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로교 목사 게일이 공자의 행적을 그려낸 그림을 소장한 이유 

입력
2021.09.18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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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자로 재구성한 국외문화재 이야기

편집자주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습니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 관계자들과 문화재 전문가들이 그 동안 잘 몰랐던 국외문화재를 소개하고, 활용 방안과 문화재 환수 과정 등 다양한 국외소재문화재 관련 이야기를 격주 토요일마다 전합니다.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 중 가장 좋은 게 무엇이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그때마다 대답은 달라지지만, 비교적 자주 언급하는 대상이 있다. 바로 미국 브루클린박물관이 소장한 ‘청자양각 연판문 주자’이다.


명성황후가 어의(御醫)에게 선물한 청자양각 연판문 주자

청자양각 연판문 주자는 소장품이 200만 점이 넘는 브루클린박물관에서도 아시아컬렉션 내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히는 작품이다. 이 주자는 국내 전시에도 몇 차례 출품되었는데, 그때마다 전시 대표작으로 소개돼 상당히 잘 알려져 있다.


이 주자에는 연꽃 잎 표현이 주자의 몸체와 뚜껑 전체에 둘러싸여 있다. 뚜껑의 꼭지는 연꽃봉오리 모양으로 만들어졌다. 주자의 손잡이와 주둥이, 굽 부분에는 대나무 형태가 표현돼 있다. 특히 뚜껑에는 나비, 손잡이에는 고치 모양의 장식을 붙였다. 고치에서 찢고 갓 나온 나비를 표현한 것은 볼 때마다 인상적이다. 당대 최고의 기술력이 응집돼 12세기 고려 도자공예의 정수를 보여주는 명품 중의 명품이다.


이 주자가 특히 주목되는 이유는 비단 높은 예술성 때문만은 아니다. 이 주자는 특별한 소장 이력을 가지고 있다. 본래 선교사 언더우드 집안에 소장되어 있던 이 주자는 명성황후가 외교나 선교 목적으로 내한한 외국인들에게 선물한 하사품의 한 예로 짐작되는 작품이다.

1885년 한국에 온 호러스 언더우드는 훗날 연희전문학교(현 연세대)를 설립하였고 1888년 한국에 온 릴리어스 언더우드는 제중원의 의사이자 명성황후의 어의를 지냈다. 이들이 왕실과 가깝게 지내며 종종 선물을 받았다는 기록이 있어 이 주자를 명성황후가 내린 선물 중 하나로 보고 있다. 이후 언더우드의 친척인 다윈 제임스 3세 여사가 1956년 브루클린박물관에 기증하였다. 이렇게 이 주자는 12세기 고려 예술계뿐 아니라 19세기 후반 개항기의 모습을 ‘소장이력’을 통해 보여주는 작품이다.



성경모임회가 좋은 스승에게 준 자수 글씨 족자

캐나다 토론토에 소재한 로열온타리오박물관에는 여섯 글자의 대구(對句)를 자수 놓은 족자가 한 점 있다. 원문을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奇哉爲主善牧(기특하도다, 주님의 착한 목자 되시니)

一心愛我良師(한마음으로 우리의 좋은 스승을 사랑하리라.)


족자의 우측 상단에는 ‘贈呈(증정)’, 대구 뒤에는 ‘主后一千九百十三年 二月 十日 平壤査經會(주후일천구백십삼년 이월 십일 평양사경회)’라고 돼 있다. 이를 통해 1913년 2월 10일에 평양의 한 사경회(성경을 공부하는 모임)에서 목회자에 대한 감사 선물로 제작해 증정한 족자임을 알 수 있다.

희(喜)자와 만(卍)자, 원형의 길상무늬가 보이는 푸른 비단에 꽃분홍색 실을 꼬아 꼰실을 만들어 평수(면을 완전히 메우기 위해 실을 평행으로 겹치지 않도록 수놓는 방법)로 글씨를 수놓았다. 자수로 유명한 평양에서 제작되었다는 점은 특기할 만하다.

선물로 제작된 족자인 만큼 더 자세한 이야기를 위해서는 이 족자를 선물받은 사람을 알아야 한다. 평양사경회는 누구에게 이같이 경의를 표한 것일까. 위 글귀 각 구(句)의 첫 번째 글자(奇, 一)와 마지막 글자(牧, 師)를 조합하면 그 답을 구할 수 있다. 바로 ‘奇一牧師(기일목사)’, 제임스 게일(1863~1937) 목사가 그 주인공이다.

게일은 앞서 언급한 릴리우스 언더우드와 같은 해인 1888년에 내한해 1927년까지 40년간 한국에서 활동한 선교사다. 우리말에 능통했던 그는 사전 편찬, 성경 번역 등에 힘써 한국어 연구와 번역에 있어 지대한 공헌을 한 한국어학자로 평가된다.

자수 족자에 표기된 ‘기일(奇一)’은 게일의 한글 이름이다. 게일은 한국에 도착한 지 일주일 되던 날(1888년 12월 19일) 누이 제니에게 다음과 같이 적었다. “오늘 한 유생이 와서 조선말로 내 이름을 ‘Kee(기)’라 지어주었습니다. 그러니까 나는 ‘Kee Sopung(기 서방), 영어로는 Mr. Kee입니다.”

