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이번 주 한국을 방문한다. 정확히는 그가 이번에 방문하는 4개국(베트남, 캄보디아, 싱가포르, 한국) 중의 하나다. 이들 가운데 베트남, 싱가포르는 지난달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이 방문했던 곳이고, 캄보디아와 한국은 웬디 셔먼 국무부 부장관이 각각 6월과 7월에 방문한 곳이다. 미국의 족적을 중국이 한 박자 거리를 두고 추격하며 외교 마당을 되훑는 행보다. 마치 미국이 이들 국가와 중국에 대해 무슨 불리한 작당을 했는지 알아내려는 것처럼 말이다. 중국도 속내를 굳이 숨기려 하지 않는다.
왕이는 아시아 4개국 순방의 첫 방문국인 베트남에서 중국은 동남아 국가들과 지역 협력 구조를 확고히 추진해 “역외 세력이 이를 무력화하지 못하게 되기를 바란다”며 중국은 아시아·태평양 그리고 동아시아에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중국은 미국에 비해 중국의 약점이 어디에 있는지를 잘 안다. 미국과 같은 광범위한 동맹국 및 파트너 네트워크를 중국은 가지고 있지 않다. 바이든은 중국 견제에 이를 최대한 잘 활용하려 하고 있고, 역으로 중국은 최대한 이를 무력화시키려 한다.
미중 갈등 심화 속에서 중국은 일찌감치 세계지도를 펼쳐 놓고 미중 경쟁의 대표적인 격전지 세 곳을 지역 그룹핑(grouping)으로 나누었는데, 첫 번째 지역은 미국의 전통적 우방인 나토(NATO)를 중심으로 한 유럽, 두 번째 지역은 아세안(ASEAN)을 중심으로 한 동남아 지역, 세 번째 지역은 바로 한국이 포함된 동북아 지역이다. 동북아 지역은 일본과 한국 2개국밖에 없지만 둘 다 공히 미국의 군사 동맹이며, 각각 세계 3위와 10위 경제대국이다.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선 후 백악관에서 열린 첫 ‘대면 정상회담’이 일본이었고, 한 달 뒤 한국과는 첫 ‘노마스크’ 정상회담을 가지면서, 미국이 동북아에서 한일 양국을 중심으로 중국 견제 진영을 강화할 것임을 확실히 했다. 왕이가 수개월 만에 다시 한국을 찾는 이유다. 특히 바이든은 미국 국내 정치적 유탄을 맞는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을 철수하면서 중국과의 경쟁에 ‘선택과 집중’을 하겠다는 의사를 확고히 했다. 더불어 미국 정부가 미국의 기밀 정보 공유 동맹인 '파이브 아이즈'(Five Eyes)에 한국과 일본을 포함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소식도 나온 시점이기에 중국 쪽에서는 왕이를 보내 ‘상황 점검’에 나선 모양새다.
이런 지정학적 큰 그림을 보자면, 한국 일각에서 나오는 왕이 방한의 목적이 한중 ‘양자 관계’ 차원이라거나, 내년 한중 수교 30주년 준비 목적이라거나, 지난 4년 내내 들었던 ‘시진핑 방한’을 위한 협의라거나 하는 해석들은 미중 강대국이 동아시아에서 그리는 지정학적 큰 그림을 놓치는 시각일 수 있다.
왕이는 문재인 정부의 ‘아픈 손가락’인 북한 문제에서 한중 협력을 더 강화하자고 촉구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 역시 실은 미국 견제가 주 목적이 될 것이다. 또 한국 정부가 미국에 너무 가까이 가지 않도록 경고하기 위해 북한에 대한 중국의 ‘특별한 영향력’을 강조할 수 있다.
결국 큰 틀에서 볼 때, 이번 왕이 방한의 목적은 미국의 동북아 동맹 체제의 ‘약한 고리’인 한국을 통해 미국의 대중 포위망을 뚫으려 하는 것으로 수렴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