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O타워(타워크레인 임대업체)가 우리를 고소했습니다. OO타워를 그대로 둔다면 앞으로 민주노총 조합원은 현장에 취업할 수 없을 것입니다. 동지 여러분, 악질 OO타워를 박살 냅시다.'
건설사와 타워크레인 임대업체를 대상으로 조합원 채용을 강요해 2019년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된 민주노총 건설노조 타워크레인분과 전 위원장과 간부 10여 명에 대한 판결문에 적시된 내용이다. 판결문에는 노조가 자신들을 고소한 임대업체를 이른바 '타격 업체'로 선정하고 조합원들에게 '총공격'을 지시한 정황과 건설사를 어떻게 괴롭혔는지 적나라하게 담겼다. 임대업체가 조합원 채용 요구를 거절하자, 노조는 건설현장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어 공사를 방해하고, 임대업체 대표가 다니는 교회 및 원청 건설사가 운영하는 골프장까지 찾아가 시위를 벌였다.
'고발 전담팀'을 운영해 임대업체의 타워크레인을 쓰는 건설현장 곳곳에서 사소한 안전 부주의를 빌미로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을 위반했다며 무더기 고발을 이어갔다. 하지만 노조가 고발한 사건은 대부분 혐의 없음 처분을 받았으며, 노조의 채용 요구가 일부 수용되면 고발이 취하됐다. 노조의 산안법 고발 행위가 노동 환경 개선을 위한 목적이 아니라 건설 현장에 불이익을 주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됐다는 의미다. 노조들은 건설사 현장소장에게 임대업체와의 계약 해지를 요구하며 "현장소장 옷을 많이 벗겨 봤는데 그건 일도 아니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건설 노동조합의 '고용 갑질'을 더 이상 방치해선 안 된다는 목소리가 높다. 공사장에는 27개 중장비가 투입되는데, 이 가운데 타워크레인 기사 노조의 경우 건설사와 임대업체에 조합원 채용을 강요하고 있다. 포클레인이나 기중기, 덤프트럭, 지게차 소유주로 구성된 건설기계 노조는 건설업체에 자신들의 장비만 현장에 투입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타워크레인은 건축 자재를 들어올려 건축물 뼈대를 세우는 역할을 한다. 뼈대가 올라가야 전기, 설비, 마감 등 다른 공사가 진행되기 때문에 타워크레인이 멈추면 공사 현장은 '올스톱' 된다. 1대당 5억 원이 넘는 고가 장비인 타워크레인 운전기사가 '건설현장의 꽃'으로 불리는 것도 이 같은 상징성과 중요성 때문이다.
그러나 기사가 50~100m 높이에서 일하기 때문에 사고가 나면 중대재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2012년부터 작년까지 타워크레인 사고 사망자는 48명에 달한다.
타워크레인 기사는 고용도 불안정한 편이다. 건설사들은 타워크레인 임대업체와 계약해 장비를 빌려 쓰고 임대업체는 공사 기간 동안만 기사와 고용 계약을 하기 때문이다. 타워크레인 기사들은 공사가 끝나면 새로운 현장에 채용될 때까지 실업자 신세나 마찬가지다. 건설경기가 다소 회복됐다고는 하지만 타워크레인(2,500대) 장비보다 기사 숫자(5,000~6,000명)가 두 배가량 많은 탓에 짧게는 6개월에서 길게는 1년 이상 대기 기간을 갖기도 한다.
일각에선 타워크레인 기사가 '월천기사(월 1,000만 원 번다는 의미)'라 불릴 정도로 건설현장의 다른 직종에 비해 소득이 높은 편이라고 말하지만, 채용이 불안정한 탓에 매달 평균 손에 쥐는 돈은 이보다 적다는 게 기사들 주장이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건설사들은 타워크레인을 자체 보유했고 기사도 직고용했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건설사들이 비용 절감을 위해 타워크레인을 외주화하며 기사들도 하루아침에 비정규직이 됐다.
이후 기사들의 생존권 보장을 위해 2000년 민주노총 건설노조 타워크레인분과(민노)가 생겼고, 2005년엔 한국노총 한국타워크레인조종사노동조합(한노 연합노련)이 결성됐다. 2018년에는 한노총 산하 전국건설산업노조 타워크레인분과(한노 타워분과)가 출범했다. 조합원 수는 민노가 2,400명으로 가장 많고, 연합노련이 1,000명, 한노가 500명이다. 비조합원은 1,000~2,000명으로 추산된다.
