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의 자유는 끝났다."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이 장악한 아프가니스탄에서 언론인에 대한 물리적 폭력 사태가 잇따르면서 언론 탄압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슬람 가치를 존중'하는 한 언론 활동을 보장하겠다던 탈레반의 약속은 사실상 공수표가 됐다.
9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 등에 따르면 시위 취재 중 탈레반에 폭행을 당한 아프간 현지 매체 기자 두 명이 자신들의 온몸에 피멍이 든 사진을 온라인 등을 통해 공개했다. 이들은 전날 수도 카불 시위를 취재하던 중 탈레반 대원들에게 체포돼 경찰서로 끌려가 곤봉, 전깃줄, 채찍으로 두들겨맞았다고 전했다. 이들 중 한 명인 사진기자 네마툴라 나크디는 "탈레반 대원이 내 머리 위에 발을 올리고 내 얼굴을 콘크리트에 짓눌렀다"며 "죽을 것만 같았다"고 당시 상황을 알렸다. 나크디가 자신이 맞는 이유를 묻자 한 탈레반 대원은 "참수되지 않은 게 행운"이라고 답했다는 설명이다.
국제언론단체 언론인보호위원회(CPJ)는 이번 주 불과 이틀 사이 탈레반에 의해 구금된 뒤 풀려난 언론인이 최소 14명이라고 밝혔다. 모두 카불에서 벌어진 여성들의 인권 시위를 취재하던 이들이다. 이들 중 적어도 6명은 체포나 구금 과정에서 폭행을 당한 것으로 파악됐다. 영국 BBC와 함께 일하는 기자들을 포함해 여러 언론인은 시위 현장 촬영을 금지당했고, 아프간 톨로뉴스의 사진기자 와히드 아흐마디는 탈레반에 구금된 뒤 카메라를 빼앗겼다.
앞서 탈레반은 지난달 17일 폭압 통치를 한 과거와 다른 국정 운영을 공언하며 "모든 언론인들이 폭언이나 보복의 두려움 없이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한 바 있다. 하지만 기자들의 시위 보도를 폭력으로 막는 전혀 다른 행보를 보인 것이다.
아프간의 한 원로 언론인은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미디어에 나오는 탈레반(지도부)과 거리에 있는 탈레반 사이의 차이는 크다"며 "거리의 탈레반 대원들은 지도부의 말을 수용하지 못했고 교육을 받지도 못했다"고 설명했다. 여전히 과거와 같이 매우 엄격한 방식으로 지역 사회를 관리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는 "아프간에서 언론의 자유는 끝났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언론에서 탈레반을 비판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국제사회는 큰 우려를 표했다. CPJ 아시아 프로그램 조정관인 스티븐 버틀러는 "탈레반이 아프간 언론 독립을 허용하겠다던 자신들의 약속은 가치가 없다는 것을 빠르게 증명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제 역할을 다하는 기자들에 대한 구타와 구금을 중단하고, 언론이 보복에 대한 두려움 없이 자유롭게 일할 수 있도록 하라"고 탈레반에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