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열차에 ‘장애인 승차’ 안내방송, 성범죄 악용돼 논란

입력
2021.08.29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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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차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한 남성이 다가와 ‘시나가와지? 데려다줄까?’ 하면서 계속 말을 걸어 왔다. 그러지 말라고 했지만 주변 사람들이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 (휠체어 사용자)

“차량 문쪽을 향해 서 있는데 뒤에서 ‘도와줄게’라며 바싹 다가서서 거칠게 숨을 쉬었다. 떨어지려고 했지만 딱 붙어서 움직이지 못하게 됐다. 다음 역에서 문이 열리자마자 일단 내렸다. 원하던 역이 아니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시각장애인)

“막차를 타고 문이 닫히기 직전에 남성이 뛰어올라 왔다. 나를 보며 ‘늦었으니 데려다줄게. OO역이라면 알고 있으니까’라고 말했다. 술 취해 있어서 무서웠다. 하차역에서 경사로 이동 도우미에게 호소했지만 ‘파출소에 가세요’라고 했을 뿐 어떤 사람인지 등 전혀 묻지 않았다. 이후 공포가 계속되면서 수면 장애가 생겨 이사를 했다.” (휠체어 사용자)

도쿄패럴림픽이 개최되고 있는 일본에서 장애인이 열차에 승차할 경우 나오는 안내 방송 때문에 여성 장애인들이 성추행 등 성범죄 피해에 노출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장애인 단체가 구체적인 사례들을 접수해 국토교통성에 호소했다.

일본의 장애인 단체인 ‘DPI일본회의’가 최근 발표한 바에 따르면 일부 철도 사업자의 경우 장애인 승차 시 역무원 등이 마이크로 “고객 안내 중입니다” “승차 완료” 등의 방송을 내보낸다. “OO호차 승차, 하차 역은 XX”라고 지나치게 구체적으로 밝히는 사업자도 있다. 문제는 이 안내 방송을 악용하는 성범죄자들이 있다는 것이다. 안내 방송을 통해 특정 호차에 장애인이 탑승한 것을 알고 따라붙어 성추행을 시도하거나, 방송에서 들은 하차역을 말하며 데려다주겠다고 치근대는 식이다.

이 단체가 수집한 15건의 사례에 등장하는 피해자들은 거동도 불편한데 성범죄의 대상이 되자 큰 공포를 느끼고 정신적인 충격을 받아 이사를 가거나 악몽을 꾸기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집까지 따라온 남성이 무서워 경찰에 신고하자 집 유리창에 돌을 던져 깬 경우까지 있었다. 상당수 피해자들이 그런 상황에서 주변 사람 또는 역의 도우미들에게 전혀 도움을 받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장애인 탑승 정보를 역내에서 공유하기 위해 반드시 안내 방송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안내 방송은 간토(関東) 지역에서 주로 나오고 도카이(東海), 간사이(関西), 규슈(九州) 등에서는 거의 이뤄지고 있지 않다. 빛 등을 통해 신호를 교환하는 등 다른 방법을 사용하는 곳도 있다. 단체는 지난 7월 국토교통성에 개선을 요청했고, 이달 18일 전국 60개 철도 사업자에 온라인으로 피해 실태를 직접 얘기할 수 있도록 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하지만 8월 말 현재까지도 안내 방송은 계속되고 있다.

NHK는 이 단체의 야마사키 료코씨가 “애초 장애인이 안전하게 생활하도록 하기 위한 제도를 악용해 비열한 짓을 하는 것은 용서할 수 없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업자는) 다른 방식을 생각해 달라”고 호소했다고 전했다.

도쿄= 최진주 특파원