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짐'이 누군가에겐 '선물'..."나눔이요? 당근이죠"

입력
2021.10.2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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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근마켓 나눔러들이 말하는 '나눔의 이유'
"주위의 어려운 이웃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내가 안 쓰는 물건 남에겐 쓸모 있었으면..."


기자가 당근마켓 애플리케이션을 처음 설치한 것은 지난달 태어나 처음으로 자취 생활을 시작하면서였습니다. 필요한 생활용품을 사기 위해 살피던 중 베개를 무료로 나눔한다는 글을 보고 연락을 했고, 친절한 대답으로 만남이 성사됐는데요.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지난달 나눔러(나눔을 하는 사람)는 자신의 몸보다 큰 쇼핑백을 들고 비를 뚫고 나왔습니다.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마스크 속에 가려진 미소와 짧은 인사를 주고 받고, 나눔을 위한 만남은 그렇게 끝이 났습니다.

집으로 돌아간 뒤 고맙다는 연락을 하자 "출근 잘 하시고 서울 생활 파이팅하시길 바라요~"라는 답변이 돌아왔는데요. 그 짧은 만남과 다정한 메시지에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낯선 동네가 이 만남으로 조금 더 가깝게 느껴졌습니다. 동시에 아무런 보답이나 이득없이 자신의 것을 나눔하는 주변의 이웃들이 궁금했습니다.

2015년 지역기반 중고거래 앱으로 시작한 당근마켓의 이용자 수는 7월 말 2,000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이용자 수가 늘며 당근마켓은 이웃을 연결해주는 다리가 되기도 합니다. 이용자들은 단순한 중고거래를 넘어 나눔을 통해 소통하는데요. 매월 11일 나눔의 날과 나눔 이벤트 등 당근마켓에서도 무료 나눔을 권장하며 나눔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당근마켓의 검색창에 '나눔'을 검색하면 주황색 하트가 붙은 나눔의 글들이 끝없이 나옵니다. 특히나 자신이 있는 동네의 평범한 사람들이 올린 나눔인데요. 닉네임 뒤의 나눔러를 만나서 얘기를 나눠보기로 했습니다.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작은 것이라도 나누는 이유

조남숙(60)씨의 거래 후기에는 "행복을 나눔 해주셨다", "이렇게 친절한 분은 처음 봤다", "비올까봐 우산도 챙겨주시고 버스정류장까지 함께 와주셨다" 등의 따뜻한 내용이 유독 많습니다. 단순히 필요에 의해 거래에 나섰다가 조씨의 친절함에 감동한 이웃들이 남긴 글입니다.

조씨는 지난해 몸이 아파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자 심심함을 달래고자 당근마켓을 이용하기 시작했다고 해요. 당근마켓의 매력에 빠져 매일 눈뜨자마자 당근마켓을 보던 조씨는 자연스럽게 나눔을 하게 됐습니다. "나눔은 좋은 것, 새 것, 안 쓰는 것을 하려 한다"는 조씨에게 나눔은 어느새 특별한 일이 아닌데요.

나눔을 하는 이유를 묻자 자신보다 어려운 사람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주고 싶어서라고 했습니다. 최근 몸이 안 좋고, 환경이 어렵다 보니 오히려 자신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을 더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고 해요.

조씨는 "20년 전 정말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이혼하고 어렵게 살아왔는데 그때 생각하면 아직 마음이 좋지 않습니다"라면서 "과거 제가 그랬던 것처럼 지금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 이들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이 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조씨의 무료 나눔 목록에 생활용품과 함께 인형이 눈에 띕니다. 조씨는 자식들 생각에 아이들에게 필요한 물건을 자주 나눔하려 한다고 했어요. 자신도 아이들 어렸을 때 인형을 사주고 싶어도 못 사준 적이 많았다는 그는 "그런 걸 생각하면 분명 필요한 아이들이 있을 테니까"라고 쑥스러워 했습니다.

조씨는 거래 전 채팅으로 상대방에게 "아이가 있냐"고 물어본다고 해요. 아이들에게 필요한 걸 챙겨주기 위해서 입니다. 실제로 조씨의 거래 후기에는 "아이가 있다고 하니 엄청 나눔 해주셔서 선물받은 기분"이라는 글이 눈에 띄었어요.

특히 그는 학생들이나 자취생들에게도 도움을 주려 애쓴다고 합니다. "어린 학생들이 혼자 살면 얼마나 힘들어요"라며 "내가 그냥 집에 가지고 있으면 짐이기도 하고 필요한 분들께 가서 잘 사용되면 좋은 일이고 보람도 있죠"라고 덧붙였습니다. 조씨는 기자 역시 초보 자취생이라고 하자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필요한 것 없냐며 묻기도 했습니다.



