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라면의 기세가 심상치 않다. 드라마, 영화 등으로 인지도가 상승하면서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해외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고 있다. 작년 기저효과와 원가 상승 부담으로 올 상반기 내수실적이 부진했던 라면업계는 이제 국내가 아닌 해외시장에서 치열한 점유율 싸움을 벌이게 됐다.
농심 신라면은 출시 35년 만에 처음으로 해외 매출이 국내 매출을 넘어섰다. 5일 농심에 따르면 신라면의 올해 3분기 국내외 누적 매출액은 총 6,900억 원이고, 이 중 해외 비중이 53.6%(3,700억 원)다. 농심은 신라면의 올해 해외 매출 5,000억 원을 포함해 총 9,300억 원의 매출을 달성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삼양식품도 불닭볶음면의 인기로 지난해 전체 매출에서 해외매출 비중이 57%에 달했다. 삼양식품은 2016년부터 해외에서 꾸준히 연평균 41%의 성장률을 보였다.
정체를 겪는 국내시장과 달리 해외에서 화려한 실적을 올리는 건 단연 '한류' 덕분이다. 농심은 지난해 영화 '기생충'으로 '짜파구리'(짜파게티+너구리)가 인기를 끌자 유튜브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 온라인 마케팅을 강화해 매출 증대 효과를 톡톡히 누렸다.
최근엔 삼양식품이 또 다른 수혜자로 부상했다.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 삼양라면이 노출되면서다. 극중 주인공이 삼양라면을 생라면으로 즐기는 장면이 나오는데, 끓이지 않고 과자처럼 먹는 모습이 해외 소비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삼양식품은 생라면 관련 레시피를 개발해 해외 마케팅에 활용할 계획이다. 농심도 질세라 '오징어 게임'과 어감이 유사한 '오징어짬뽕'으로 관련 마케팅에 나섰다.
업계는 지난해 코로나19 확산으로 전 세계 '집밥' 문화가 형성된 것도 라면 수출에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한다. 관세청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라면 수출액은 3억1,968만 달러로 지난해 동기 대비 5.8% 늘었다.
이제 업계의 시선이 닿는 곳은 미국이다. 미국은 우리나라보다 라면을 즐겨 먹지 않지만 소비시장이 큰 만큼 정체기에 빠진 내수시장보다 성장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이다. 농심은 올 연말 미국 제2공장 가동을 시작해 미국, 캐나다뿐 아니라 멕시코와 남미 지역 수요까지 소화하겠다는 목표다. 삼양식품도 지난 8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현지 법인을 설립하며 미국 진출을 본격화했다.
삼양식품은 오는 12월 중국 상하이에도 현지 법인을 추가 설립한다. 또한 내년 경남 밀양신공장이 완공되면 해외 수요에 보다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게 된다. 삼양식품 관계자는 "2025년까지 해외 매출에서 미국, 중국, 일본 현지 법인의 비중을 70%까지 늘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농심과 삼양식품의 활약에 경쟁사인 오뚜기의 고심은 깊어지고 있다. 그동안 내수 중심 전략으로 해외 성과가 미미했는데, 마냥 손을 놓고 있을 수만도 없기 때문이다. 오뚜기는 베트남을 수출의 허브로 삼아 동남아시아와 중화권으로 영토를 확장할 계획이다. 오뚜기는 미국, 중국, 뉴질랜드 등에도 법인이 있지만 현지 생산이 이뤄지는 곳은 베트남이 유일하다. 오뚜기 관계자는 "중화권은 지난해 전년 대비 60% 이상, 동남아는 20% 이상 매출이 증가했다"며 "유럽과 오세아니아, 중앙사이아 국가로도 마케팅을 강화 중"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