이 자수 글씨 족자가 만들어진 평양은 게일의 저서 ‘전환기의 한국(Korea in Transition)’에 따르면 “조선에서 가장 절망적인 도시로 간주되던 곳”이었다. 그만큼 평양은 선교가 어려운 곳이었다. 그러나 게일 목사가 평양신학교의 교수직에서 물러난 1916년 무렵에는 신학교 학생 수가 너무 많은 것을 염려해야 할 정도로 평양의 기독교 신자 수는 짧은 기간 크게 늘었다. 평양의 부흥을 위한 게일의 헌신을 가까이에서 목도하였을 평양의 신도들이 그를 ‘착한 목자’이자 ‘좋은 스승’이라 칭하며 자수 글씨를 선물한 것이다.

한국 사람 이해하려고 공자(孔子) 공부한 선교사

로열온타리오박물관에는 게일의 또 다른 유품 '공자성적도' 17점이 소장돼 있다. 공자성적도는 공자의 주요 행적을 그린 그림을 일컫는다. 아들을 낳고 이름을 ‘리(鯉)’로 지었다는 고사, 주역 공부에 몰두해 책을 묶은 가죽 끈이 3번이나 끊어졌다는 고사 등 공자의 주요 행적들이 그림으로 표현되었고, 각 고사에 대한 간결한 설명이 적혀 있다. 특히 각 설명문이 한문과 함께 한글로도 적혀 있어 주목된다. 이와 같이 한글과 한자를 함께 적은 공자성적도는 개항기 이후에 제작되었는데, 현재 남아 있는 예가 매우 적다.

오늘날 희소가치가 높은 한글본을 한국어 연구와 번역에 한 획을 그은 게일이 소장하고 있었다는 것도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 게일은 ‘모든 사람이 쉽게 터득할 수 있는 문자’이기 때문에 한글을 선교에 유용하다고 여겼을 뿐 아니라, 한글이 과학적이고 우수한 언어임을 일찌감치 인지하고 있었다. 게일은 세종대왕을 조선의 삼성(三聖) 중 하나로 꼽으며 여주에 있는 세종대왕릉(영릉·英陵)을 참배하기도 하였다.

그렇다면 장로교 목사였던 게일은 왜 공자의 평생사적을 그려낸 그림들을 소장했던 것일까. 게일은 한국에서의 선교를 위해 한국 사람들이 생각하고 살아가는 방식을 이해해야 하고 이들이 편하게 오갈 수 있는 장소가 필요하다고 여겼다. 그래서 게일은 일명 ‘모이는 집’인 사랑방을 마련해 공자의 가르침을 사회 실천규범의 본원이자 생활의 구심점으로 삼고 살아가던 한국 사람과 함께 ‘논어’를 읽고 토론하는 일을 즐겼다. 게일이 그의 글 ‘대중설교(Public Preach)’에서도 밝힌 대로, 그는 ‘(선교의) 첫 번째이고 가장 중요한 고려사항은 스스로가 토착 한국인에게 가까이 가는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게일은 1892년 4월 20일 엘린우드 박사에게 보낸 편지에서 “저는 매일 아침 한문을 공부합니다. 그리고 공자를 떠듬떠듬 읽습니다”라고 쓰기도 했다.

더 나아가 게일은 한국인들의 유교적 가치관이 선교에 실질적 도움이 된다고 여겼다. 게일이 1919년 영국에서 쓴 ‘한국에서의 선교 전망’이라는 글에서 그는 “한국은 동양의 유교적 교훈에 깊이 동화되어 있었는데, 바로 그 유교의 교훈은 선교사들의 내한을 준비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고는 ‘부모 공경’, ‘선행’과 같은 유교 경전 속 교훈들이 하나님이 기독교 전파를 위해 미리 전조(前兆)해 주신 것으로 보았다. 이같이 게일은 공자를 이해해야 한국에서의 진정한 선교가 가능하다고 보았을 뿐 아니라, 기존의 유교적 윤리관을 기독교 전파에 있어서 유용한 도구가 된다고 여겼다.

로열온타리오박물관이 소장한 자수 글씨와 공자성적도는 제임스 게일의 아들 조지 게일(1911~2007)이 아버지의 한국 선교 활동을 기리며 박물관에 기증한 것이다. 조지 게일은 토론토대학에 장학금을 기부하기도 하였는데, 이 장학금은 ‘제임스 스카스 게일 목사 장학금’이라는 이름으로 현재까지 이 대학에서 동아시아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을 위해 사용되고 있다.

해외 박물관에 소장된 우리 문화재를 마주할 때면 여러 가지 생각들이 떠오른다. 몇 십 혹은 몇 백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이 문화재들은 어떤 시간을 지나왔을까. 문화재들의 이력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문화재를 둘러싸고 펼쳐지는 다양한 역사를 만나게 된다. 어느 시기에 어떤 재료로 제작되었는지, 작가는 누구이고 유물의 상태는 어떠한지 등의 기본적인 프로필과 별개로 ‘누가 가지고 있었나’를 살피는 것은 문화재의 이동 경로를 추적하는 일인 동시에 문화재마다 가지고 있는 ‘삶’의 서사를 되살리는 일이다.


이민선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선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