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돌봄에 시달린 日 70대, ‘죽여달라’는 아들과 여동생 살해 

입력
2021.10.03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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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달픈 인생... 안타까운 '평생 간병'
'은둔형 외톨이' 아들, 암 투병 남편 돌봄
자살 시도 아들 "죽여달라" 부탁받고...
골절상 여동생도 '촉탁 살인'


“가슴이 답답하고 힘들어. 죽여줘, 제발….”

지난달 20일 오전 11시, 일본 도쿄도 하무라시의 한 주택에서 74세 여성이 언니에게 자신을 죽여 달라며 애원했다. 언니는 여동생의 목에 전선을 감아 숨지게 한 후 경찰에 신고했다. 올해 3월 역시 ‘죽여 달라’는 부탁을 받고 자신이 돌보던 아들을 숨지게 해 ‘촉탁 살인’ 혐의로 기소됐다가 지난 7월 보석으로 풀려난 지 두 달 만의 일이었다.

'슈칸분슌(週刊文春)' 최신호에 실린 이 사건의 범인은 고다마 기쿠요(77). 평생 가족 돌봄에 시달리다 두 번이나 같은 범행을 저질러 충격을 줬다. 보도에 따르면 1943년 10월 출생한 고다마는 세 자매의 장녀로, 여덟 살 아래 셋째는 심한 장애를 갖고 있었다고 한다. 전후 경제적으로 극히 어려운 시기에 장녀로서 막내를 돌보는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는 20대에 여섯 살 많은 남성과 결혼, 세 아들을 뒀다. 첫째와 둘째는 성인이 된 후 독립해 집을 떠났지만, 막내 아들은 달랐다. 중학교 때부터 집단 따돌림 등이 원인이 돼 등교를 거부하는 일이 많았고, 도내 사립고교를 졸업한 후로는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가 돼 버렸다. 고다마는 주위에 “우리 아이는 히키코모리이긴 하지만 스스로 자전거를 타고 쇼핑하러 나가기도 하니까 그렇게 심각하진 않다”며 씩씩하게 말했다고 한다.

고다마는 40대 때부터 20년간 근처의 공장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기도 했다. 회사에서 항상 웃으며 일해 평판도 좋았던 그는 60대에 접어들며 회사를 관뒀다. 이후 이전 동료가 만났을 때 인사도 하지 않을 정도로 사람이 변했다고 한다. 알고 보니 막내 아들은 20년이나 당뇨병을 앓아 왔고 남편은 3년 전에 암이 발견됐다. 아들에 더해 남편 간병까지 시작된 것이다.

남편은 투병 끝에 올해 3월 83세로 사망했다. 첫 촉탁 살인이 발생한 것은 17일 후였다. 당뇨병 때문에 냉장고에 상비해 뒀던 인슐린 8병이 모두 빈 것을 이상하게 여긴 고다마가 방에 들어갔더니 막내 아들은 몽롱한 모습으로 “이래서는 죽지 않으니 죽여 달라”고 말했다. 약 과다 복용으로 자살을 기도했지만 숨지지 않았던 것이다. 고다마는 촉탁 살인죄로 6월에 기소됐지만 도망이나 증거 인멸의 우려가 없어 7월 8일 보석금 200만 엔에 풀려났다.

함께 살던 가족을 모두 잃은 고다마는 그 길로 혼자 살던 여동생의 집으로 향했다. 그런데 하필 동거를 시작하자마자 여동생이 집에서 넘어지는 바람에 갈비뼈가 7개나 부러지는 골절상을 당했다. 남편 간병에서 벗어나자마자 또다시 시작된 ‘노노(老老) 간병’. 고다마는 괴로워하는 여동생의 부탁을 받고 또다시 살인을 저지르고 말았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따르면 현장에 싸운 흔적은 없었다. 고다마의 예전 회사 동료는 “‘이제 여동생과 함께 산다’며 기뻐했는데… 탄원서라도 내서 형을 가볍게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도쿄= 최진주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