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티오피아 정부가 내전을 벌이고 있는 반군 거점인 북부 티그라이 지역을 철저히 고립시키겠다면서 기근 위기를 가중시키고 있다. 굶어 죽는 사람까지 발생할 정도로 티그라이 지역의 식량 부족 문제가 심각한데도, 국제사회의 구호물자 수송을 차단하고 나선 것이다. 게다가 이를 비판하는 유엔 관계자들도 추방하기로 했다. 미국 정부가 나서 ‘식량을 보내지 않으면 제재를 부과하겠다’고 엄포를 놨지만, 사태가 해결될지는 미지수다.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에티오피아 정부는 이날 유엔 고위 관계자 7명을 추방하기로 결정했다. 유엔아동기금(UNICEF·유니세프)의 에티오피아 대표와 유엔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 실장 등이 추방 대상이며, 이들은 72시간 안에 에티오피아를 떠나야 한다.
에티오피아 정부가 이 같은 결정을 내린 건 그간 티그라이 지역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놓고 유엔과 마찰을 빚어 온 탓이다. 에티오피아 정부는 작년 11월부터 티그라이를 기반으로 한 티그라이인민해방전선(TPLF)과 내전을 벌이고 있다. 올해 6월부터 유엔 직원들이 “10년 만의 세계 최악 기근”이라며 티그라이 주민 40만 명 이상이 굶주리고 있다고 호소했으나, 아비 아머드 에티오피아 총리는 ‘적진’이라는 이유로 구호물자 수송을 차단했다. 그 결과, 지난 3개월간 유엔이 마련한 구호 식량 중 10%만 티그라이에 도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굶주리는 사람들을 더는 두고 볼 수 없던 유엔은 결국 에티오피아 정부를 직접 겨냥하고 나섰다. 지난달 28일 마틴 그리피스 유엔 인권담당 사무차장이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티그라이 기근은 정부 때문”이라며 “구호 물자를 실은 트럭 진입을 허용해야 한다”고 촉구한 것이다. 그러자 아머드 총리는 이틀 뒤 “유엔의 내정간섭이 지나치다”며 유엔 관계자 추방으로 맞섰다.
이례적인 조치에 미국도 에티오피아 정부에 경고장을 보냈다. 젠 사키 미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유엔 관계자들을 추방한 에티오피아 정부의 전례 없는 행동을 강력히 비판한다”며 “안전보장이사회에 티그라이의 인도적 위기를 막을 수 있는 긴급 조치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식량이나 생필품 전달을 방해하면 ‘공격적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도 했다. 사키 대변인은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에티오피아 내전을 지속시키려는 세력에 대한 금융 제재 부과도 고려하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