나의 '짐'이 필요한 이에겐 '선물'이 되는 나눔

손보라(42)씨의 당근마켓 닉네임은 '풀소유'입니다. 그만큼 가진 게 많다는 뜻인데 실제 손씨는 집에 없는 게 없다고 했어요. 그는 같은 동네에서 이사를 자주 다니며 정리한 물건들 중 팔리지 않는 것을 나눔하기 시작했습니다. 물건들을 집안에 쌓아두지 않고 나눔하다 보니 생활 공간에도 여유가 생겼다고 해요.

여성용품을 만들어 파는 직장을 다니는 손씨는 회사에 테스트 용으로 들어온 생리대나 생리컵 같은 여성용품들을 버리는 일이 자주 생기자 무료 나눔을 하게 됐습니다. 서울의 한 여대 근처에 사는 손씨는 여성용품이 필요한 학생들이 생각보다 많다고 말합니다. "동네에서 거래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10대, 20대라 처음엔 유료로 올렸어도 1,000원, 2,000원 돈 받기 좀 그렇더라고요"라고 했어요.

손씨는 생각보다 도움이 필요한 이웃이 많다는 걸 알게 됐다고 합니다. 손씨의 여성용품 나눔 글에 연락하는 사람들은 아르바이트를 하다 그만둬 사정이 어렵거나 여성용품이 필요하다는 등 안타까운 사연을 가진 경우가 많다고 해요.

손씨는 여성용품은 모든 여성에게 꼭 필요한 물건이지만 주변에 이를 빠듯하게 쓰는 사람들도 많다고 말합니다. 손씨는 "상황인 어려운 친구들에게 어른으로서 작은 도움이라도 되면 좋겠다 싶어서 나눔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라고 했어요.




당근마켓에서 무료 나눔을 30회 이상 하면 받는 '나눔은 습관' 배지를 받은 차형돈(29)씨의 거래 후기에도 "나눔 해주셔서 감사하다"는 후기들이 줄을 잇습니다. 차씨는 '나에게 쓸모 없는 것이 남에겐 꼭 필요할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에서 시작한 나눔이 지난 1년 동안 67건이나 됐습니다. 그는 소파나 테이블 같은 가구부터 햄버거나 커피 쿠폰, 육아 용품까지 다양한 물품에게 새 주인을 찾아줬어요.


차씨는 "나눔을 하면서 성의 표시로 간식을 챙겨주시기도 하고 제가 또 챙겨드리기도 하거든요"라며 "그런 게 동네 인심이고 정이지 않을까 싶어요"라고 말했습니다.

당근마켓에서 나눔글을 올리는 다른 이웃들도 '내가 쓰지 않는 것을 남이 사용하면 좋겠어서'라고 했어요. 역시 '나눔은 습관' 배지를 받은 당근마켓 이웃 닉네임 '문희주세요'와 '지플라워'는 나눔의 이유를 묻는 기자에게 "버릴 수도 있지만 혹여나 필요한 사람이 있을까봐", "뭐든 돈을 주고 사야 하는 물건인데 버릴 바에는 누가 사용하면 좋아서"라고 답했습니다. 대단한 이유가 있어서라기보다는 일상에서 다른 사람을 한 번 더 생각하는 소박하지만 따뜻한 마음이 나눔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거래 한 번으로 관계가 끝나는 게 아니니까" 나눔으로 이어지는 인연

당근마켓의 당근은 '당신의 근처'라는 뜻입니다. 당근마켓의 거래는 각자가 사는 동네에서 이뤄지죠. 따라서 거래 상대는 한 번 보고 말 남이 아닌, 이웃일 경우가 많습니다.

손녀를 위해 여성용품 무료 나눔을 신청한 할머니는 자신이 원래 차상위계층인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기업 후원 물품이 많이 줄었다고 했습니다. 손씨는 할머니 사정을 듣고 선뜻 연락처를 건넸습니다. "제가 원래 개인 연락처는 잘 안 드리는데 필요하실 때마다 바로 연락 달라고 연락처를 드렸어요."

조씨의 무료 나눔 글에는 '단골손님 환영'이라는 글귀가 적혀있습니다. 자신의 물품을 꾸준히 재구매하는 단골 고객이 있다고 합니다. 조씨가 판매를 위해 올린 물건들 중에 여러 개를 찜한 후 한꺼번에 사가는 고객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조씨는 그런 고객에겐 감사의 의미로 무료 나눔 물품 중 필요한 것을 가져가도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한 번으로 끝나는 사이가 아니라는 생각은 꾸준히 관계를 유지하도록 합니다. 당근 거래를 통해 조씨와 몇 번 만난 고객들 중엔 '잘 쓰고 있다', '잘 계시냐' 등 안부를 묻기도 합니다. 조씨는 당근 거래도 사람을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며 "물건을 하나 팔거나 나눔을 했다고 해서 그 사람과 관계가 끝난 게 아니죠"라며 "언제 또 만날지 모르니까 최대한 잘 하려고 하죠"라고 강조했습니다.



