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불완전판매의 책임을 물어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에게 내려진 중징계를 취소하면서 징계 주체인 금융감독원은 진퇴양난에 빠졌다. 금감원이 항소할 경우 손 회장과 비슷한 이유로 징계를 받은 다른 금융사 최고경영자(CEO)와도 줄소송을 불사해야 한다. 반면 법원 판결을 받아들이면 금감원은 그동안의 징계가 부적절했다고 인정하는 수모를 겪어야 한다.
31일 금융권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은 손 회장을 중징계한 금감원 조치는 "잘못된 법리를 적용했다"면서 1심 판결을 내렸다. 고객 피해를 낳은 DLF 사태의 근본 원인은 내부 통제를 제대로 하지 못한 금융사 CEO에 있다는 금감원 판단을 뒤집은 것이다.
관심은 손 회장에 대한 금감원의 항소 여부로 쏠린다. 금감원은 이번 결정이 손 회장뿐 아니라 다른 금융사 CEO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만큼 고심하고 있다. 현재 DLF 사태, 라임·옵티머스 등 사모펀드 사태와 관련해 손 회장처럼 내부 통제 미비를 이유로 금융위 징계를 받은 금융사 CEO는 10명이나 더 있다.
금감원이 항소를 선택하면 DLF·사모펀드 사태를 둘러싼 법적 분쟁 전선은 손 회장을 넘어 전 금융권으로 넓어질 전망이다. 줄소송에 따른 리스크가 크게 확대되는 셈이다. 현재 금감원과 소송전을 진행 중인 금융사 CEO는 손 회장 외에 함영주 하나금융지주 부회장이 있는데, 다른 중징계 대상자인 양홍석 대신증권 사장, 정영채 NH투자증권 사장도 소송에 나설 수 있다. 현재 금감원 징계를 받은 금융사 CEO는 손 회장 재판 결과가 나온 이후 징계 취소 소송을 벼르는 분위기다. 이들은 금감원 징계는 법적 근거가 없다고 한 주장이 이번 법원 판결로 정당성을 얻었다는 입장이다.
금감원이 재판 결과를 받아들이더라도 후폭풍은 거셀 수밖에 없다. 금융사 CEO와의 분쟁은 매듭짓는 대신 징계가 적법하지 않았다고 스스로 인정하는 대가를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이 경우 금감원의 칼날은 무리한 징계를 남발한 책임을 물어 조직 내부로 향할 수 있다.
시장에선 금감원장 교체로 금감원의 고민이 더욱 깊어질 것으로 본다. 금융사 CEO 제재를 지휘했던 전임 윤석헌 원장의 재임 중이라면 항소는 확실했다는 게 금융권 평가다. 하지만 윤 전 원장과 달리 시장 친화적인 행보를 예고한 정은보 원장이 새로 취임하면서 항소 포기도 무게감 있게 검토하는 상황이다.
일각에선 금융위가 손 회장에 대한 징계 수위를 경징계로 낮춘 후 금감원이 자연스럽게 항소를 하지 않는 시나리오도 제기된다. 금감원 관계자는 "항소 여부는 판결문을 검토한 후 결정하겠다"며 "손 회장에 대한 항소는 다른 금융사 CEO 징계 건과도 연결돼 있어 최종 징계권자인 금융위와도 협의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