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소질환은 유병률과 인지도가 낮아 진단부터 치료까지 어려운 분야다. 이런 희소질환을 치료할 '희귀의약품'은 수익성이 떨어져 제약업계에선 '고아약(Orphan Drug·이익이 적어 개발이 거의 되지 않는 약)'이라 불리며 개발 기피 대상으로 꼽히곤 했다. 제약업계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확인된 8,000여 종의 희소질환 중 치료제가 존재하는 질환은 5%에 그친다.
그런데 최근 분위기가 달라졌다. 제약업계가 속속 희귀의약품 개발에 뛰어들고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의 품목 허가도 늘고 있다. 인공지능(AI)을 활용한 후보물질 발굴 등 기술 발전으로 개발이 수월해졌고 정부 지원 확대로 투자 부담이 줄어 수익구조가 비교적 안정화됐기 때문이다.
21일 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에 따르면 글로벌 희귀의약품 시장 규모는 2019년 890억3,000만 달러에서 연평균 12.7%씩 성장해 2025년엔 1,834억5,000만 달러(약 215조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그만큼 국내 제약업계도 놓칠 수 없는 시장이다. 지난 6월 기준 식약처가 지정한 국내 희귀의약품 품목은 333개다.
식약처는 희귀의약품 개발 시 허가심사 자료 일부 면제, 우선 심사, 품목 허가 유효기간 10년, 재심사 기간 10년 등의 혜택을 제공한다. 품목 허가 유효기간과 재심사 기간을 다른 의약품의 두 배로 연장해 개발 장벽을 낮춘 것이다. 미국 식품의약국(FDA)도 희귀의약품에 대해 7년간 독점권 인정 등의 혜택을 부여한다. 업계 관계자는 "희귀의약품은 대부분 대체치료제가 없어 비용이 높게 책정된다"며 "독점 판매 지위를 확보할 수 있어 해외시장 진출도 용이하다"고 말했다.
한미약품은 현재 국내외에서 총 17건(FDA 9건·유럽의약품청(EMA) 5건·식약처 3건)의 희귀의약품 지정을 받았다. 최근엔 세계 최초로 한 달에 한 번만 투여하면 되는 단장증후군 치료제 'LAPSGLP-2 Analog'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GC녹십자는 미국 제약사와 손잡고 '숙신알데히드 탈수소효소 결핍증(SSADHD)' 치료제, 소아 희귀간질환 치료제 등 공동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SK플라즈마는 얼마 전 희소질환 등 새로운 바이오시장 진출을 위해 1,100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실시했다.
단 1회 치료로 생존을 기대할 수 있는 세포 및 유전자 치료제들도 올해 잇달아 국내에서 품목 허가를 받고 있다. 한국아스트라신경섬유종증 1형 치료제 '코셀루고', 한국노바티스의 척수성 근위축증(SMA) 치료제 '졸겐스마' 등이다. 식약처에 따르면 희귀의약품 품목 허가는 2015년 49개에서 2019년 11개까지 감소했다가 지난해에는 24개로 늘었다.
그러나 연구 열기와 상반되게 정작 투여가 필요한 국내 환자들에겐 '그림의 떡'이다. 투여 비용이 적게는 수억 원에서 많게는 수십억 원까지 책정돼 접근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산정특례제도를 적용하면 본인부담률이 10% 수준으로 줄어들지만 특성상 진단기준이 불명확해 희소질환으로 인정받는 게 녹록지 않다. 지난 5월 식약처의 품목 허가를 받은 졸겐스마는 1회 주사에 무려 25억 원이다. 지난 7일 건강보험이 적용되도록 도와달라는 호소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오기도 했다.
김진아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사무국장은 "여러 급여기준을 맞춰야 하고, 건강보험 적용에 대한 사회적 합의도 얻어야 해 희귀의약품이 품목 허가가 되더라도 환자에겐 희망고문이 이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환자 삶의 질 등 무형적 요소까지 복합적으로 따져 제한 범위와 조건을 폭넓게 허용해 사각지대를 해소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