타워크레인 노조가 산업 현장 안전과 기사 처우 개선에 적잖은 역할을 했다는 평가도 있다. 특히 사고 위험이 높았던 타워크레인 철제 와이어 고정 방식을 벽체에 지지·고정하는 방식으로 바꾸도록 제도 개선을 이끌어낸 건 가장 큰 성과로 꼽힌다. 일요일 휴무와 주 40시간 근무도 노조가 쟁의 활동을 통해 얻어낸 결과물이다.
문제는 노조의 덩치가 커지면서 채용 강요 행위가 도를 넘고 있다는 점이다.
타워크레인 임대업체 A사는 지난해 2월 경기도 한 아파트 신축 공사에 9대의 타워크레인을 설치키로 원청 건설사와 계약했다. 그러자 민노가 7대, 한노 연합노련이 3대, 한노 타워분과가 4대 몫을 각각 요구했다. 한노 타워분과는 A사가 9대 중 먼저 설치한 2대에 자신들의 조합원을 채용하지 않는 것에 불만을 품고 건설현장 인근에서 오후 8시 이후에 장송곡을 틀기도 했다. 조합원 2명은 타워크레인 조종실을 각각 29일과 12일간 무단 점거했다. 공사 현장이 장기간 마비돼 피해가 커지자, A사는 참다 못해 조합원 2명을 고소했고, 의정부지법은 지난 5월 이들의 혐의를 인정해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수도권의 타워크레인 임대업체인 B사의 박모(53) 대표는 한노 연합노련 소속 기사 채용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지난해 6월부터 한 달간 노조의 공사 방해에 시달렸다. 한노 연합노련 간부는 박 대표에게 "너는 우리 노조에 비협조적이고 싸가지가 없다. 끝까지 갈 것"이라며 막말을 퍼부었다. 박 대표는 결국 이미 수주했던 계약을 포기해야만 했다.
채용과 관련해 부당한 청탁이나 압력을 행사하면 채용절차법 위반에 해당하지만, 강요 행위를 일일이 문서화하거나 녹취하기도 쉽지 않아 증거 수집은 쉽지 않다. 형사고소를 해도 확정 판결까지 수년이 걸리고 처벌도 집행유예나 벌금형 등으로 가벼워, 임대업체들은 노조 요구를 수용하거나 다른 건설 현장에서의 채용을 약속하는 식으로 타협하곤 한다. 박 대표도 "법적 대응을 심각하게 고민했지만, 나만 힘들어질 것 같아서 접었다"고 말했다.
타워크레인 업계에선 3년 전 한노 타워분과가 생기면서 노조 간 일감뺏기 경쟁이 더욱 치열해졌다고 말한다. 일감은 똑같은데 나눠 먹어야 하는 사람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특정 노조가 임대업체에 다른 노조 기사를 해고하라고 강요하고, 이 과정에서 노조원들 사이에 욕설과 비방, 몸싸움이 벌어지는 일도 적지 않다.
타워크레인 35대가 가동되고 있는 서울의 한 대규모 아파트 공사 현장의 경우 임대업체는 민노 기사 23명, 한노 연합노련 9명, 한노 타워분과 1명, 비조합원 2명을 채용했다. 그러자 민노와 한노 연합노련에선 임대업체에 한노 타워분과 기사와의 채용 계약을 해지하라고 압박했다. 이를 두고 뒤늦게 출범한 한노 타워분과를 '양대 노조'가 견제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임대업체는 결국 노조의 해코지를 우려해 한노 타워분과 기사 대신 다른 비조합원 기사를 투입했고, 원래 계약한 한노 타워분과 기사와 대체 투입된 비조합원 기사 모두에게 두 달 반 동안 월급을 이중 지불해야 했다. 한노 타워분과 기사가 이달 초 다시 현장에 투입되자 민노와 한노 연합노련 기사들은 일제히 타워크레인 운전을 거부하며 실력 행사에 들어갔다. 타워크레인 업계에서 실질적 고용주는 업체 대표가 아니라 노조였다.
노조의 무분별한 집회도 도를 넘었다는 지적이 많다. 권은희 국민의당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6년부터 올해 6월까지 전국 건설현장에서 열린 집회는 4만8,106건에 달했다. 매년 8,700회, 하루 평균 23회꼴로 전국 건설현장에서 집회가 열린 셈이다.
