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하데스타운'이 관객들과 평단의 호평을 받고 있다. 2019년 브로드웨이에 초연한 이 작품은 토니상에 14개 부문 노미네이트되어 8개 부문에서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정통 재즈와 블루스 등 지금까지 뮤지컬에서 접하기 힘든 음악을 경험하게 할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익숙한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신화를 현대적 이야기로 풀어낸 각색이 큰 사랑을 받았다.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이야기는 그동안 오페라에서 사랑받아온 소재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오페라는 페리의 '에우리디케'(1600)다. 또 관점에 따라 몬테베르디의 '오르페오'(1607)를 본격적인 오페라의 시작으로 보기도 한다. 최초의 오페라가 무엇이든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는 오페라의 시작부터 사랑받아온 소재인 셈이다. 지금의 오페라 형식을 완성했다는 글루크의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나 하이든의 '철학자의 영혼, 혹은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1791)까지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는 꾸준히 오페라 무대로 소환됐다.
사랑하는 아내 에우리디케가 죽자, 오르페우스는 리라 하나를 들고 지옥으로 내려가 그녀를 구해온다. 그에게 유일한 무기는 음악이었고, 그 힘은 예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강력해 지옥을 지배하는 하데스와 복수의 여신 네메시스도 눈물을 흘리게 만들었다. 음악의 힘으로 죽음을 넘어선 사랑을 하는 오르페우스는 오페라 작가들이 탐낼 만한 주인공이었다. 그리스 신화의 오르페우스는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하데스의 말을 지키지 못하고 아내를 두고 혼자 지상으로 온 후 디오니소스 여신들에게 갈기갈기 찢겨 죽음을 맞는다. 그러나 음악의 힘을 극대화한 낭만적인 오페라에서는 하늘에서 별이 되어 만나거나, 지상으로 에우리디케를 데려와 둘의 사랑을 이루게 해준다.
지나치게 낭만적이고 비현실적인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신화는 현대로 와서는 소재로서 큰 인기를 끌지 못했다. 이미 19세기 오펜바흐만 하더라도 사랑을 절대적이고 낭만적으로 그린 신화를 당대 지배자들의 위선을 풍자하는 소재로 활용했다. 오펜바흐의 오페레타 '지옥의 오르페우스'(1858)에는 낭만적인 사랑도, 헌신도 없다. 작품 속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는 권태기에 빠진 부부로 등장한다. 아내가 하데스와 바람이 나 지옥으로 가자 오르페우스는 쾌재를 부른다. 그러나 여론에 떠밀려 어쩔 수 없이 지옥으로 내려가게 되고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약속을 당연히 지키지 않아서 둘은 헤어지게 된다. 오펜바흐의 작품은 절대적 사랑의 가치와, 게으르고 방만한 신들을 통해 지배층을 동시에 풍자한다.
현대인에게 음악의 신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는 흥미로운 이야기 소재가 아니다. '하데스타운'은 현대적 요소를 추가하면서도 오페라가 했던 것처럼 사랑의 가치를 극대화하면서 동시대의 공감을 얻어낸다. 해설자 헤르메스와 운명의 세 여신이 등장하는 '하데스타운'은 신화와 역사가 뒤섞인 1920년대 미국 뉴올리언스를 배경으로 한다. 지옥의 신 하데스는 광산을 운영하는 대자본가로 등장하고, 에우리디케는 가난과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자발적으로 하데스타운으로 내려간다. 자본에 매몰된 노동자들은 반복되는 노동 속에 스스로를 잃어간다.
'하데스타운'은 지옥을 노동의 착취와 비인간화가 진행되는 극단적 자본주의 세상으로 설정했다. 한편 아름다운 페르세포네를 잃은 지상은 봄과 가을이 얼마 남지 않고 더위와 추위가 길게 이어지는 황폐한 공간이다. 이 모든 비극은 페르세포네를 향한 하데스의 잘못된 사랑에서 비롯된다. 페르세포네를 너무 사랑한 하데스는 그녀에게 모든 것을 해주기 위해 노동자의 영혼마저 착취하는 대자본가가 되지만 그 역시 사랑을 잃게 된다. 오르페우스는 그가 잊고 있는 사랑의 감정을 노래로 일깨우며 지옥에서 에우리디케를 데리고 나올 기회를 얻는다. 오르페우스가 ‘라라라 랄랄랄라~’로 시작하는 '서사시'를 부르자 하데스의 단단히 언 가슴에 균열이 생기고 그 틈으로 사랑의 꽃이 피어난다. '하데스타운'은 오르페우스가 '서사시'를 세 번 반복하며 세상을 좀 더 아름답게 만들어줄 사랑의 노래를 완성하는 과정을 통해 현대에도 이 낭만적인 러브 스토리가 충분히 힘이 있는 이야기임을 증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