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현대차 간부였던 김광호(59)씨는 올해 3월 17일 미국 도로교통안전국(NHTSA)에 신청한 공익신고 보상금 심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미국 정부가 김씨의 차량 결함 제보를 토대로 지난해 11월 현대·기아차에 부과한 과징금이 보상금 재원이다. 김씨 측 변호인은 다음 달쯤 2,430만~4,100만 달러를 보상받을 수 있을 거라고 낙관하고 있다. 우리 돈으로 최대 487억 원에 달하는 액수다. 5년 전 공익신고 이후 사회적·경제적 어려움을 감수해야만 했다는 김씨는 "'성공한 제보자'가 되어 공익신고자의 삶이 망가지지 않는다는 걸 증명하고 싶다"고 미국 정부에 보상금을 신청한 이유를 밝혔다.
1991년부터 현대차에서 일해온 김씨는 2015년 2~9월 품질전략팀 부장으로 근무하면서 다뤘던 자료들을 토대로, 2016년 9월 '세타Ⅱ 엔진' 등 현대·기아차 차량의 제작 결함 32건과 회사 측의 결함 은폐 문제를 국내 언론사와 국토교통부, 미국 NHTSA 등에 제보했다. NHTSA에 따르면 해당 결함으로 발생한 차량 화재가 3,125건에 달하고 이로 인해 미국에서 103명이 부상했다. 김씨의 제보로 세타Ⅱ 엔진을 장착한 현대·기아차 300만 대가 리콜됐다.
회사는 제보 한 달 뒤인 그해 10월 영업기밀 유출과 사내 보안규정 위반 혐의로 김씨를 고소했고, 11월엔 내부 문건 유출과 회사 명예훼손 등의 책임을 물어 해고했다. 김씨는 그렇게 26년간 몸담았던 회사를 떠나야 했지만, 글로벌 자동차 제조사의 비위를 고발한 공익신고자의 '명예'도 얻었다. 2019년엔 국민권익위원회의 포상도 받았다.
지난달 22일 경기 용인시에서 만난 김씨는 "해고 이후 매일 오전 7시 집 근처 공공도서관으로 '출근'하고 있다"고 말했다. 재취업을 위해 수십 건의 이력서를 썼지만 모두 불합격했다. 2018년 9월 기업 대상 강의를 할 수 있는 권익위 청렴전문강사 자격을 취득했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지난해 2건, 올해는 1건의 강연 기회밖에 얻지 못했다. 김씨는 "올해 연봉은 사실상 (강연료)50만 원인 셈"이라고 말했다.
인터뷰 과정에서 '어두운 모습을 담지 말아달라'고 수차례 부탁할 만큼 김씨는 씩씩한 사람이었지만, 한순간 실직한 네 가족의 가장(家長)으로서의 미안함은 감추지 못했다. "노후 대비는 둘째 치더라도 퇴사 당시 대학교 3학년이었던 딸을 보면서 '어떻게든 학교는 마쳐줘야 하는데' 하는 생각에 안쓰러웠던 기억이 납니다." 새벽 한두 시에 깨서 잠을 이루지 못한 것도 한참 됐다. 회사의 고소로 압수수색을 당한 일이 계기였다. "현관문을 두들기거나 벨을 누르는 소리가 나면 '누가 또 쳐들어오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들어 집에 앉아 있을 수가 없어요. 우편함에 뭔가 꽂혀 있으면 소환장일까봐 두렵고요."
김씨가 공익신고로 받은 보상은 2년 전 포상금 2억 원이 전부다. 당시 권익위 역대 최대 포상금이라는 보도가 나왔지만, 연봉 1억2,000만 원을 받던 김씨가 회사를 계속 다녔다면 정년까지 6년간 받았을 기대 수입엔 크게 못 미치는 액수다. 김씨의 신고로 현대·기아차의 자동차관리법 위반 혐의에 대한 재판이 진행 중이라 재판 결과에 따라 보상금을 기대할 수 있지만 그 액수는 많아야 3,400만 원이다. 제조사가 차량 결함을 은폐·축소 또는 거짓 공개하거나 시정 조치를 취하지 않은 사실이 밝혀질 경우 10년 이하 징역형 또는 1억 원 이하 벌금형을 받을 수 있는데, 현대차와 기아차가 각각 벌금 최고액을 부과받았을 경우를 가정한 보상 액수다.
