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째 경복이라는 이름의 고양이와 함께 살고 있다. 하루 세 번 시간 맞춰 밥을 챙겨주고, 매일 새벽 5시 잠에서 깨어 놀아준다. 멀리 여행이라도 갈 적엔 돌봐줄 사람을 구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여러 수고로움에도 불구하고 이 고양이는 내게 가르침을 주는 존재다. 경복이가 아니었더라면 절대 알지 못했을, ‘돌보는 마음'의 기쁨을.
릿터 31호에 실린 백수린의 단편소설 ‘아주 환한 날들’의 주인공 역시 중년 이후에야 새삼스럽게 그 기쁨을 알게 된다. 그녀에게 그걸 깨닫게 해주는 존재는 앵무새 한 마리다.
사실 앵무새가 그녀의 삶에 끼어들기 전까지, 그녀는 평온하고 고요한 혼자만의 시간을 누리며 살고 있었다. 남편이 죽고 지켜 오던 과일 가게를 6년 전 접은 이후 정해진 일정대로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월요일 오후엔 장을 보러 가고, 화요일엔 아쿠아로빅을 한다. 밤마다 결명자차를 마신 뒤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설거지를 하고 나면 천변에 나가 1만 보씩 걷는다.
그런 그녀의 평화는 어느 날 찾아온 불청객, 앵무새 한 마리로 인해 깨지게 된다. 사흘 전 그녀의 사위는 대뜸 그녀에게 한 달간 앵무새를 맡아 달라 부탁한다. 동물을 기르고 싶다는 아이들의 요청으로 앵무새를 들였는데,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유였다.
혼자만의 단정한 생활을 즐기던 그녀에게 난데없는 앵무새의 방문은 ‘고역’이었다. 하루 두 번 물과 사료를 줘야 했고, 거실 바닥에 온통 앵무새 사료와 노란 솜털이 나뒹구는 탓에 하루에도 몇 번씩 청소기를 돌려야 했다. 앵무새가 외로움을 타지 않도록 한 시간마다 새장을 열어 놀아주기까지 해야 한다.
그런데 곧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앵무새가 귀여워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쓰다듬어 달라 머리를 들이밀고, 소파에 앉아 연속극을 보고 있는 그녀 옆에 오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앵무새가, 어느 새 그녀의 마음속에 한자리를 차지하고 만다. 고요한 평화와 얼마든지 맞바꾸어도 좋을 기쁨이 그녀 안에 차오른다.
돌보는 마음은 자연히 돌봄받은 기억으로 이어진다. 앵무새를 돌보며 자연히 그녀는 돌봄받았던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린다. 수두 자국이 있어도 예쁘다고 말해줬던 유일한 사람인 춘식이 삼촌, 난생처음 아이스링크에 데려가 줬던 대학생 언니오빠들, 그녀를 업고 뜸북새 노래를 불러주던 아홉 살 많은 사촌 언니.
한 생명체를 돌보는 일에 이렇게까지 많은 품이 드는구나 깨닫게 되면, 나 역시 그 돌봄 덕에 이렇게 잘 자랐구나 알게 된다. 그렇게 돌봄은 다시 돌봄으로 이어진다. 받은 대로 또 내어주는 사랑처럼.
"사람들은 기어코 사랑에 빠졌다. 상실한 이후의 고통을 조금도 알지 못하는 것처럼. 그리고 그렇게 되고 마는 데 나이를 먹는 일 따위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품을 파고 드는 내 작은 고양이의 숨소리를 가만히 들어본다. 돌봄은 받는 존재만큼이나 주는 존재에게도 가슴 벅찬 기쁨을 선사한다. 그게 돌봄의 경이로움이고, 아마도 사랑의 정체일 것이다. 나 역시, 이 작은 고양이로부터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