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의학 전문의인 오은영 박사는 육아 고민을 가진 부모들에겐 '교주'로 통한다. 오 박사가 출연한 TV프로그램을 꼬박꼬박 챙겨 보면서, 그의 말을 진리처럼 받드는 부모들이 많다는 얘기다. 반면, 일상 속에서 이런 도움을 받는 게 쉽지 않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2년 가까이 장기화하면서 재택근무가 '뉴노멀'로 정착한 현재, 많은 직장인들이 '코로나 블루'(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우울감이나 무기력증)에 시달리고 있다. 이유는 다양하다. 가족간 갈등 증가에서부터 대인관계 위축에 따른 고립감이나 직장에 대한 소속감 저하와 번아웃 증후군 등 이 대표적인 원인이다. 실제 근로복지공단에 따르면 2016년 183건에 불과했던 정신 건강과 관련된 산재 신청 건수는 지난해 517건으로 급증했다.
이처럼 경고등이 켜진 직장인들의 멘털 관리를 위해 기업들이 발 벗고 나섰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구성원과 그 가족들에 대한 심리 상담 강화다.
SK이노베이션은 구성원들의 멘털 케어를 위한 사내 상담센터 '하모니아'를 운영하고 있다. 2005년부터 운영된 하모니아는 코로나19 발생 이후 이용자 수가 크게 늘었다. 지난해 상반기와 올해 상반기를 비교하면, 상담 건수가 862건에서 1,194건으로 약 38%나 증가했다.
하모니아의 상담 분야는 무제한이다. 경력 코칭은 물론 연애나 자녀 교육 등에 관해서도 신청이 가능하다. SK이노베이션의 20년차 직원 김모씨는 "최근 큰아이 진로 문제와 둘째아이 학교 적응 문제로 상담을 받았다"며 "회사 상담센터를 통해 가장 큰 고민거리에 대한 도움을 받을 수 있어서 업무 집중도도 높아지고 회사에 대한 만족도도 높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저연차 직원은 다양한 심리 검사, 커리어 코칭, 정서 관리 프로그램 등에 대한 요구가 많고, 고참 직원들은 사내 후배들과의 관계, 중간관리자로서의 리더십, 자녀 혹은 배우자와의 관계는 물론 은퇴 후 삶에 대한 고민 상담 비중이 높다"며 "하모니아는 구성원들의 행복 증진에 기여하기 때문에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관점에서도 긍정적"이라고 설명했다.
한화그룹의 방산·정보통신기술(ICT) 계열사인 한화시스템도 기존에 있던 심리상담 프로그램을 확대했다. 한화시스템은 2013년부터 시행해 온 '마음건강 프로그램'을 지난 7월부터 재직 중 8회에서 연간 6회로, 지원 대상도 직계가족 1명에서 모든 직계가족으로 늘렸다. 심리상담 횟수는 2019년 월평균 9.7회에서 올해 12회로 대폭 증가했다.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연령대는 20, 30대 젊은 직원의 비율이 지난해 82%, 올해 52% 등으로 과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LG전자는 기존 대면 중심으로 운영되던 심리상담을 확대해 올 하반기부터 화상상담을 도입했다. 재택근무 직원과 가족들이 모바일로도 편리하게 상담을 받을 수 있다. LG화학은 올해부터 전 세계 17개국 2만여 명 구성원을 대상으로 8개 언어가 지원되는 24시간 비대면 글로벌 심리상담 프로그램 'The 좋은 마음그린'을 전 사업장에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포스코는 '마음챙김센터 휴'를 확장해 기존 포항과 광양에 각각 1명씩이던 전문 심리상담사를 2명씩 배치, 임직원 및 가족뿐만 아니라 협력사 직원들도 상담을 받을 수 있게 했다. 롯데그룹도 지난해 말부터 협력사 직원을 포함한 무료 심리 상담을 비대면으로 지원하고 있다.
이밖에도 직원들의 정서적 안정과 업무 효율 및 창의력 향상을 위한 기업들의 노력은 다방면에서 진행되고 있다. 한화생명은 지난달 26일, 63빌딩 본사 사무실이 아닌 원격근무지에서 일할 수 있는 제도를 시행 중이다. 현재는 강원 양양에 있는 브리드호텔에서 동해바다를 보며 일할 수 있고, 향후 제주도나 정선 등 새로운 곳을 추가해 선택의 다양성을 높여 나갈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