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지도자를 선택한 대가

입력
2021.09.15 20:00
25면

편집자주

'호크마 샬롬'은 히브리어로 '지혜여 안녕'이란 뜻입니다. 구약의 지혜문헌으로 불리는 잠언과 전도서, 욥기를 중심으로 성경에 담긴 삶의 보편적 가르침을 쉽고 재미있게 소개합니다.



마치 이솝 우화와 같은 이야기가 성서 한곳에 적혀 있다. 하루는 숲의 나무들이 길을 나섰다. 자기들을 다스릴 왕을 찾기 위해서다. 당연히 훌륭하고 능력 있는 나무가 후보감이다. 그래서 그들은 올리브 나무를 찾아갔다. 좋은 열매를 맺어 유익한 기름을 내는, 그래서 당시 세상에 없어서는 안 될 훌륭한 나무였다. 하지만 보기 좋게 퇴짜를 맞았다. 추대받은 올리브 나무는 이렇게 말하며 사양했다. “내가 어찌 하나님과 사람을 영화롭게 하는, 이 풍성한 기름 내는 일을 그만두고 가서, 다른 나무들 위에서 날뛰겠느냐?” 아쉽지만 나무들은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훌륭한 지도자감이지만, 그들 생각에도 올리브 나무가 왕이 되면 그 좋은 기름은 누가 낼지 걱정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다른 후보를 찾아갔다. 이번에는 무화과나무다. 올리브 나무 못지않게 유익을 주는 훌륭한 나무다. 그러나 그도 이렇게 말하며 거절했다. “내가 어찌 달고 맛있는 과일 맺기를 그만두고 가서, 다른 나무들 위에서 날뛰겠느냐?” 무화과나무도 자기의 천직을 버리면서까지 정치를 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유익한 과일을 맺어 사회에 행복을 주는 자신의 소명을 더 귀하게 여겼다.

포도나무에게도 갔으나 마찬가지였다. "내가 어찌 하나님과 사람을 즐겁게 하는 포도주 내는 일을 그만두고 가서, 다른 나무들 위에서 날뛰겠느냐?" 이렇게 훌륭한 나무들은 자신의 달란트와 소명, 천직을 너무나 소중하게 여겼다. 사실 사회도 그들의 공헌이 필요하다. 정치적 출셋길도 사회에 유익을 주는 행복을 이길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누가 정치를 해야 할까? 훌륭한 위인은 정치도 뛰어나게 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아마 꼭 그러지만은 않을 수도. 괜히 나섰다가 정치도 못 하고, 사회는 행복 하나를 잃을 것이 염려된다.

결국 나무들은 하는 수 없이 가시나무를 찾아갔다. 위 세 나무에 비하면 사회에 유익도 주지 못하고 되레 해악을 주는 나무였다. 그런데 가시나무의 반응이 기가 차다. 그리고 덥석 물어버렸다. "너희가 정말로 나에게 기름을 부어, 너희의 왕으로 삼으려느냐? 그렇다면, 와서 나의 그늘 아래로 피하여 숨어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 가시덤불에서 불이 뿜어 나와서 레바논의 백향목을 살라 버릴 것이다." 괜히 접근했다가 국민의 생존을 볼모 잡히고 자기들은 화를 면하기 위해 그 아래로 숨어버렸다.

최선을 찾지 못하고 차선을 택하여 벌어진 일이다. 망나니에게 칼을 쥐여 줬다. 그를 정치로 이끌지 않았다면 숲이 불로 몰살당할 위험도 없었을 것이다. 적합한 자가 없었다면 그냥 돌아갔어야 했나?

이 우화는 요담이라는 자가 말했다. 아비멜렉이 자기 형제 수십 명을 한자리에서 몰살하고 왕이 되었을 때 가까스로 살아남은 막내가 요담이다. 성읍 사람들이 저 망나니를 왕으로 추대한 이유는 그가 자기들의 혈육이기 때문이었다고 성경은 보고한다. 아마 그의 괴력이 두렵기도 했을 것이다. 이 우화는 자질이 없는 아비멜렉을 정치 지도자로 뽑은 것이 악이라고 말한다. 자질보다는 혈연이나 지역, 인연으로 지도자를 선택하는 것이 얼마나 우매한 일인지 고발한다.

때마다 선거를 치러야만 하는 우리는 고민이 많다. 나무 우화를 보자니 아무도 안 뽑고 훌륭한 정치인이 나올 때까지 그냥 기다렸으면 하는 마음마저 든다. 기다렸던 훌륭한 사람이 등장해도 그가 정치계로 들어서면 어찌 될지도 걱정이다. 오죽하면 위 훌륭한 나무들 모두가 정치는 사람들 위에서 날뛰는 일이라고 표현했을까?



기민석 목사ㆍ침례신학대 구약성서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