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사람들은 차례와 제사를 같은 것으로 인식하곤 한다.
오늘날에는 제사 시간이 자유로워졌지만, 원래 제사는 돌아가신 당일 밤 11시에 지내는 밤의 의례다. 그런데 차례는 환한 오전에 하지 않는가? 즉 제사와 차례 사이에는 밤과 낮이라는 커다란 차이가 있는 것이다. 또 제사가 특정한 분의 기일에 지내는 맞춤형이라면, 차례는 다수의 조상님을 대상으로 하는 합동 의례라는 점에서도 다름이 느껴진다.
차례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명칭과 행동의 불일치'다. 차례(茶禮)는 말 그대로 차가 중심이 되는 예인데, 실제로 사용되는 것은 청주가 아닌가? 이러면 주례(酒醴)라고 해야지, 왜 차례라고 하는 걸까? 차례를 어떤 분들은 후손들이 차례차례 나와서 절하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이는 오래된 아재 개그, 즉 할배 개그일 뿐이다. 그렇다면 차례란 무엇인가?
이슬람에서 술은 금지식이다. 이렇다 보니 대체 음료가 발전하는데, 여기에 각성 효과를 더해 기도 음식으로 유행하는 것이 바로 커피다. 아랍에 의한 커피 확대는 아라비카라는 이름으로 오늘날까지 박제되어 있다.
아랍의 커피와 똑같은 현상이 동아시아에서 먼저 발생한다. 이것이 술을 금지하는 불교와 차의 유행이다. 불교가 번성했던 당나라에는 술에 대한 금기가 있었기 때문에, 차를 마시며 이바구를 즐기는 다방 문화가 발전한다. 이들은 차를 솥에 넣고 끓여 국자로 다완에 떠 마시며 몇 시간씩 담소를 나누곤 했다.
당나라 차 문화의 황금기가 맺은 결실이 바로 차의 성인으로 평가되는 육우의 '다경(茶經)'이다. 얼마나 차에 대한 열기가 대단했으면, 차에 대한 글이 경전으로까지 격상되었겠는가! 또 차의 각성 효과는 수행에 도움이 된다고 하여, '차와 선(禪·명상)은 한 맛'이라는 '다선일미(茶禪一味)'가 유행기도 한다.
이런 불교를 등에 업은 차의 유행이 중국 전통의 제사와 컬래버를 이루는 것이 바로 차례다. 차례는 유교의 조상숭배인 제사와 달리, 불교의 몸과 마음을 정갈히 하는 재계(齋戒)에 추모가 더해진 의례다. 때문에 필요에 의해서, 초하루나 보름 그리고 명절이나 돌아가신 분의 생일 등에 차례가 행해지곤 했다. 즉 차례는 현충일에 하는 묵념과 같은 낮에 하는 간략한 추모례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제사와 차례는 완전히 다르다. 마치 묵념이 제사와 같은 것일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실제로 불교의 차례는 차 올리는 것 말고도 음식도 과일과 채소 위주의 소제(菜祭)였다. 이는 제사상이 고기와 생선 위주의 육제(肉祭)인 것과는 차이가 크다.
오늘날 차례는 누가 봐도 고기 중심의 육제고, 또 차가 아닌 술이 올라가는 주례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그것은 불교와 유교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며, 또 힘의 세기에 의해 변화가 치우치기 때문이다. 즉 유교 국가인 조선이 맨 마지막 왕조가 되면서, 불교의 차례 역시 유교적인 제사의 형태로 변모한 것이다.
다만 오늘날까지도 차례라는 명칭과 낮에 지낸다는 원형이 일부 잔존하고 있을 뿐이다. 마치 아라비카가 아랍인들에 의해 경작되고 확대된 명칭인 것은 잊힌 채, 오늘날에는 커피의 대표적 품종으로만 인식되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차례는 묵념과 같은 불교식 추모 의례라는 점에서, 유교의 제사와 달리 유연성이 크다. 묵념은 형식보다 마음 자세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차례는 형식에 구애받지 말고 자유롭게 조상을 추모하며 기리면 된다. 이는 차례를 번거로워하는 현대인들에게 불교가 주는 축복의 메시지가 아닌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