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만든 책, 기필코 지켜낼 겁니다”

입력
2021.09.16 04:30
21면
첫 책 낸 문학 출판사 안온북스 
경력 도합 29년의 두 베테랑 편집자 의기투합
"문학 출판의 새로운 결 만들고 싶어"

출판계만큼 ‘만년 불황’을 입에 달고 사는 업종도 없다. “사람들이 책을 안 읽는다”는 푸념이 늘 유령처럼 떠돈다. 그런데 정작 출판사 수는 2010년 3만5,626개에서 2019년 말 기준 6만2,983개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매년 3,000여 개의 출판사가 새로 생긴 셈이다.

읽는 사람은 줄어드는데 만드는 사람은 늘어가는 이곳에, 또 하나의 출판사가 첫 발을 뗐다. 첫 시리즈 '내러티브온'을 통해 소설집 ‘왜가리 클럽’과 각본집 ‘지구 종말 세 시간 전’을 선보인 안온북스는 도합 경력만 29년인 두 명의 베테랑 편집자가 의기투합해 만든 2인 출판사다. 이정미 대표는 문학과지성사와 동녘, 북21 등을 거친 17년 차 편집자고, 서효인 대표는 문학과지성사와 민음사를 거친 12년 차 편집자이자 세 권의 시집을 낸 중견 시인이다.

시작하는 출판사와 창작자를 지원하기 위해 2019년 마포구에 설립된 마포출판문화진흥센터(플랫폼P)가 이들의 둥지다. 14일 플랫폼P에서 만난 두 사람은 ‘그저 좋아하는 책을 만들겠다’는 식의 소박한 꿈 대신 “종합대형출판사가 되겠다”는 큰 포부를 밝혔다.


-각자 어떤 책을 만들어왔나?

이정미(이하 이)=인문서 사회과학서 문학서 등 다양하게 만들었다. 대표적으로는 김애란 작가의 ‘비행운’과 김중혁 작가의 ‘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 등이 있다.

서효인(이하 서)=문학잡지 ‘릿터’ 창간을 주도해 29권까지 냈다. 정세랑 작가의 ‘보건교사 안은영’을 만들었고 김혼비 작가를 발굴하기도 했다. 팀장으로 ‘82년생 김지영’이 나오는 데 기여했다.

-어떻게 둘이 의기투합했나?

=문학과지성사에서 함께 책을 만들었던 적이 있다. 둘 다 다른 회사로 옮긴 뒤에 종종 도움을 주고받았는데, 얘기하다 보니 만들고 싶은 책이 비슷하다는 걸 알게 됐다. 마침 각자 출판사를 차릴 계획이 있었고, 이럴 거면 같이 해보자 했다.


-둘 다 대형 출판사의 중견 편집자였는데, 왜 회사를 나왔나?

=아무래도 큰 출판사는 판매량 기대치가 있어 만드는 모든 책에 동일하게 집중할 수 없다. 이른바 ‘중점도서’라는 말이 싫었다. 일 년에 스무 권씩 내던 것에 지치기도 했다. 만드는 책의 종수는 줄어들더라도, 모든 책에 공을 들이고 싶었다.

=좋은 회사였지만, 어느 순간 스스로 정체된 느낌이 들었다. 편집 이외에 출판 전반에 대한 궁금증이 일었다. 막상 해보니 편집 빼고는 아무것도 몰랐구나를 실감하는 요즘이다. 제작단가부터 공급률까지 전부 새로 배우고 있다.

-어떤 기준으로 첫 책을 정했나.

=작가와 독자가 함께 성장하는 출판사를 만들고 싶다. 그래서 아직 저서가 없던 신인 작가들에게 청탁을 했다. 덕분에 신춘문예 2관왕부터 비등단 작가, SF작가 등 다양한 필진이 모였다. 우리끼리는 ‘우정의 공동체’라고 부른다. '아직 포섭되지 않은 가능성'을 발굴하고자 했다.


-문학 출판은 출판계 내에서도 매우 좁은 문이다. 주요 작가를 몇 개의 대형 출판사가 독식하고 있는 상황이라 신진 출판사가 비집고 들어가기가 힘들다.

=모든 출판사가 탐내는 작가도 있겠지만, 글을 발표할 지면조차 없는 작가도 있다. 사실 국내 문학은 독자층이 고정돼 있다. 새로운 외부 독자를 유입시키기가 쉽지 않다. 잘 팔리는 책(작가)을 더 잘 팔기보다는, 아예 바깥의 독자를 찾아야 한다고 봤다.

=출판사마다 각자의 ‘결’이 있는데, 어느 순간 책을 내는 문학 출판사가 고정되며 ‘새로운 결’을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우리가 그 ‘새로운 결’이 되면 어떨까 싶었다. 대형 출판사가 갖지 못한 태도를 갖고 싶다. 장르 편견 없는, 기존 문인의 정제된 글이 아닌, 새로 시작하는 작가들의 울퉁불퉁한 글을 책으로 내고 싶다. ‘문학책’ 하면 떠오르는 것에서 탈피하고 싶다.

-출판사를 직접 차려보니 어떤 점이 가장 어려웠나?

=이전 회사에서는 작가에게 출간 제안을 할 때 거절당할 거란 생각은 거의 안 했다. 대개 80~90%는 승낙했다. 지금은 정확히 그 반대다. 80~90%는 거절이다(웃음). 이해는 한다. 새로운 시도를 하겠다며 작가를 데려와 놓고 금방 폐업해 버리는 경우가 출판계에 허다했다. 작가 입장에선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출판사 폐업으로 책이 절판되는 거다. 신진 출판사와 일하는 게 부담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가 가장 염두에 두는 것 역시 책을 지킬 힘을 키우는 것이다. 안 팔리는 책도 몇 십 년간 갖고 있을 수 있는 그런 힘.


-출판 시장의 변화가 빠르다. 종이책 밀리언셀러는 이제 거의 사라졌다. 반면 작고 강한 책들이 쏟아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안온북스만의 계획이 있나?

=올 하반기에만 5~6종의 책을 출간 계획 중에 있다. 출판사 규모는 작지만 과감하게 초기 투자를 하고 있다. 원고료나 디자인비도 높게 책정했고, 2차 판권 세일즈에도 관심이 있다. 작은 출판사로는 이례적으로 홈페이지도 준비 중이고 웹진도 만들 생각이다.

=작은 출판사일수록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고 주변에서 그러더라. 하지만 우리는 다 해보고 싶다. 인문서부터 사회과학서 그림책까지 다 만들어볼 생각이다.

=우리 목표는 종합대형출판사다.

한소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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