 만들었을 때부터 시작했다. 경제부총리에 기용돼서도 같은 전략적 목표로 일했다. 하지만 ‘혁신성장’이나 ‘소득주도성장’ 등 국정과제 곳곳에서 청와대의 정권 실세들과 충돌했다. 사퇴를 앞둔 2018년 11월의 국회에서 “지금 상황은 경제적 위기라기보다는 정치적 의사결정의 위기”라고 했던 발언은 개혁 부진에 대한 나 자신의 진단이었고, 그게 대선에 나서게 된 동기이기도 하다. 두 번 실패했지만, 이제 성공할 수 있는 길을 찾았다고 자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