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이른바 '고발사주' 의혹에 대한 수사에 본격 착수한 가운데, 압수수색으로 확보한 휴대폰을 통해 의혹의 핵심인 고발장 작성 주체 및 고발장 전달 과정을 입증할 수 있을지 이목이 집중된다. 윤 전 총장을 사실상 의혹의 정점으로 보고 있는 공수처로서는 고발장 작성과 전달의 사실관계를 밝혀내는 것으로 ‘수사의 첫 단추를 제대로 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상황. 하지만 의혹 당사자들이 수사에 잔뼈가 굵은 전·현직 검사인데다, 이미 휴대폰을 교체했다는 등의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어 입증에 난항을 겪을 공산이 크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공수처는 고발장의 전달자로 지목된 손준성 대구고검 인권보호관과 김웅 국민의힘 의원의 자택 및 사무실을 지난 10일 압수수색, 이들의 휴대폰을 확보했다고 12일 밝혔다. 공수처는 이들 휴대폰에 대한 포렌식 작업을 진행 중이며, 완료하는 대로 손 검사 등에게 휴대폰을 돌려줄 계획이다.
법조계에선 공수처의 초반 수사의 성패가 휴대폰 분석 성과에 좌지우지될 것이란 평가를 내린다. 고발장과 첨부자료의 실제 작성자가 누군지, 손 검사가 이들을 김 의원에게 직접 전달했는지 여부가 포렌식 결과에 따라 입증이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고검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윤 전 총장의 개입 여부는 일단 손 검사와 김 의원 간 오간 사실 관계가 파악된 다음에야 생각할 수 있는 문제”라면서 “윤 전 총장으로까지 수사가 뻗어 나가려면 필연적으로 고발장의 전달 루트(과정)가 확인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공수처 안팎에선 휴대폰을 통해 관련 증거를 찾아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일단 공수처가 확보한 휴대폰이 지난해 4월 당시의 것과 다를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김 의원은 이미 언론을 통해 “6개월 전에 휴대폰을 바꿨다”고 말했으며, 손 검사 역시 “휴대폰을 자주 바꾼다”는 말을 주변에 하고 다녔던 것으로 알려져, 의혹과 관련된 기록을 발견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손 검사 휴대폰 기종이 '아이폰'이라는 점도 반갑지가 않다. 손 검사가 비밀번호를 순순히 알려주지 않은 한, 지난해 ‘검언유착’ 의혹 사건에서 한동훈 사법연수원 부원장의 아이폰 비밀번호를 알아내지 못하면서 수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검찰의 전례를 공수처가 다시 반복할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또한 김 의원은 텔레그램을 통해 제보성 대화가 오가면 무조건 해당 대화방을 없앤다고 밝힌 바 있어, 둘 사이에 오간 텔레그램 대화방이 남아 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텔레그램은 삭제 이후 대화방에서 오간 대화나 자료 등 데이터를 복구한다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손 검사와 김 의원이 '수사 전문가'라는 점도 분석 결과에 대한 전망을 어둡게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증거인멸이나 훼손 우려가 컸다”며 공수처가 예상 외 빠른 움직임을 보이긴 했지만, 의혹 제기(2일) 후 수사 착수(10일)까지 수사 대비에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는 게 법조계 평가다. 지방검찰청 한 부장검사는 “검찰에서 오랜 시간 수사 업무를 해온 이들인 만큼 관련된 정황이 드러나지 않게 얼마든지 대비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따라서 공수처 내에선 대검찰청에서 지난해 11월 윤 전 총장 징계 국면 때 당시 수사정보담당관실을 압수수색하면서 확보했던 손 검사의 휴대폰 기록 등을 기대하는 눈치다. 공수처 관계자는 “검찰이 협조하겠다고 했으니 검찰에 필요한 자료가 있으면 요청할 계획”이라고 했다.
법조계에선 김 의원과 손 검사가 수사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수도권의 한 검찰청 고위간부는 “실체 규명을 촉구한다거나 사실 무근이라는 말만 앞세울 게 아니라 정말 혐의를 벗고 싶다는 마음이라면 수사에 협력하는 태도를 보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