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 홍시 등 자연에서 영감…“그림은 치유의 예술이어야”

입력
2021.09.26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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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갤러리서 박서보 개인전
10월 31일까지

“21세기가 되니 스트레스 탓에 많은 이들이 환자가 돼 가고 있어요. 지구가 병동화하는 거죠. 그림은 그래서 치유의 예술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위로는 못할망정, 손상을 가중시키면 안 돼요.”

아흔을 넘긴 노장의 그림은 그래서인지 편안했다. ‘단색화의 거장’으로 불리는 박서보 화백의 개인전 이야기다. 후기 묘법(색채 묘법)이라고 알려진 2000년대 이후의 작품 16점을 소개하는 이번 전시는 서울 종로구 국제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전시에 나온 작품들은 색감이 도드라지는 게 특징이다. 박 화백은 “원초적 자연과 인간이 만든 제2의 자연에서 많은 걸 배운다”며 “그림 속 색과 구도는 다 자연에서 온 것”이라고 말했다. 예컨대 그림 가운데 줄이 하나 그어진 것은 제주도에 갔다가 우연히 본 바깥 풍경에서 영감을 얻었다. “차로 강변을 따라 달리고 있는데, 창 밖을 보니 하늘과 바다가 붙어 있는 거예요. 그게 너무 멋있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그림을 그리니까 그런 구도가 나왔어요.” 빨간색 작품은 단풍, 주황색 작품은 홍시, 회색 작품은 공기를 관찰하다 나온 것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그의 그림은 전 세계적으로도 주목을 얻고 있다. 그가 찾은 이유는 이렇다. “서양 사람들은 자기 생각을 드러내는 걸 좋아하죠. 저는 비워내자는 쪽이에요. 나를 드러내고 표현하지 않아요. 제 그림은 서양에는 없는, 보는 사람을 안아주는 그림이라고 생각해요.”

그림을 수신(修身)을 위한 도구라고 생각하기에, 그의 작업 과정은 마치 수행자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작가는 작품을 제작하기 위해 두 달 이상 물에 불린 한지 세 겹을 캔버스에 붙이고, 표면이 마르기 전에 굵은 연필로 선을 긋는다. 선을 그을 때마다 젖은 한지가 밀려 산과 골의 형태가 만들어지면, 표면에 아크릴 물감을 입힌다. “색이 하나라서 단색화가 아닙니다. 행위의 무목적성, 행위의 무한반복성, 행위과정에서 생성된 흔적을 정신화하는 것, 이 세가지가 단색화의 핵심 정신세계에 도달하는 요소입니다.”

또박또박 자신의 작품세계에 대해 설명해가던 그는 기운이 예전만 못하다면서도, 조만간 200호짜리 대형작을 선보이겠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살아 있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죽어서 후회하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2019년부터 제작해온 게 있는데, 연말까지는 완성시킬 거예요.”

전시는 10월 31일까지.

채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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