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미국 바이든 대통령은 백악관 과학기술국장으로 에릭 랜더를 지명하면서 그에게 자신의 당부를 담은 편지를 보냈다. 편지는 1944년 루스벨트 대통령이 과학자문관으로 바네버 부시를 임명했고 부시는 전후 미국 과학기술 발전의 토대를 성공적으로 구축하여 과학기술계의 전설이 되었으며, 지난 75년 동안 미국의 압도적인 과학기술 우위 유지에 크게 공헌했음을 언급하면서 시작한다. 바이든 대통령은 현재 미국 과학기술이 다시 한번 도약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하면서 향후 75년 동안 미국이 최강의 과학기술력을 토대로 미래를 이끌어 갈 수 있도록 전략을 마련하여 제2의 바네버 부시가 되어 달라는 기대를 전하고 있다. 이전 트럼프 행정부에서 과학기술의 가치가 폄하되고 과학기술계가 소외되었던 것과 비교하여 ‘과학이 돌아왔다(Science is Back)’고 환영받고 있는 상황에서, 과연 미국이 여러 도전들 속에서 성공적으로 과학기술에 활력을 불어넣고 패권을 오래 유지할 수 있을 것인지 주목된다.
편지는 미국에서 과학기술이 해결해야 할 당면 과제로 팬데믹, 기후변화, 대중 기술 우위 등을 순차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대중 기술 우위를 제치고 팬데믹이 제1순위 과제로 올라와 있는 것을 보고 엉뚱하게 냉전기에 미국과 소련 사이에 진행되었던 소아마비 바이러스 백신 협력 사례를 떠올렸다. 1956년 냉전이 한창일 당시 미국과 소련을 포함한 전 세계는 소아마비 환자 급증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미국의 사빈은 자신이 개발한 경구용 소아마비 백신을 소련의 추마코프를 통해 소련인 1,000만 명에게 접종시킬 수 있었고 이의 효과가 입증되면서 이후 질병 퇴치 과정에 기여할 수 있었다. 사빈이 미국이 아닌 소련에서 백신 접종을 시도해야 했던 사정이 있었지만 어쨌든 서슬 퍼런 냉전기에 적대국 과학자가 상호 방문하였고 당시 아이젠하워와 흐루쇼프의 암묵적인 지원과 CIA KGB의 감시 속에서 소위 백신 외교를 수행하였으며 이의 결과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소련의 스푸트니크 발사후 미국 내에서 소련 과학기술에 대한 견제와 미소 과학기술 경쟁이 심화되었지만 그 이면에서 미소 간의 과학기술협력은 다양한 형태로 지속되었고 이는 양국의 대결이 극단적으로 치닫지 않게 하는데 얼마간은 기여했다.
이러한 역사적 사례를 보면서 먼저 치열한 미소경쟁의 와중에 물밑에서 의미 있는 과기협력이 지속되었다는 것이 놀랍고 반가웠다. 현재 미중경쟁 속에서 미국이나 중국 정부가 상대국에서 개발한 백신 접종을 자국민에게 허락하고 협력하는 모습을 상상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이 설정한 최우선과제인 팬데믹이나 기후변화 해결을 위해 자체적으로 노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국제적인 협력, 특히 미중 간의 협력이 요구되고 있음은 명백하다.
바이든의 편지를 읽으며 치열한 미중 과학기술경쟁 이면에서 인류 공동의 당면과제인 팬데믹과 기후변화, 인공지능 관련 규범 마련을 위해 미국과 중국이 협력할 수 있는 공간을 상상해 보는 것은 과연 허황된 것일까? 관련하여 한국이 장기적인 국익의 관점에서 미중 과기협력의 공간을 어떻게 조금이나마 확장시킬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은 과연 허황되기만 한 것일지 생각해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