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주의 미래를 위해서라면 체포돼도 좋다.’ ‘나는 기후 변화에 반대하는 조부모다.’
지난 2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에서 열린 기후 변화 대응 촉구 집회에 이 같은 손 팻말이 등장했다. 이들은 기후 위기 대응에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는 기성세대, 이른바 ‘그레이 그린(Grey green)’이다. 자원의 풍요와 이익을 누린 기성세대의 기후 위기에 대한 집단적 책임감이 커졌다는 분석이다.
이날 집회에 참여한 차미안 케너(67)씨는 “손주들을 보호하기 위해 무엇이든 할 생각이다”며 “나는 기후 변화를 살펴볼 만큼 오래 살진 않겠지만 지금 내가 미래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팻말을 치켜들었다. 증손주가 있는 존 라인(93)씨도 “우리 세대에게 (기후 변화) 책임이 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며 “잃을 직업도 없고, 대출 신청을 할 것도 아니고, 자녀를 돌봐야 하는 것도 아닌 나는 체포돼도 상관없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영국 정부는 집회 참가자 500여 명을 불법 시위 혐의로 긴급 체포했다. 체포된 이들 중에는 65세 이상의 노인들도 다수 포함됐다.
미국에서도 기성세대를 중심으로 하는 기후 변화 대응 운동이 시작됐다. 미국의 환경운동가 빌 맥키번은 60세 이상을 대상으로 하는 기후 변화 대응 운동인 ‘제3의 행동(Third Act)’을 1일 창설했다. 그는 자신의 트위터에 “기후와 인종, 경제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경험이 많은 미국인’, 나와 같은 60세 이상의 사람들이 나서야 한다”며 “우리 세대는 각자의 몫의 피해를 당했고, 우리가 발견한 세상보다 더 나쁜 세상을 남겨뒀다”고 말했다. 현재 ‘제3의 행동’ 가입자는 1만 명을 넘었다.
젊은 세대보다 기성세대가 오히려 기후 변화에 더 민감하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영국 여론조사기관인 입소스 모리가 지난주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영국 내 55~64세 인구의 42%가 기후 변화가 국가가 직면한 주요 문제라고 응답했다. 65세 이상 인구의 35%도 기후 변화를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반면 18~34세는 24%였다. 조사를 담당한 관계자는 “최근 유럽 내에 홍수와 대형 산불 등 기후 재해가 잇따르면서 특히 65세 이상 연령대에서의 기후 변화 대응에 대한 관심도가 크게 높아진 것으로 분석됐다”며 “급격한 기후 변화에 대한 기성세대의 책임 의식이 커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