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 과도 정부를 세운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탈레반의 ‘내분설’이 끊이지 않는다. 아프간 수도 카불 점령 이후 1개월이 지나도록 탈레반 최고지도자 하이바툴라 아쿤드자다가 단 한 번도 공개 석상에 등장하지 않은 데다, ‘2인자’인 물라 압둘 가니 바라다르마저 카불 점령 초기와는 달리 모습을 꽁꽁 감추고 있는 탓에 이런 추측은 더욱 확산되고 있다.
미국 CNN방송은 14일(현지시간) 이 같은 현 상황을 짚으면서 “탈레반 고위 지도자들의 건강 이상, 지도부 내 불화 등에 대한 소문이 퍼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과도정부에서 제1부총리를 맡은 바라다르는 12일 셰이크 모하메드 알사니 카타르 부총리 겸 외무장관이 카불을 방문했을 때에도 회담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지난해 9월부터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옛 아프간 정부와의 평화협상 때 바라다르가 ‘탈레반 대표’ 역할을 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매우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CNN에 따르면 바라다르가 마지막으로 목격된 건 이달 첫째 주 카불의 한 호텔에서였다.
‘은둔형 지도자’로 불려 온 아쿤드자다는 더하다. 탈레반의 아프간 재점령 후에도 그가 직접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낸 적은 없다. 자신의 이름으로 발표한 공식 성명도 딱 한 번이다. 지난 7일 과도정부 내각 명단 발표에 맞춰 “앞으로 아프간의 모든 삶의 문제와 통치 행위는 신성한 샤리아(이슬람 율법)에 따라 결정될 것이며, 새 내각 구성원들이 샤리아 수호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을 모든 국민에게 약속한다”는 원론적 언급을 한 게 전부였다.
주목할 대목은 “과도정부 출범 과정에서 탈레반 주류세력과 연계조직 ‘하카니네트워크’가 상당한 마찰을 빚었다”는 소식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탈레반 최고위급 인사의 ‘두문불출’ 현상은 ‘조직 내분’이 야기한 결과일 공산이 크다는 얘기다. 영국 BBC방송은 이날 한 소식통을 인용해 “바라다르는 지난주 후반 하카니네트워크와 언쟁을 벌인 뒤 카불을 떠났고, 탈레반의 결성지이자 아쿤드자다가 체류 중인 것으로 알려진 칸다하르로 향했다”고 보도했다. 해당 소식통은 BBC에 “바라다르가 할릴 우르라흐만 하카니 난민부 장관과 거친 언사를 주고받는 등 갈등을 겪었다”고 말했다. CNN도 “탈레반 관계자가 바라다르의 칸다하르행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다만 탈레반 고위급의 이런 ‘잠행’은 비밀조직 습성에서 비롯된 측면도 있다는 게 CNN의 해석이다. 게릴라전 방식으로 미국과 싸웠고 일부는 수년간의 수감생활도 겪었던 터라, 대변인(자비훌라 무자히드) 입을 통해서도 충분히 의견 표명을 할 수 있는 상황에서 굳이 최고위급 인사가 외부 세계와 직접 소통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수 있다는 뜻이다. 과거 사례도 이를 뒷받침한다. CNN은 “탈레반은 초대 지도자인 물라 오마르가 2013년 숨졌음에도 2년 후까지 이 사실을 공개하지 않았다”며 “다른 나라에선 정치인이 소문에 휩싸이면 즉각 기자회견이나 TV 출연을 통해 의혹을 불식하려 하지만, 탈레반 지도자들은 사진이나 영상을 내놓지 않는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