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새 오만이 도졌나

입력
2021.08.30 18:00
26면

명분도 실리도 없는 ‘언론법’ 밀어붙이기
집권 후 제대로 된 언론개혁은 손놓더니
강성 지지층보단 중도층 이탈 걱정해야


임기 반년여 남은 대통령의 지지율 40%대 유지는 전례 없는 일이다. 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이 국민의힘을 거의 따라잡았거나 역전했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한때 두 자릿수까지 벌어졌던 정권교체론도 한 자릿수 가까이 좁혀졌다. 청와대와 여당에 활기가 돌고 자신감이 넘친다.

넉 달 전 보궐선거 참패 후 여권은 공황 상태에 빠졌다. 여당의 서울 전 지역구 패배라는 신기록을 남겼으니 그럴 만도 했다. 고개를 세웠던 집권세력이 일제히 사과 모드로 전환했다. 친문·비문 간 갈등 끝에 어렵사리 ‘조국의 강’을 건넜고, 탈이념과 민생 올인을 선언했다. 그러자 등 돌렸던 지지층이 조금씩 돌아오고 이제 기운을 막 차릴 만큼 된 것이다.

살 만하니까 회귀본능이 되살아난 것인가. 거대 여당이 다시 근육 자랑에 여념이 없다. 첨예한 쟁점 법안들을 ‘야당 패싱’하며 밀어붙이고 있다. 언론중재법 역시 많은 언론ㆍ시민단체들의 우려, 심지어 당 내부의 경고음도 무시하고 일사천리다.

이 법의 취지는 가짜뉴스, 허위보도로 인한 피해 구제 강화다. ‘악의적 보도’의 폐해에 공감하고 국민 피해 최소화와 언론 책임 강화에 동의한다. 하지만 가짜뉴스의 정의가 다르고, 핵심 내용인 징벌적 배상 기준도 모호하다. 법안을 찬성하는 쪽에서도 그래서 실효성을 의문시한다. 찬반을 떠나 법안 자체가 허술하기 짝이 없다.

민주당이 언론중재법에 ‘언론 개혁’이라는 틀을 씌운 것도 불편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6년 12월 후보 시절 고(故) 이용마 MBC 해직기자 병문안 직후 “공영방송이 본분을 다하도록 제도화하겠다”고 약속했다. 당시 발언이 문 대통령의 19개 언론 공약의 토대가 됐다. 방송 공공성이 6개로 가장 많고, 나머지는 온라인 표현의 자유, 지역언론 등이다. 신문은 불공정 거래 개선 1개에 불과했다.

공약과 다르게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언론 개혁은 찬밥 신세였다. 다른 화급한 사안이 많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런 여권이 정작 언론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조국 사태’다. 언론이 조국 의혹을 샅샅이 파헤친 데 대한 불만이 언론 손보기와 징벌 강화로 나타난 것이다. 조국 사태가 한창이던 2019년 10월 민주당이 공약에 포함돼 있지 않던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들고 나온 게 그 증거다.

물론 언론의 잘못된 관행과 문화를 바꾸기 위한 언론 개혁은 필요하다. 언론의 과도한 정파성과 지나친 상업주의가 부실 콘텐츠를 낳고 국민의 신뢰를 잃은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개혁을 하려면 제대로 해야지 속도전하듯 밀어붙여선 될 일도 안 된다. 지금 여당이 법안 강행 처리를 서두르는 것은 정치적 의도가 있다는 것을 자인하는 꼴이다.

공수처법과 임대차3법을 반면교사로 삼을 만하다. 무소불위 검찰 견제라는 공수처법 취지는 타당하지만 무리하게 통과시키다 보니 출범한 지 한참인데도 제 기능을 못 하는 처지다. 무주택 국민을 보호하겠다는 절박한 의도에서 강행한 임대차보호법도 전셋값 폭등으로 되레 불안만 커졌다.

따지고 보면 4ㆍ7 보궐선거 이전이 꼭 이랬다. 문재인 정부의 핵심 어젠다인 소득주도성장은 뿌리가 흔들리고, 부동산 정책은 곪아가는데도 독선과 오만이 임계점을 치달았다. 국회 상임위원장을 독식하더니 ‘입법 폭주’로 마구 내달렸다. 그것이 개혁인 줄 알고.

민주당이 강성 지지층 결집이라는 의도를 갖고 법안을 밀어붙이는 거라면 오산이다. 내년 대선은 누가 중도층을 잡느냐에 승패가 달렸다. 민주당도 강조했듯이 지금은 코로나19 방역과 경제 살리기가 선거전략의 전부다. 민생과 아무 상관없는 언론중재법 통과에 전력을 쏟는 것은 어리석다. 이 정권은 도무지 일머리가 없다.

이충재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