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없다 보니, 소각로 신축 막는데 헌법까지 끌고와야 했다

입력
2021.09.2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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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원구청과 업체 , 소각로 건축 두고 법적 분쟁
관련 법령 미비해 '헌법' 적용해 재량권 행사
1·2심도 헌법 적용... 주민, 업체 모두 불만


주거지와 공장 간의 거리 및 배치에 대한 제대로 된 규제가 없다보니, 지방자치단체나 법원이 공장 설립을 불허할 때는 헌법까지 끌어와야 할 정도다.

소각로를 지으려는 디에스컨설팅㈜과 청주시 청원구청의 법적 공방이 대표적인 사례. 올해 7월 대전고법 청주재판부 행정1부(부장 원익선)는 디에스컨설팅이 청주시 청원구청장을 상대로 낸 건축 불허가처분 취소 청구소송에서 주민의 건강권과 환경권을 이유로 원고의 항소를 기각했다.

이 업체는 2017년 4월 구청에 건축 허가를 신청했다. 그해 11월 청주시와 청원구청은 “허가를 위한 법적 요건을 갖추었지만, 지역 주민들의 피해사항을 외면했다”며 “본 건축허가로 인해 발생하는 환경 피해를 지역 주민이 전적으로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불허했다.

법적으로 문제없지만, 불허한다는 것이다. 이미 3개의 소각로가 밀집돼 있는 청주시 북이면에 또 다른 소각로가 신설될 경우 주민의 행복추구권을 외면한다는 논리였다.

디에스컨설팅 관계자는 “2016년 1월 금강유역환경청으로부터 하루 처리용량 91.2톤 규모의 소각시설을 새로 짓는 내용의 사업 적합 통보를 이미 받았다”며 “그럼에도 청원구청은 별다른 법적 근거 없이 건축을 허가해주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2018년 국민권익위원회는 업체 측의 주장을 받아들여 “불허처분을 취소하고, 민원해소 방안 마련을 조건으로 건축허가 할 것”을 시정권고 했다. 디에스컨설팅은 이를 토대로 2019년 9월 청주시의 부작위(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음)에 대한 위법확인 청구소송을 제기했고, 이 소송에서는 업체가 승소했다.

그러나 청원구청은 다시 건축을 불허했다. 청원구청은 "소각시설이 과도하게 북이면 관내에 밀집돼 운용되고 있는 특수성, 환경부의 주민건강역학조사 추진 배경 등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청원구청은 헌법상 행복추구권과 환경권도 언급했다. 헌법의 취지를 존중한 판단이었지만, 반대로 말하면 소각로 신설을 제재할 뚜렷한 하위법령이 없는 탓에 지자체의 재량권 행사를 위해 헌법을 끌어왔다고도 볼 수 있다.

디에스컨설팅은 이에 반발해 “건축행위는 기속행위(법규 집행에 행정청의 재량이 허용되지 않음)에 해당한다”며 다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1ㆍ2심 재판에서 법원은 청원구청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우리 헌법이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지며, 국가와 국민은 환경보전을 위해 노력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여(제35조 제1항) 환경권을 헌법상 기본권으로 명시함과 동시에 국가와 국민에게 환경보전을 위하여 노력할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며 “폐기물처리사업 적정 통보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행정청은 ‘환경오염 발생 우려’ 등 개발행위 허가기준에 부합하는지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 재량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업체 관계자는 “부도 난 지역 폐기물업체를 39억 원을 지불해 인수한 뒤 필요한 법적 절차를 모두 밟았는데, 이제 와서 사업을 할 수 없게 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며 “대법원에서 다시 다퉈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주민들도 여전히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유민채 청주북이면 주민협의체 사무국장은 “혹시라도 대법원이 업체 측의 손을 들어줄 수도 있다는 생각에 고민이 많다”며 “(향후 비슷한 논란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한 지역에 일정 용량 이상의 소각시설이 들어서지 못하도록 ‘입지 및 면적에 따른 용량제한(지역 총량제한)’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가가 버린 주민들

<2부>방치된 시스템

⑤유해물질, 운에 맡긴다?

⑥두 번 죽이는 조사 결과

⑦이주대책은 언제

⑧회한과 바람

박주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