김씨는 공익신고를 결심할 당시 국내에서 받을 수 있는 보상이 박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미국 정부에도 제보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미국 보상금 제도가 없었다면 공익신고를 하지 못했을 겁니다. 올해로 공익신고법 보호법이 시행된 지 10년이 됐다죠? 공익신고자 보호나 보상 측면에서 보다 현실적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김씨와 같은 공익신고자에게 우리 정부가 주는 보상금은 공익신고자보호법에 근거한다. 공익신고가 벌금, 몰수, 과징금 등의 징수로 이어져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수입 증대에 기여한다는 것이 신고자 보상 논리다.
하지만 현행법은 공익신고 덕분에 아무리 많은 금액이 징수되더라도 보상금은 최대 30억 원으로 한정한다. 국가·지자체 징수액을 뜻하는 '보상대가액' 대비 보상금 비율도 20%를 넘지 못한다. 보상대가액이 1억 원 이하라면 보상 비율이 20%지만, 2억 원 초과~5억 원 이하일 땐 2,000만 원에 1억 원 초과 금액의 14%를 보태 지급하는 등 보상대가액이 커질수록 보상 비율이 낮아지는 구조다. 보상대가액이 40억 원을 넘는 경우엔 3억4,600만 원에 40억 원 초과 비용의 4%를 더해준다.
참여연대에 따르면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지급된 공익신고 보상금 평균 보상률은 7.3%에 불과하다. 지난해의 경우 공익신고로 252억5,892만 원이 징수됐지만 신고자가 받은 보상액은 15억6,090만 원(6.2%)에 그쳤다.
반면 미국은 공익신고자에게 보상대가액의 10~30%를 상한선 없이 보상한다. 미국 정부가 김씨의 제보를 바탕으로 현대·기아차에 부과한 과징금은 8,100만 달러이다. 여기에 미국 정부가 현대·기아차에 품질 강화 비용으로 요구한 금액을 더하면 총 1억3,700만 달러인데, 김씨 측은 현지 보상 심사 당국이 이 금액을 보상대가액으로 삼고 보상금을 책정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공익제보자 보호단체 호루라기재단 이영기 이사장은 "김씨의 제보로 과징금이 부과됐고, 미국법상 보상대가액의 최대 30%를 상한액 없이 보상하게 돼 있다"면서 "현지 심사위원회에서 보상 비율을 얼마나 인정할 수 있을지를 논의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국내 공익신고자 보상 수준이 낮다는 데에 대체로 공감한다. 공익을 위협하는 비리를 알리는 일은 사회에 꼭 필요하지만, 신고자 입장에선 그간 다져온 사회적·경제적 기반이 무너질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라 선의에만 기댈 수는 없다는 것이다. 공익신고를 활성화하고 신고자의 삶을 보호하려면 금전적 보상 기준을 현실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시민사회의 폭넓은 공감을 얻고 있는 보상 기준은 '보상대가액의 30%, 액수 상한 폐지'다. 참여연대는 "재취업이 영영 불가능하고 온갖 불이익 조치를 감수한 신고자들에 대한 보상이란 점을 유념해야 한다"면서 "보상대가액이 크다는 건 공익신고자가 감당해야 할 부담이 그만큼 크다는 것인데, 지금처럼 상한선을 둔 보상금 제도는 신고자에 대한 실질적 보상도, 신고 활성화를 위한 유인책도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시만사회가 주목하는 지자체 선례도 있다. 2018년 서울시는 '공익제보 보호 및 지원에 관한 조례'를 개정하면서 '보상금은 공익제보로 인해 시 재정에 직접적인 수입의 회복 또는 증대를 가져오거나 그에 관한 법률관계가 확정된 금액의 100분의 30을 지급하며, 상한은 두지 아니한다'는 조항을 뒀다.
정부에서도 같은 내용의 보상제 개선이 논의됐지만 현재는 멈춘 상태다. 지난해 6월 '보상금 상한선 폐지, 지급 비율 30% 일원화'를 골자로 한 부패방지권익위법 시행령 개정안이 국무회의에 상정됐다가 보상금 과다 지급 우려가 제기되면서 개정이 무산됐기 때문이다. 주무부처인 권익위는 "이후 추가로 진행되고 있는 논의는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