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 똑같은 태블릿으로... 12세 죽음 몰고간 日 사이버 괴롭힘

입력
2021.09.26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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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1월 숨진 여아 '사이버 괴롭힘' 뒤늦게 폭로
학교, 태블릿 나눠주며 비밀번호 똑같이 설정해
가해 학생들, 피해자로 로그인해 채팅창 함께 봐

지난해 11월 일본 도쿄 마치다시에서 집단 따돌림을 받았다는 유서를 남기고 숨진 채 발견된 초등학교 6학년 여학생(당시 12세)이 당시 동급생에게 사이버 괴롭힘을 당했던 사실이 부모의 기자회견을 통해 뒤늦게 드러났다. 이른바 ‘GIGA 스쿨’ 도입에 적극적이었던 학교 교장이 단체로 구매해 아이들에게 나누어 준 학습용 태블릿이 도구였다.

지난 22일 요미우리신문 등에 따르면 이 학교 교장은 '1인 1단말기' 보급을 통해 정부가 추진하는 디지털 학습 환경인 'GIGA 스쿨'을 구축하는 데 열심이었다. 2018년부터 학습용 태블릿PC를 일괄 구매해 학생들에게 배포했다. 하지만 나눠 주기만 했을 뿐, 사이버 보안이나 아이들의 디지털 사용 습관 등에는 무관심했다.

동급생들은 피해 아동에게 태블릿의 채팅 기능을 통해 욕설이나 "기분 나빠" "진심으로 죽어 줬으면" 같은 끔찍한 말을 보냈다. 그뿐 아니었다. 아이들은 자신의 태블릿에서 피해 아동의 아이디로 로그인해 이 아이가 괴롭힘당한 채팅창을 그대로 열어볼 수 있었다. 황당하게도 학교 측이 모든 단말기의 비밀번호를 '123456789'로 설정해 두었기 때문이다. ID도 앞부분은 같고 뒷부분은 반과 출석번호로 돼 있어 쉽게 유추할 수 있었다. 문부과학성은 온라인 교육과 관련해 "암호를 타인에게 알리지 않도록 지도하라"고 해 왔지만 오히려 디지털 교육에 앞서간다던 학교에서 가장 기초적인 대책조차 취하지 않았던 셈이다.

피해 아동의 부모를 대리하는 변호인은 복수의 아동이 부정 로그인을 통해 피해 아동이 받은 욕설 채팅을 훔쳐봤다고 증언했다고 말했다. 아이의 아버지는 "이전부터 괴롭힘을 당했던 것 같지만, 태블릿 단말기로 딸에 대한 험담이 더 확산됐다"며 "딸은 점차 궁지에 몰렸고, 유서에는 '고독이 제일 싫다'고 적혀 있었다"고 호소했다. 어머니는 "딸은 스포츠를 좋아해 가라테와 치어리딩을 배우고 있었다. 여러 가지 꿈이 있던 아이가 겨우 12살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고 안타까워했다.

마치다시 교육위원회는 이번 사안을 괴롭힘방지대책추진법상 '중대사태'로 인정했고 지난 3월부터 괴롭힘문제대책위원회가 조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유족 측은 "위원의 중립성에 문제가 있다"며 위원 구성을 재고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문부과학성도 이 사안을 계기로 괴롭힘에 대한 적극적 인지와 조기 대응 등 법에 근거한 적절한 대응을 실시하라고 21일 전국의 학교와 교육위원회에 통지했다.

일본에서는 집단 괴롭힘 등으로 세상을 떠나는 아이들이 줄지 않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영향까지 더해져 올해 7월까지 극단적 선택을 한 초·중·고등학생의 수는 272명에 달한다. 이는 연간 사상 최대를 기록한 지난해 같은 기간(241명)보다 더 빠른 속도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 개’ 앱,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도쿄= 최진주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