특히 2016년 2,598건이었던 집회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인 2017년 3,720건으로 늘더니, 2018년(7,712건)과 2019년(1만2,553건)에는 더 큰 폭으로 증가했다. 작년에도 1만3,128건의 집회가 열려 4년 전과 비교해 5배 가까이 폭증했다.
같은 기간 건설현장 집회시위를 중복 개최한 단체를 추려본 결과, 한노 타워크레인분과 수도권지부가 479번(참석인원 5,860명), 민노 경기남부타워크레인지부가 357번(4,077명), 한노 타워크레인분과 경기남부지부가 194번(1,935명)의 집회를 진행했다.
업계에선 이 가운데 상당수 집회가 건설사나 임대업체에 채용을 강요하는 수단으로 활용됐을 것으로 보고 있다. 수도권의 한 타워크레인 임대업체 대표는 "노조의 막무가내 집회로 공사가 지연되면 손해는 건설사와 하청업체들에 돌아가고 비용 상승으로 결국 국민도 피해를 본다"며 "상황이 심각한데도 정부와 경찰은 뒷짐만 지고 있으니 노조 조끼는 '방탄 조끼'란 말까지 나올 정도"라고 비판했다.
노조는 그러나 채용 요구는 조합원들의 생존권 보장을 위한 정당한 활동이라는 입장이다. 민노 측은 "우리 조합원 숫자가 훨씬 많은데 임대업체는 '강성노조 프레임'을 씌워 채용을 기피한다"며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때로는 파업과 집회로 이어지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3개 노조는 한목소리로 "비용 절감을 위해 기사들을 모두 비정규직으로 만들어버린 건설사와 임대업체를 놔두고 노조에만 책임을 전가하는 건 온당치 않다"고 주장했다.
생존권 보장을 앞세운 노조의 채용 강요 행위에 정작 더 열악한 처지에 놓여 있는 비조합원 생존권이 위협받고 있다는 비판도 거세다. 타워크레인 임대업체와 건설사에 대한 노조의 압력으로 비조합원 취직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호남지역 한 아파트 공사 현장에는 올 초 10대의 타워크레인이 설치됐다. 임대업체는 민노 소속 8명과 비조합원 2명을 채용했다. 그러자 한노 연합노련에서 뒤늦게 채용을 요구했고, 결국 임대업체는 비조합원 두 자리를 한노 연합노련에 내주기로 했다. 이 때문에 8개월 만에 일자리를 잃은 강모(45)씨는 "작년에도 3번이나 노조 소속 기사에게 자리를 빼앗겼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광주광역시에서 일하는 비조합원 기사 유모(51)씨도 "민노가 건설사를 압박해 1주일 만에 해고된 적이 있다"고 분개했다.
비조합원 기사 중에는 타워크레인 임대업체에 직고용된 경우도 일부 있는데, 임대업체들은 자사 직원을 쓸 때도 노조 눈치를 봐야 한다. 호남지역의 한 임대업체 관계자는 "노조 허락 없이 우리 직원을 넣었다간 바로 보복이 들어온다"며 "노조들이 선호하지 않는 저층 건물과 공사 기간이 짧아 인기가 없는 현장에서나 우리 기사를 쓸 수 있다"고 토로했다.
6년 전 민노를 탈퇴한 양모(53)씨는 "노조에 있을 땐 대기 기간에 하루도 못 쉬고 매일 시위에 동원됐다. 때로는 불법 행위를 저지른 적도 있어 늘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비조합원 강씨도 "노조가 남의 일자리 가로채는 걸 보면 가입하고 싶은 생각이 확 사라진다"고 말했다. 민노 측 관계자는 이에 대해 "언급된 사례들은 임대업체가 조합원 채용을 약속하고 실제론 비조합원을 채용해 갈등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최근까지 한노 타워분과에서 간부로 활동하다가 탈퇴했다는 비조합원 기사 김모(41)씨는 "민노와 연합노련은 기사 권익보호는 뒷전이고 밥그릇 싸움에만 몰두했다. 양대 노조에 대항해 비조합원 권익보호에도 앞장서자는 취지로 3년 전 한노가 결성됐는데, 지금은 한노도 똑같아졌다"고 일갈했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타워크레인 노조는 '악덕 직업소개소'와 다를 게 없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