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성묘 대신 추모공원 근처 식당에서 간단하게 밥만 먹을 예정이에요."
경기 광명시에 사는 변동수(52)씨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추석 연휴 기간에 추모공원이 폐쇄되자, 성묘 대신 가족끼리 식사를 하기로 했다. 다만 추모공원이 위치한 강원 철원군 인근에서 식사하며 고인을 추모할 예정이다.
새벽부터 온가족이 모여 음식을 장만하고 조상의 묘를 찾아 차례를 지내며 성묘하는 풍경이 사라지고 있다. 코로나19로 가족 모임이 뜸해지면서 비대면 성묘 문화가 빠르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경기 부천시에 거주하는 옥성호(49)씨는 이번 추석엔 비대면으로 성묘할 예정이다. 옥씨는 지난 설 연휴 때도 미리 준비한 비대면 추모관을 모니터에 띄워 아내의 조모를 추모하는 시간을 가졌다. 추모 공원이 코로나19 확산 예방 차원에서 개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옥씨는 추석에도 같은 방식으로 성묘할 계획을 하고 있다. 그는 "추모관에 영정사진을 설정해놓고 가상으로 상도 차려놓곤 했다"며 "친척들에게도 방명록을 남겨달라고 링크를 보내면서 소통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20일 보건복지부 산하 한국장례문화진흥원에 따르면 623개의 국내 장사시설에선 사회적 거리두기 차원에서 성묘객을 분산하고자 추석 기간 온라인 성묘·추모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진흥원이 위탁 운영하는 'e하늘 장사정보시스템' 누리집을 통해 제공되는 이 서비스는 유족들이 직접 고인에 대한 온라인 추모관을 만들고, 차례상·분향·헌화·사진첩 등 기능을 이용해 '정성'을 표현할 수 있도록 했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비대면 성묘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는 모양새다. 이달 1일부터 17일까지 하루 평균 5,277명이 꾸준히 온라인 추모관을 방문한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추석 때 출범해 23만여 명이 이용했고, 올해 설에도 25만 명이 온라인으로 성묘를 했다. 진흥원 측은 올해 추석 연휴 기간에도 30만 명 이상이 이용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직접 방문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에 더욱 현실감 있는 서비스를 요구하는 가족들의 요구도 커지고 있다. 진흥원 측은 이에 추석 연휴 기간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추모관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첨단 기술을 활용해 보다 현실감 있는 비대면 성묘 서비스를 개발한다는 방침이다.
김종일 진흥원 시스템관리부 과장은 "유족들이 추모관을 업데이트하며 고인을 기억할 수 있도록 명절 이후에도 열어두기로 했다"며 "메타버스 등 다양한 IT 기술을 활용해 현장감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생생한 온라인 추모를 위한 시도는 이미 곳곳에서 이뤄지고 있다. 가상현실(VR) 조문·추모관 서비스 업체 별다락은 3D 모델링으로 만든 샘플 추모관을 자체 누리집에서 선보였다. 이용자가 고인의 이름이 붙은 흰색 추모관 건물을 클릭하면 실내의 '유품 전시실'로 이동하는 방식이다. 유품 전시실에는 고인의 애장품을 전시할 수 있고 가상현실로 구현된 복도에 사진을 걸 수도 있다.
박수인 별다락 대표이사는 "사용자 전용 3D 공간에 사진을 게시하는 방향으로 우선 제작하고, 궁극적인 목표는 메타버스처럼 아바타를 만들어 직접 다른 사람과 소통 하도록 하는 것"이라며 "10월까지 마무리해 서비스를 개시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매장 위주의 장사 문화가 화장 중심으로 변하고 있는 것도 성묘 문화에 영향을 주는 요인으로 꼽힌다. 복지부에 따르면 국내 화장률은 2005년 52.6%로 매장률을 처음 앞지른 이래 빠른 속도로 증가해왔다. 올해 국내 화장률은 5월까지 누적 사망자 기준으로 90%까지 높아졌다.
추모공원이나 선산의 묘를 개장해 화장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진흥원에 따르면 2018년 5만여 건이었던 개장 유골 화장 건수는 작년엔 13만여 건으로 2배 이상 뛰었다. 1년에 한 번씩 2시간 거리를 운전해 성묘를 해왔다는 변씨도 개장 유골 화장을 고민 중이다. 변씨는 "벌초나 지반 침하도 걱정되고 비 오면 관리가 어려워 수목장을 하거나 승화원으로 옮길 생각"이라며 "가까운 곳에 모셔서 자주 찾고 싶다"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매장에 대한 인식과 가족 공동체 형태가 바뀌면서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분석했다. 장만석 전 동국대 생사문화산업학과 교수는 "국토 효율화 정책 추진과 함께 국민들 의식이 높아지면서 후손들을 위해 환경을 보호하려는 분위기가 형성됐다"고 봤다.
양순미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 연구사는 "친족 공동체가 줄어들고 묘를 지속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후손이 없다는 것도 화장률이 높아진 배경"이라고 짚었다. 다만 "코로나19로 가족 지향적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도 많아져 직접 성묘하는 인구가 늘어날 수도 있다"고도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