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려에게 독신이 좋은 이유

입력
2021.09.01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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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N의 '나는 자연인이다'가 중년 남성들에게 좋은 호응을 얻고 있다. 언뜻 보면 불편하기만 한 삶인데, 왜 중년 남성들은 이 프로에 반응하는 것일까?

여기에는 갑자기 너무 오래 살게 된 탈출구 없는 잿빛 현실이 있다. 대가족제의 붕괴 속에서 노동력을 상실한 가장은 거대한 도시의 소외와 고독이라는 늪에 매몰된다. 이런 답답한 현실보다는 혼자라도 선택적인 아웃사이더가 더 낫다는 판단일까? 또 어떤 의미에서 이는 잊혔던 인간 내면의 자유에 대한 갈망의 한 표현인지도 모르겠다.

남북전쟁 이전 미국 남부의 목화 농장을 견인한 것은 아프리카에서 온 흑인 노예들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드는 의문 한 가지? 왜 당시 미국인들은 주변의 인디언을 노예로 삼지 않고, 먼 아프리카에서 사 오는 방식을 택했을까? 경제적인 비용이 더 큰데 말이다.

흥미로운 것은 인디언은 기질 때문에 노예가 되지 않는단다. 이 때문에 미국 백인들에게 인디언은 제거 대상일 뿐이었다. 그러나 부족 집단 간 잦은 충돌 속에서 노예문화가 발달했던 아프리카인들은 노예라는 신분을 잘 수용했다. 이것이 미국 남부가 흑인 노예를 선택한 이유다.

이렇듯 같은 인류라도 안정과 불굴(不屈)을 선택하는 우선점은 사뭇 다르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종교에서도 발견된다. 성직자의 독신과 결혼이 여기에 대비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불교 승려 하면 으레 독신으로 생각되곤 한다. 그러나 동아시아와 남방불교가 독신승 중심이라면, 티베트나 일본은 결혼하는 승려가 주류이다. 이는 기독교 안에서 천주교가 독신인 반면, 개신교는 결혼하는 것과 비교될 수 있다. 즉 세계종교 안에서도 독신과 결혼의 논점이 존재하는 것이다.

물론 개중에는 유교나 힌두교처럼, 전체가 결혼 중심으로 구성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여기에도 일부는 독신의 흐름이 존재하니, 100%라는 것은 없는 것 같다.

어떤 의미에서 독신과 결혼은 인류의 유목과 농경이라는 서로 달랐던 삶의 방식에서 기원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오늘날은 독신이 우위를 차지하는 자기실현의 시대라는 점이다. 우리나라만 놓고 본다면, 이러한 변화는 유사 이래 가장 거대한 변혁이라고 하겠다. 100년 전만 하더라도 이 나라의 1인 가구가 30%를 넘는 현실을 누가 예상할 수 있었겠는가!

인간의 행복과 자유를 찾는 데 있어서 독신은 분명 유리하다. 실제로 독신의 성직자는 성직자라기보다는 수행자나 수도자적인 측면이 강하다. 이는 이들의 삶의 태도가 결혼하는 성직자와 사뭇 다른 것을 통해서도 쉽게 인지된다.

종교의 독신과 결혼의 논점에 있어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고대 힌두교다. 이들은 공부와 가장으로서의 기간(家住期)을 보내면, 가족과 유리된 숲속의 삶인 임서기(林棲期)를 가졌기 때문이다. 고대판 '나는 자연인이다'가 존재했던 셈이다.

고대 힌두인 남성들은 정상적인 가정생활을 하다가, 만년이 되면 숲으로 들어가 자신을 추스르고 관조하는 내적인 자유와 행복을 추구했다. 이 때문에 힌두교에는 별도의 독신 수행문화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또 임서기는 오늘날에도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반드시 숲이 아니더라도 중년에 자신을 반조해볼 수 있는 전환을 가지는 것은 충분히 필요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행복을 추구하는 동물이며, 청춘과 멀어져도 행복의 가치는 유지되어야만 한다. 이런 점에서 은퇴 후 삶의 가치를 재정립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그것은 오늘날 우리에게 주어진 황혼의 그림자가 너무나도 길기 때문이다.



자현 스님ㆍ중앙승가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