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아프간 철군이 중동 정세에 지각변동을 일으킬 것이라는 예측이 현지 한 나라의 고위 관리로부터 나왔다. 미국으로부터 안보적 지원을 받아 온 걸프 지역 국가들이 ‘아프간 철군’의 여파를 직격으로 맞게 됐다는 얘기다.
특히 미국이 1980년 석유 생산지인 걸프 지역에서 자국 이익을 위해서라면 군사 작전도 불사하겠다고 선언했던, 이른바 ‘카터 독트린’이 41년 만에 완전히 깨진 셈이라는 게 해당 관리의 평가다. 따라서 걸프 국가들은 안전 보장을 위해 새로운 길을 모색 중이며, 이는 중동을 넘어 아프리카와 아시아에도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걸프 국가의 고위 당국자는 13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 등 외신 인터뷰에서 “아프간 사태는 충격적인 지진이며, 그 진동이 아주 길게 이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탈레반의 권력 장악과 관련해 그는 나이지리아, 말리 등 서아프리카와 사헬 지역에서도 ‘자신감에 찬’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의 급부상에 대한 우려가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의 역내 영향력 감소 예상도 나왔다. 이 당국자는 미국의 석유 의존도 감축을 반영하기 위해 이미 다수 걸프국이 진행 중인 외교정책 재조정이 더욱 급물살을 탈 것으로 전망했다. 동맹관계 재편은 물론,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 등 역내 전통의 ‘앙숙’ 사이인 나라들도 관계를 좀 더 실용적으로 바꾸려는 욕구를 갖게 될 것이라는 진단이다. 그는 “(걸프 지역이) 압력밥솥 같은 처지에서 벗어나 보려는 노력”이라고 표현했다.
이는 파키스탄의 승리이자 중국의 기회로 이어질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이 당국자는 “아프간을 둘러싼 지정학적 투쟁의 한편에선 파키스탄과 중국, 그 반대편에선 이란과 러시아를 보게 될 것”이라며 “미국은 그 자리에 없을 듯하다”고 말했다. 미국이 남긴 공백을 다른 ‘키 플레이어’들이 대체하면서 인근 국가들 간 안보를 위한 합종연횡이 뒤이을 것이라는 의미다.
이런 발언들은 걸프 국가들이 현재 느끼는 불안감을 단적으로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이 당국자는 미군 철수 과정에서 ‘무능’과 ‘관료적 내분’ 징후가 보였다는 점에 크게 놀랐다고 꼬집은 뒤, “향후 20년간 미국의 안보 우산에 (우리가) 의존할 수 있을지 심각한 의문이 든다”고 했다. 아프간을 포기한 사실에 비춰, 미국이 다른 걸프 국가들의 안전 역시 담보하지 않으려 할 수 있다는 우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