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의 아프간 철수, 걸프 지역 '안보 우산' 뒤흔들 지진"

입력
2021.09.14 15:30
익명의 걸프국 고위 당국자, 외신 인터뷰 
"美 철수 과정서 '무능' '관료적 내분' 징후"
탈레반 집권엔 "극단주의 확산 부를 수도"
"41년간 지속된 카터 독트린 완전히 깨져"


“탈레반의 아프가니스탄 집권은 아주 오랫동안 중동을 뒤흔들 지진과 같다.”

미국의 아프간 철군이 중동 정세에 지각변동을 일으킬 것이라는 예측이 현지 한 나라의 고위 관리로부터 나왔다. 미국으로부터 안보적 지원을 받아 온 걸프 지역 국가들이 ‘아프간 철군’의 여파를 직격으로 맞게 됐다는 얘기다.

특히 미국이 1980년 석유 생산지인 걸프 지역에서 자국 이익을 위해서라면 군사 작전도 불사하겠다고 선언했던, 이른바 ‘카터 독트린’이 41년 만에 완전히 깨진 셈이라는 게 해당 관리의 평가다. 따라서 걸프 국가들은 안전 보장을 위해 새로운 길을 모색 중이며, 이는 중동을 넘어 아프리카와 아시아에도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걸프 국가의 고위 당국자는 13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 등 외신 인터뷰에서 “아프간 사태는 충격적인 지진이며, 그 진동이 아주 길게 이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탈레반의 권력 장악과 관련해 그는 나이지리아, 말리 등 서아프리카와 사헬 지역에서도 ‘자신감에 찬’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의 급부상에 대한 우려가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의 역내 영향력 감소 예상도 나왔다. 이 당국자는 미국의 석유 의존도 감축을 반영하기 위해 이미 다수 걸프국이 진행 중인 외교정책 재조정이 더욱 급물살을 탈 것으로 전망했다. 동맹관계 재편은 물론,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 등 역내 전통의 ‘앙숙’ 사이인 나라들도 관계를 좀 더 실용적으로 바꾸려는 욕구를 갖게 될 것이라는 진단이다. 그는 “(걸프 지역이) 압력밥솥 같은 처지에서 벗어나 보려는 노력”이라고 표현했다.

이는 파키스탄의 승리이자 중국의 기회로 이어질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이 당국자는 “아프간을 둘러싼 지정학적 투쟁의 한편에선 파키스탄과 중국, 그 반대편에선 이란과 러시아를 보게 될 것”이라며 “미국은 그 자리에 없을 듯하다”고 말했다. 미국이 남긴 공백을 다른 ‘키 플레이어’들이 대체하면서 인근 국가들 간 안보를 위한 합종연횡이 뒤이을 것이라는 의미다.

이런 발언들은 걸프 국가들이 현재 느끼는 불안감을 단적으로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이 당국자는 미군 철수 과정에서 ‘무능’과 ‘관료적 내분’ 징후가 보였다는 점에 크게 놀랐다고 꼬집은 뒤, “향후 20년간 미국의 안보 우산에 (우리가) 의존할 수 있을지 심각한 의문이 든다”고 했다. 아프간을 포기한 사실에 비춰, 미국이 다른 걸프 국가들의 안전 역시 담보하지 않으려 할 수 있다는 우려다.

김진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