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후 첫 명절이었지만, 김정윤(28)씨 부부는 올해 2월 설 연휴 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감안해 가족 모임 대신 양가 부모님만 찾아뵀다. 이번 추석에도 그럴 참이었다. 코로나19 유행이 심해진 데다 김씨가 최근 임신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추석 기간 '8인 가족 모임'을 허용하는 정부 지침이 발표되자 상황은 바뀌었다. 온 가족이 만나자는 시부모님 제안에 따라 시동생 가족 4명과도 함께 식사하게 된 것이다. 특히 김씨는 백신 접종을 완료하지 못한 상황이다. 그는 "코로나 감염 걱정을 안긴 정부가 원망스럽다"고 한숨지었다.
올해 추석 대규모 가족 모임이 용인되면서 방역 약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가뜩이나 방역당국 감시가 미치기 힘든 가족 모임의 고삐가 풀리면서 코로나19가 더욱 확산되는 결과를 초래하리란 것이다. 백신 접종률 증가로 집단감염에 대한 경각심이 점차 느슨해지는 분위기도 불안 요인이다.
15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이번 추석 연휴에 가족 모임 규제를 대폭 완화한 정부 방침에 회의감을 느끼는 여론이 적지 않다. 앞서 정부는 이달 추석 연휴 전후 7일간(18~24일)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와 무관하게 가족 모임 가능 인원을 최대 8명(접종 완료 4명 포함)으로 늘리는 내용의 특별 방역 대책을 발표했다.
당국이 모임 자제를 당부했던 지난해 추석과 올해 설에도 가족 7명이 모였다는 이성미(44)씨는 "명절 방역 대책이 어떻든, 가족 구성원이 자진 신고하지 않는 이상 소용없다"면서 "코로나 유행에도 명절마다 귀성 행렬이 그대로인 것만 봐도 방역 대책을 어기는 가족이 많다는 뜻"이라고 지적했다.
'5인 이상 집합금지'를 적용했던 올해 설 연휴 때보다 방역 상황이 나쁜 데도 규제를 푼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도 나온다. 14일 기준 하루 신규 확진자 수(2,080명)는 지난 설날(403명)의 5배에 달한다. 정부가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 지역은 가족 모임 장소를 집안으로 한정하는 등 제한을 뒀지만, 불안을 덜기에는 역부족이란 지적이 많다.
백신 1차 접종률이 70%에 다다르면서 그러지 않아도 방역 경계심이 풀리고 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유종렬(49)씨는 "가족 모임 제한 완화 자체가, 정부부터 백신 접종률 증가를 믿고 방심하고 있다는 신호로 여겨진다"고 꼬집었다. 백신 1차 접종을 앞둔 대학생 최모(22)씨는 "10·20대는 감염 확산세가 강하고 미접종자도 아직 많은데 방역 대책이 완화돼 의아하다"고 말했다.
이번 추석이 코로나 재확산의 기폭제가 되지 않으려면 방역당국이 느슨해진 분위기를 다잡을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필요하다면 방역을 강화할 보완 조치가 추가로 마련돼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유종렬씨는 "지난 설 이후 확진자 수가 (600명대로) 급증했던 일을 잊으면 안 된다"면서 "검문소를 설치해 도심 집회를 효과적으로 막았던 것처럼, 이번 추석에도 방역 지침에 어긋난 가족 단위 움직임은 적극 제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도 경계를 늦출 때가 아니라고 경고했다. 천은미 이화여대목동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백신 접종 효과가 얼마나 발휘될지 아직 확실하지 않고, 돌파감염 위험도 있어 안심하기는 이른 상황"이라며 "개개인이 마스크를 철저히 쓰고 모임을 자제하는 것만이 확실한 방역 대책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