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혐? 표절? '오징어 게임' 감독, 4가지 논란에 답하다 (인터뷰)

입력
2021.09.28 13:57

호불호가 뚜렷한 작품. 그리고 극찬과 비판을 함께 받은 작품. 모두 '오징어 게임'의 수식어다. 한국 시리즈 최초로 미국 넷플릭스 '오늘의 Top 10' 1위에 등극하는 등 놀라운 기록들을 세웠지만, 각종 논란으로 도마 위에 올랐다.

황동혁 감독은 28일 진행된 화상 인터뷰를 통해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과 관련된 각종 논란에 대해 입을 열었다. '오징어 게임'은 456억원의 상금이 걸린 의문의 서바이벌에 참가한 사람들이 최후의 승자가 되기 위해 목숨을 걸고 극한의 게임에 도전하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휴대폰 번호 유출 피해자에 죄송…계좌번호는 제작진 것"

'오징어 게임'은 개인 휴대폰 번호 유출 문제로 비판받았다. 극 중 기훈(이정재)이 정체불명의 남자(공유)에게 받은 명함에는 8자리 숫자가 쓰여 있었다. 이와 유사한 번호를 휴대폰 번호로 사용 중이던 A씨는 빗발치는 문자와 전화로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게 됐다.

이에 대해 황 감독은 "(논란이 생길 거라는) 예상을 못 했다. 없는 번호라고 해서 썼다. 010을 붙이면 자동으로 전화가 걸린다는 걸 제작진이 예측 못 했던 듯하다. 그래서 이 상황이 벌어졌다. 자세하게 확인을 못해서 죄송하다. 제작진에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있고 해결해가는 중인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계좌번호와 관련된 논란도 있었다. 한 네티즌은 온라인 커뮤니티에 '오징어 게임' 속 계좌번호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황 감독의 설명에 따르면 그 계좌번호는 제작진 중 한 명의 것이었다. 황 감독은 "그 친구의 통장에 456원이 들어오고 있다더라. 협의를 하고 쓴 번호지만 나중에 무슨 일이 생길 수 있을 듯해서 그 계좌를 정리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여성 혐오 의도 없었다"

미녀(김주령)의 행동에 불쾌함을 느끼는 시청자들도 있었다. 서바이벌의 참가자들 중 한 명인 미녀는 생존, 그리고 돈이라는 목표를 위해 몸을 성적으로 활용한다. 황 감독은 이 장면과 관련해 여성 혐오의 의도는 전혀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극한의 상황에 놓인 사람이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을 때의 행동을 보여준 거다. 인간이 최악의 상황에 놓였을 때 할 수 있는 행동을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젠더 감수성이 부족하다는 주장도 있었다. VIP 모임 장면 속 보디페인팅을 한 여성들이 도구처럼 사용되는 장면이 문제가 됐다. 황 감독은 이에 대한 생각도 밝혔다. "권력자들이 사람을 어디까지 무시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도구화된 인물들이) 모두 다 여성인 것도 아니에요. VIP별로 한 명의 남자와 한 명의 여자가 도구처럼 서 있죠. 여성의 도구화라는 말은 적절하지 않아요. 인간을 도구화 하는 VIP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보디페인팅을 활용했어요."

"고무줄·공기·실뜨기 제외한 이유, 박진감 떨어지고 규칙 어려워서"

게임 종류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나왔다. 줄다리기처럼 힘을 사용하는 놀이, 구슬치기처럼 비교적 남자 아이들이 즐겨했던 놀이에서 여성 참가자, 노인 참가자가 불리할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었다. 황 감독은 "고무줄, 공기 놀이처럼 '여자들에게 유리한 게임을 넣어볼까'라는 생각도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는 극의 박진감이 떨어질 것 같다는 생각, 해외의 시청자들이 규칙을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에 이러한 게임들을 제외하게 됐다.

황 감독은 "이정재씨와 공유씨에게 딱지치기가 아닌 실뜨기를 시켜볼지에 대해서도 고민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두 사람이 실뜨기를 하면 정말 웃긴 그림이 나올 것 같았는데 보시는 분들이 룰을 이해하지 못할 듯했다"고 설명했다. '오징어 게임'이 중년 남성의 향수를 자극하는 방향으로 설계됐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7080의 보편적인 기억을 끄집어내고 싶었을 뿐 남성에 초점을 맞추지 않았다"고 답했다.

"표절 논란? 영웅 없는 '오징어 게임'은 감정에 집중"

비슷한 장르의 작품들과 비교되며 표절 논란이 일기도 했다. 황 감독은 다른 작품들과 '오징어 게임'의 차이점으로 두 가지를 꼽았다. 첫 번째는 게임보다 사람에 초점을 맞춘다는 점이었다. 그는 "아이들의 게임 중에서도 단순한 걸 골랐다. 다른 나라의 사람들도 30초 안에 게임의 규칙을 이해할 수 있다. 게임을 파악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기 때문에 사람의 감정에 집중할 수 있다"고 했다.

눈에 띄는 영웅이 없다는 점도 '오징어 게임'이 지니고 있는 특별한 매력이다. 황 감독은 "다른 게임물들의 경우 한 명의 영웅을 내세워서 어려움을 이겨내고 리더가 되는 과정을 그린다. '오징어 게임'엔 영웅도, 천재적인 사람도 없다. 기훈 역시 다른 사람의 도움을 통해 한 단계씩 앞으로 나아간다"고 말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는 징검다리 건너기를 가장 상징적인 게임으로 꼽았다. "개천을 건널 때 어떤 돌을 밟으면 흔들리잖아요. 그 돌을 밟으면 넘어져서 물에 빠질 수 있죠. 거기에 착안해서 만든 게임이에요. 앞사람이 희생해서 길을 터줘야 뒤에 있는 사람이 끝까지 갈 수 있어요. 이 사회의 승자들이 결국 패자들의 시체 위에 서 있는 거고, 우린 패자들을 기억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았어요."

"'오징어 게임', 훈장이자 꼬리표"

논란은 많았지만 '오징어 게임'이 우리의 머릿속에 깊이 남을 작품인 것은 분명하다. 테드 서랜도스 넷플릭스 공동 최고 경영 책임자 겸 최고 콘텐츠 책임자는 이 드라마에 대해 "넷플릭스 비 영어권 작품 중 가장 큰 작품이 될 것으로 보인다. 넷플릭스가 현재까지 선보인 모든 작품 중 가장 큰 작품이 될 가능성도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대작이 된 '오징어 게임'에는 황 감독의 여러 고민이 녹아있다.

이 드라마를 만드는 과정에서 황 감독은 큰 스트레스를 받았고, 6개의 이가 빠졌다. 그는 아이들 게임을 목숨 걸고 하는 내용의 '오징어 게임'이 비웃음을 듣진 않을지 걱정했다고 이야기했다. '망작 아니면 걸작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작품과 관련해 끝없는 고민을 했으며,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단다. '훈장이자 꼬리표', 그리고 '부담이자 영광'이라는 것이 '오징어 게임'에 대한 그의 생각이다. 황 감독이 대중의 사랑과 비판을 양분 삼아 앞으로 더 좋은 작품을 선보일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각종 논란 속 꾸준히 화제를 모으고 있는 '오징어 게임'은 지난 17일 공개됐다.

정한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