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북한의 신형 장거리 순항미사일 발사 공개로 한반도 주변의 안보 시계가 갑자기 빨라졌다. 공교롭게도 정부는 14일 미국ㆍ일본과 대북정책 조율을 마치자마자 이튿날 방한하는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과 한중 외교장관 회담을 한다. 한미일 3각 안보 협력 의지를 다진 지 하루 만에 중국 측 스텝에 발을 맞춰야 하는, 결이 다른 카운터파트를 상대로 ‘고난도 외교’ 시험대에 선 셈이다.
노규덕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성 김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 후나코시 다케히로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은 14일 일본 도쿄에서 한미일 및 미일 북핵협상 수석대표 회담을 가졌다. 김 대표는 회담 뒤 회견에서 “미국은 (대북) 인도적 지원을 지지한다. 한국전쟁 당시 실종된 미군 유해 발굴 협력도 재개하기를 희망한다”며 북한에 거듭 대화를 촉구했다. 그러나 김 대표는 “북한이 긍정적으로 반응할 때까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을 완벽하게 이행할 것”이라며 가시적인 비핵화 조치 없이 대북 제재 완화는 없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당초 이번 회담에선 대북 인도적 지원 대책을 놓고 3국이 합의한 구체적 결과물이 공개될 것이란 전망이 있었으나 기대 수준에는 못 미쳤다. 그래서 북한의 무력 시위가 영향을 미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김 대표는 “북한이 지원 접근성과 모니터링에 관한 국제적 기준을 충족하면 인도적 지원을 할 것”이라는 원론적 입장을 되풀이하는 데 그쳤다. 대신 “미국의 대북 접근에 있어 한미일 협력은 절대적 핵심”이라고 말해 인도적 지원도 3국 공조 범위에 포함돼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15일 왕이 부장과 대면해야 하는 정부는 부담스러운 기색이 역력하다. 한 외교 소식통은 “왕 부장은 도쿄에서 발신된 한미일의 메시지를 다 봤을 것이고, 반대로 미국은 서울에서 오갈 한중 대화를 주시할 것”이라며 “편한 상황은 아니다”라고 전했다. 가뜩이나 왕 부장은 앞서 12일 베트남을 방문해 “역외세력이 아세안의 중심 지위를 무력화하지 못하게 하길 원한다”며 노골적인 대미 경계감을 드러냈다. ‘베트남-캄보디아-싱가포르-한국’으로 이어지는 이번 순방의 목적이 동아시아 주요국들의 미국 경도 방어에 있는 만큼 서울에서도 한미의 밀착 흐름에 제동을 걸 게 확실하다. 정부 입장에선 미일과 보조를 맞춘 다음 날 중국의 거센 압박에 시달려야 하는 상황과 맞닥뜨린 것이다.
북한의 순항미사일 시험발사를 한목소리로 규탄한 미일과 달리 중국이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도 정부의 입지를 좁힐 변수다. 중국은 북핵 문제와 관련, ‘쌍궤병진(비핵화 프로세스와 북미 평화협정 협상 병행 추진)’ 원칙을 견지해왔다. 이런 관점에서 핵ㆍ탄도미사일 모라토리엄(유예)를 유지하는 북한 행보에 맞춰 미국도 상응 조치를 내놔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한편, 왕 부장은 이날 오전 청와대를 찾아 문재인 대통령도 예방한다. 이 자리에서 내년 2월 열리는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막식에 문 대통령을 공식 초청할 것이란 관측도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