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인터뷰] 김소연 "안주 속 만난 '펜트하우스', 대본 숨 막히기도"

입력
2021.09.17 07:50

배우 김소연 표 악녀가 대중을 완벽하게 사로잡았다. 김소연은 절규하고 패악질을 부리는 천서진을 혼신의 연기로 소화해냈다. 약 1년여의 시간 동안 천서진 그 자체로 살았던 김소연에게 '펜트하우스'는 어떤 작품으로 남을까.

최근 김소연은 본지와의 화상 인터뷰를 통해 SBS '펜트하우스'를 떠나보내는 소감을 전했다.

김소연이 주연을 맡은 '펜트하우스'는 상위 1%만 입주할 수 있는 헤라팰리스를 배경으로 인간의 추악한 욕망을 담은 작품이다. 시즌 1 첫 방송부터 시즌3 최종회까지 총 48회 동안 주간 전체 미니시리즈 1위 자리를 단 한 번도 놓치지 않는 독보적인 기록을 경신했다. 김소연은 극중 희대의 악녀 천서진 역을 맡아 극을 이끌었다.

'이브의 모든 것' 이후 20년 만에 맡게 된 악역임에도 불구하고 김소연은 '인생 캐릭터'를 만나 자신의 존재감을 한껏 발휘했다. 시청자들 속에서는 김소연이었기에 희대의 악인 천서진이 탄생했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김소연은 작품 종영 소감으로 "아직 여운이 짙게 남아있다. 마지막 회에서 천서진은 무기징역을 받고 후두암 말기가 된다. 목소리도 잃고 은별이와의 인연도 끊긴다. 마지막 장면에 더욱 여운이 남는다. 떠나보내는 것에 대해 알쏭달쏭한 남다름이 있다"면서 아쉬운 마음을 드러냈다.

김소연은 매회 폭발적인 감정 열연으로 안방극장을 장악, 수많은 명장면을 탄생시키며 시청자들의 극찬을 이끌어냈다. '펜트하우스'를 통해 제57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여자 최우수연기상을 수상하며 김소연을 명배우로 남게끔 만들었다.

'펜트하우스' 대본 속 악행, 읽다가 숨 막히기도…

이처럼 '펜트하우스'는 김소연에게 큰 기쁨으로 남았다. 그는 "너무 고맙게도 평생 받을 칭찬을 다 들었다. 또 어린이들의 인기를 얻었다. 너무 신선하고 고맙다. 내게 이런 날이 왔다. 그동안 다른 배우들이 캐릭터로 일반화되는 게 부러웠다. 저를 보고 천서진이라 하는 것들이 신선하고 또 원했던 순간"이라며 의미를 되새겼다.

사실 김소연에게 천서진의 모든 장면이 어려웠다. 잘 해내고 싶은 마음이 더해지며 촬영 내내 힘든 마음으로 임한 김소연이다. 두려움은 어려웠던 고지를 한 번에 올랐다는 후련함으로 승화됐다.

극중 천서진의 표독스러움과 도를 넘는 악행 등을 두고 김소연은 "전 국민이 질타를 하지만 나만큼은 이 인물을 미워하지 말자고 생각했다"면서도 "극 말미 윤희를 절벽에서 미는 신은 대본을 읽을 때부터 숨이 막혔다. 처음으로 천서진이 너무 미웠다. 그 장면을 준비하는 것부터 마음이 아팠다. 굉장히 힘들었다. 촬영한 날에는 잠도 안 오고 기분이 싱숭생숭했다. 괜히 '유진아, 좋은 꿈 꿔'라고 했다. 그러고 나니 겨우 잠이 들었다"면서 소회를 전했다.

인간의 극한 욕망을 표출했던 인물들의 인과응보, 파멸에 이르는 결말로 메시지를 던졌다. 마지막 회 천서진의 극단적 선택은 보는 이들에게 큰 충격을 선사했다. 특히 천서진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화려한 헤어스타일을 자르는 장면에서 김소연이 실제 머리카락을 잘랐다는 비하인드가 함께 전해졌다.

