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맥이라도 유지해야 하는데 큰일입니다."
'박사골마을'로 불리는 전북 임실군 삼계면. 인구가 1,600여 명에 불과한 마을에서 지금까지 160명이 넘는 박사가 나와 붙은 이름이다.
주민들의 아이디어와 열정 또한 대단한 이 마을은 지역에도 '잘사는 농촌'으로 꼽히던 곳이다. 10여 년 전부터 박사와 시험, 합격을 연결 짓는 상품인 쌀엿과 조청을 만들어 쏠쏠한 재미를 봤고, '명석한 두뇌'가 마을의 상징이 됐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절묘한 스토리텔링으로 전국 최우수 정보화마을이 된 이곳도 최근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마을 주민 대부분이 80대 이상 노인으로 박사 배출은커녕, 전통쌀엿 계승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이 마을의 정성명(66) 정보화위원장은 "교육과 전통기술 전수 등 여러 문제를 상의해야 하지만 이를 논의할 젊은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고령화가 진행 중인 이 마을이 고향인 박사는 최근 연간 1, 2명으로 줄었다. 전통쌀엿 기술을 보유한 농가도 한두 곳에 불과하다. 전통을 계승하자면 젊은이들이 있어야 하지만, 사실상 없기 때문이다.
지역소멸 위기는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곳에도 예외 없이 찾아왔다. 조선시대 실학자 다산(茶山) 정약용(1762~1836)의 유적지(다산초당)로 잘 알려진 전남 귤동마을 어르신들도 비슷한 이유로 걱정이 많다. 이 마을 이장 윤방(55)씨는 "퇴직 후 고향에 내려온 후손들이 마을 전통을 근근이 이어가고 있다"며 "그렇지만 마을에 젊은이들이 없는 것은 마을 어른 모두의 걱정"이라고 말했다. 공직과 대기업 등에 몸담았다 낙향해 '선비정신’을 실천하는 후손들이 그마나 있기에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한가위를 앞둔 고향마을 분위기가 예전같지 않다. 햅쌀을 수확하는 가을 들녘엔 외국인 노동자뿐이고, 고향을 찾은 마을 선후배들이 어울려 벌인 잔치는 이젠 옛이야기로만 회자된다. 고령화가 심각한 탓에 제법 이름이 알려진 마을들도 앞으로가 더 걱정이다.
1963년 이후 올해까지 184명의 박사를 배출한 강원 춘천시 서면 박사마을은 도심에서 의암호를 가로지르는 다리 건설에 한 가닥 희망을 걸고 있다. 교통이 좋아지면 전원생활을 즐기려는 귀농, 귀촌 수요 등 인구가 늘고, 의암호를 비롯한 수려한 경관을 활용한 캠핑, 글램핑장을 찾는 관광객이 늘 것이란 기대에서다.
한때 연간 16명이 학위를 받았던 이 마을 역시 최근 신규 박사가 연간 2, 3명까지 줄었다. '대통령 빼고 다 나왔다'는 좋은 기운이 있는 곳이라 해도 청년층 이탈과 고령화는 막아낼 재간이 없었다. 서면 출신 박사모임인 백운회 송병훈(81) 회장은 "인구 감소로 인해 학위 취득자가 연간 한 자릿수에 머물고 있다"며 "마을에 연륙교가 들어서면 심리적·물리적 거리가 가까워져 떠났던 사람들이 다시 들어오고, 그렇게 되면 예전처럼 더 많은 인물들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