"나눔은 돌아오는 것" 주고받으며 느끼는 이웃의 정

나눔은 일방적인 것이라고들 생각하지만, 정작 나눔러들은 하나같이 주고받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닉네임 '지플라워'는 여러 번 무료 나눔을 한 뒤 고맙다며 견과류 같은 작은 선물을 받은 적이 있는데요. 차씨도 나눔을 위해 만난 30대 부부가 물건을 받으며 직접 키운 감자를 건넨 일이 잊을 수 없다고 합니다. 그는 "엄청 많이 주셔서 여러 번 나눠 잘 먹었죠"라며 "먹는 동안 마음이 훈훈했고 이런 게 이웃의 정인가 싶었습니다"라고 밝혔습니다.


차씨는 당근마켓 안에서 나눔은 선순환 하며 자신에게 돌아온다고 말했습니다. "주변 사람들끼리 나눔을 통해 만나서 말도 섞고 작은 것이라도 주고받으면서 나눌 수 있다는 게 감사하죠"라는 그에게 나눔은 단순한 거래를 넘어 '이웃과 함께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었습니다.

손씨는 자신의 나눔이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윈윈(win-win)'이라고 했어요. 어차피 안 쓰면 버려야 하는 제품을 나눔 하고, 제품에 대한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된다는 것입니다. "여성용품의 경우 무료 나눔 했던 학생들과 연락을 하며 피드백도 얻고 업무에 필요한 리뷰를 받을 수 있어서 직업적으로 도움이 된다"고 했어요. 그는 또 이들에게 주변의 여성용품이 필요한 어려운 친구들을 소개받아 따로 나눔을 하기도 하며 인연을 넓혔습니다.

조씨는 자신을 칭찬하는 글들에 대해 "나중에 자신에게도 돌아올 친절함"이라고 말했습니다. 비가 오면 우산을 챙겨주고, 지리를 잘 모르는 사람에게 교통편을 알려주는 건 우리 모두가 동참하면 좋을 예의라는 것입니다. 그는 "서로 만나서 짧게라도 교류를 하는데 상대가 흡족하면 저도 좋은 것 같아요"라며 "저도 나중에 거래를 하면서 겪을 수도 있고 그때의 친절과 도움이 나한테도 돌아올 테니까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나눔은 현재진행중

몇 달 전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당근마켓 무료나눔했다가 봉변당한 떡볶이집 사장"이라는 제목의 글이 화제였습니다. 떡볶이 가게를 운영하는 사장이 "예상보다 많은 떡볶이를 만들었다"며 올린 떡볶이 무료 나눔 글에 일부 이용자들이 채팅을 통해 그를 비판했던 일이었습니다. 해당 가게 운영자는 "(떡볶이) 얼마나 있어요. 우리는 아이가 많아서요. 아이가 넷이라 1인분은 적어요" "내일 갈 테니 내일 챙겨주세요" "왜 톡을 안 보세요. 다음부턴 그러지 마세요" 등의 메시지를 받았다고 알려졌는데요.

좋은 뜻으로 떡볶이를 나눔 한 사장에게 더 많은 양을 요구하거나 선착순에 들지 못했다는 이유로 면박을 준 것입니다. 이 사연에 대해 누리꾼들은 "나눔 하고도 욕 먹는다니 어이가 없다", "나눔 받으면서 저딴 식이라니"라는 등의 비판을 쏟아냈습니다.

좋은 뜻으로 시작한 무료 나눔으로 오히려 상처를 받은 사람들의 얘기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습니다. 취재를 하며 만난 나눔러들 또한 나눔을 하며 사람들의 무례한 행동에 상처받기도 했다고 말했어요. 가장 많이 언급된 것은 시간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무료 나눔이기에 오히려 더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나눔러들은 "앞으로도 계속 나눔을 할 거냐"는 질문에 모두 "그렇다"고 답했습니다. 상처를 받기도 하지만 그보다 감사해하는 좋은 사람들이 더 많다는 것입니다. 조씨는 "나눔 했을 때 '따뜻하게 잘 입겠다', '잘 사용하겠다', '감사하다' 그런 말들에 힘이 나고 보람이 생겨요"라며 "이런 말들이 다시 나눔을 하게 되는 힘이 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들의 나눔은 존중과 감사를 주고받는 만남 속에서 세상을 조금 더 따뜻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정혜린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