마지막 회 명장면에 대해 김소연은 "아무도 제게 자르라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가발을 쓰라고 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천서진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다. 연기자로 소중한 장면을 찍게 됐다. 천서진 덕분에 큰 선물을 받았는데 나는 이 머리카락 하나로 고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맙게도 남편인 상우 오빠가 그렇게 생각한 거 멋있다더라. 시어머님도 잘 생각했다고 해주셔서 큰 용기를 얻었다. 덕분에 제 감정이 잘 올라왔다"고 회상했다.

'펜트하우스' 통해 내려놓는 법 알게 됐다

캐릭터를 소화하는 게 너무 벅차 '하루살이'로 연기에 집중했다는 김소연은 사실 이전까지 평화로운 생활에 안주했노라고 고백했다. 지난 2019년 방송된 KBS2 주말드라마 '세상에서 제일 예쁜 내 딸' 이후 한동안 작품을 쉬며 여유를 만끽했다. 그때 찾아온 '펜트하우스'는 김소연에게 큰 도전이었다. 두려움도 있었지만 연기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작품 출연을 결정했다.

그렇다면 '펜트하우스'로 새롭게 배운 점은 무엇일까. 그는 "천서진이 너무 욕망 덩어리라 제 욕망이 사라졌다"면서 "상우 오빠랑 방송을 보면서 아등 바등 살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지금 갖고 있는 것에 행복함을 느끼자. 예전에는 다음 작품을 기다리는 동안 마음이 조급했다. 말로는 이렇게 안주하면 좋겠다고 했지만 꿈틀대는 무언가와 다른 배우들을 부러워하는 마음이 컸다. 천서진을 통해 내려놓을 줄도 알아야겠다는 마음을 가졌다"고 말했다.

연기와 일상을 구분하는 법도 배웠다. 작품에 임할 때마다 감정선을 이어가기 위해 쉬는 날에도 캐릭터를 놓지 않았던 김소연에게 이상우는 '너의 일상도 소중해, 연기할 때 일상을 왜 놓치냐'고 조언했다. 그의 걱정 어린 충고를 듣고 나서야 김소연은 일상을 즐길 줄 알게 됐다.


다른 작품보다 더 부지런 떨었던 '펜트하우스',연기 인생의 전환점 돼

그가 꼽은 연기 원동력은 '순간'이다. 김소연은 "내가 언제 이런 역할을 만나 피아노를 치고, 공연장에서 노래하고, 수만 가지 감정을 압축시키는 연기를 또 만날 수 있을까. 제게 지치지 않는 힘이 됐다. 늘 힘들다고 느낄 때마다 이 순간, 이 장면은 또 오지 않는다는 걸 머릿속에 주입한다. 다른 때보다 더 부지런 떨며 연습했다. 제 연기에 반성은 있지만 후회는 없다. 다시 해도 똑같이 연기할 것 같다"면서 확고한 연기관을 드러냈다.

지난 1994년 SBS 드라마 '공룡선생'으로 데뷔한 김소연은 '아이리스'와 '펜트하우스'가 연기의 변곡점이라 꼽았다. 지난 2009년 방송된 KBS2 드라마 '아이리스'는 김소연이 서른 살에 만난 작품이다.

당시를 두고 "연기에 집중하기보단 외적인 것에 집중했던, 부끄러웠던 시기다. '아이리스'에서 제게 실망하고 연기를 집중해서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도 지금처럼 머리 자르는 걸 먼저 제안했다. 제 인생에서 굉장히 큰 전환점"이라면서 "'펜트하우스'는 저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도 행복하게 만들었다. 도전이라는 단어가 계속 떠오른다. 다음 작품을 선택할 때 큰 용기가 됐다. 열심히 하면 좋은 날이 오는구나. 희망을 주는 고마운 작품이다. 두 작품이 큰 전환점으로 남을 것 같다"고 필모그래피를 돌이켜봤다.

우다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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